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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3년 7개월 만 국경 공식 개방…한국 “탈북민 강제북송 가능성 우려”


지난 18일 카자흐스탄 세계태권도선수권 대회에 참가하는 북한 여자 태권도 선수들이 중국 베이징 공항에서 아스타나로 향하는 여객기에 탑승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지난 18일 카자흐스탄 세계태권도선수권 대회에 참가하는 북한 여자 태권도 선수들이 중국 베이징 공항에서 아스타나로 향하는 여객기에 탑승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북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이후 3년 7개월여만에 국경을 공식 개방했습니다. 전면 개방까진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한국 정부는 북한의 이번 조치 이후 해외에 있는 탈북민들의 강제북송 가능성을 우려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대외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국가비상방역사령부가 지난 26일 세계적인 악성 전염병 전파 상황이 완화되는 것과 관련해 방역 등급을 조정하기로 한 결정에 따라 해외에 체류하고 있던 북한 국적자들의 귀국이 승인됐다”고 27일 보도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귀국한 인원들은 1주일 간 해당 격리 시설들에서 철저한 의학적 감시를 받게 된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이 지난 2020년 1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유행을 이유로 국경을 봉쇄한 이후 3년 7개월여만에 처음으로 당국 차원에서 국경 개방을 공식화한 겁니다.

북한은 2022년 5월12일 ‘최대비상방역체계’를 가동하고 같은 해 8월10일 ‘방역전쟁’ 승리를 선언하며 ‘긴장 강화된 정상방역체계’로 방역 등급을 낮췄으나 국경 폐쇄 등 조치는 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세계적인 팬데믹 극복 분위기 속에 지난달 초부터 전국에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해제한 모습을 보이며 방역 기조 완화를 시사했습니다.

특히 지난달에는 한국전쟁 정전협정 기념일인 이른바 ‘전승절’을 맞아 중국과 러시아 대표단의 북한 입국이 이뤄졌고, 지난 16일에는 신의주와 중국 단둥을 잇는 압록강철교를 통해 카자흐스탄 세계대회에 출전할 태권도선수단 수십명이 버스로 국경을 넘어 이동하기도 했습니다.

이어 평양과 베이징, 평양과 블라디보스토크 간 항공기 운항이 재개됐고 고려항공 여객기들이 중국과 러시아에 체류해 온 북한 주민들을 평양으로 실어 날랐습니다.

22일 북한 평양 순안공항을 이룩한 고려항공 여객기가 중국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했다.
22일 북한 평양 순안공항을 이룩한 고려항공 여객기가 중국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조치를 ‘제한적 국경 개방’으로 평가했습니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28일 정례브리핑에서 ‘조선중앙통신’의 해외 체류 북한 주민 귀국 승인 보도에 대해 “현재 북한이 국경을 제한적으로 개방한 상태로 보이고 전면적 개방에 관해서는 관련 동향을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북한의 조치가 전염병 비상방역 등급을 규정한 비상방역법에 따라 등급을 완화한 것이지, 전면 개방은 아니라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이번에 특급에서 1급으로 조정한 것 같아요. 이것은 국경 봉쇄를 풀긴 하지만 국경 통행과 동식물 물자 반입을 제한하는 조치 이게 1급이죠. 그러니까 비상방역 등급이 해제돼야 그래야 전면 개방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상황이고.”

북한은 방역 등급 조정으로 해외 거주 주민들에 대한 귀국 조치를 본격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이나 러시아 등에 장기간 머물던 노동자나 유학생, 외교관 등의 귀국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국경 개방 후 중국이나 러시아 등 해외 탈북민의 강제북송 가능성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탈북민 본인의 의사가 존중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구병삼 대변인입니다.

[녹취: 구병삼 대변인] “북한의 국경 개방이 북한 주민의 어려운 민생과 참혹한 인권 상황의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이 같은 기대와 정반대로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국경 개방 후 중국 내 탈북민의 강제 북송 가능성에 대해서 정부는 매우 우려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의 이번 국경 개방은 본의 아니게 해외 체류가 장기화하면서 심각한 불만을 표출하고 체제 이반 현상까지 보이고 있는 파견노동자 등의 귀국 조치를 서두르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특히 탈북민 강제북송도 국경 개방 이후 북한 당국이 우선적으로 취할 조치로 꼽았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단둥 같은 경우는 어린 여공들이 많이 나와 있기 때문에 향수병으로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 상당히 있다고 합니다. 또 하나는 6년, 7년 동안 해외에 나와 있으니까 규율을 위반하거나 탈북을 시도하거나 체제 이반 현상들이 많이 나타날 거에요. 특히 탈북인들, 그 중에서도 정치적으로 위중하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은 빨리 국내로 송환해야 될, 그러니까 베이징대사관 같은 경우는 감옥으로 개조했어도 이미 포화상태를 넘어섰다고 하거든요.”

북한의 이번 조치가 관광객 입국 허용이나 국경에서의 화물트럭 통행 등 전면 개방으로 이어질지 주목됩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세종연구소 정성장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북한이 이번에 주민들의 대규모 귀국을 허용한 것은 단계적으로 방역을 완화하고 ‘위드 코로나’ 정책으로 전환할 것임을 대외적으로 공식화한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정 실장은 국가비상방역사령부의 통보를 계기로 육로를 통해서도 북한 주민들의 대규모 귀국이 이루어질 것이라며, 북한 주민들이 귀국하게 되면 그로 인해 북한의 외화벌이 수입원이 줄어들 것이므로 북한 주민들의 귀국 조치와 북한 인력의 중국, 러시아 파견 조치는 병행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습니다.

또 “최근 북중 접경지역의 식당들에선 오히려 북한 종업원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했습니다.

정 실장은 해외 체류 주민들의 대규모 귀국이 북한의 방역 상황에 큰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다면 북한은 격리기간을 서서히 줄여가다가 내년쯤 외국인들의 입국과 관광을 전면 허용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탈북민 단체인 탈북자 동지회 서재평 회장은 북중 국경도시에서 9월 23일 개막되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북중 무역이 대폭 열릴 것이라는 얘기들이 돌고 있다며 북한 내부에서도 당국 차원에서 주민들에게 북중 무역 정상화에 대한 기대감을 담은 선전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서재평 회장]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부터 일반 무역도 개방을 한다고 들었거든요. 그러면서 일반 주민들 강연을 통해서 국경이 열려 지금까지 못했던 무역을 활발히 진행하면 경제가 나아지는 듯한 그런 강연을 했대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개방 속도를 가늠할 시금석이 되리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북한은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선수단 참가를 신청한 상태입니다.

북한이 중국과의 경제협력 강화, 미한일 안보협력 강화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고위급 대표단을 보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중국이 지난달 ‘전승절’ 행사 때 리훙중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이 이끄는 대표단을 북한에 보낸 데 대한 답방 성격도 있습니다.

정성장 실장은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단장으로 김여정 당 부부장이 참가하는 대표단을 파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정성장 실장] “김정은이 2021년 노동당 8차 대회에서 제시한 경제발전 목표도 달성해야 하고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에 대응해서 중국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하기 위해서도 고위급 인사들을 파견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북한은 국제 스포츠 이벤트를 정치적으로 활용한 선례들이 있습니다.

지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땐 당시 최룡해 당 비서와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이 폐막식에 참석했었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땐 당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대표단장으로, 김여정 당 부부장이 대표단 일원으로 참가했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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