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군사정찰위성 발사와 우주궤도 진입에 성공했다고 밝힌 가운데 한국 정부는 북한의 행위가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도발이라고 강력 규탄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대북 감시정찰 능력을 강화하는 대응 조치로 9.19 남북 군사합의 일부 효력을 정지시켰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대외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이 21일 밤 10시 42분 28초에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신형 로켓 ‘천리마-1형’에 탑재해 성공적으로 발사했다”고 22일 보도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천리마-1형은 예정된 비행궤도를 따라 정상비행해 발사 후 705초 만인 오후 10시 54분 13초에 만리경-1호를 궤도에 정확히 진입시켰다”고 전했습니다.
북한 매체의 발표는 정찰위성 발사로부터 약 3시간 만에 나왔습니다.
북한 발표가 사실이라면 올해 5월 1차 발사와 8월 2차 발사에 실패한 이후 3번째 발사 만에 정찰위성을 우주궤도를 향해 쏘아 올리는 데 성공한 겁니다.
북한이 이번에 궤도에 올린 만리경-1호는 첫 군사정찰위성입니다.
‘조선중앙통신’은 “정찰위성 발사는 자위권 강화에 관한 합법적 권리”라며 “공화국 무력의 전쟁준비태세를 확고히 제고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현지에서 발사를 참관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당 제8차 대회 결정을 정확하고 훌륭히 관철한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과 연관 기관의 간부들과 과학자, 기술자들을 열렬히 축하”했다고 전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 행위를 규탄했습니다.
허태근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입니다.
[녹취: 허태근 실장] “북한의 소위 군사정찰위성 발사는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하는 북한의 모든 미사일 발사를 금지한 유안 안보리 결의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며 우리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중대한 도발 행위입니다.”
미한일은 북한 위성 발사 성공 여부에 대한 공동 분석작업에 들어갔습니다.
한국 군 관계자는 기자들을 만나 “북한은 서둘러 성공했다고 발표했지만 그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으며 한미, 한미일이 긴밀히 공조해 여러 식별된 상황을 공유, 분석해 판단 내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찰위성 발사의 성공 여부는 위성이 예정된 궤도에 진입했다고 해도 지상 기지국과 신호 송수신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지상을 촬영한 사진과 영상 발신 등이 이뤄져야 알 수 있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장영근 미사일센터장은 “설사 궤도에 정확하게 진입하더라도 초기 운용을 통해 태양전지판을 전개해 배터리 충전을 해야 하고, 위성을 평양의 지상관제소로 지향하여 통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위성 발사에 성공했다고 정의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만리경-1호의 정찰위성으로서의 효용성 검증도 필요합니다.
장 센터장은 “탑재체에 따라 최소 1~2개월 정도 소요된다”며 "이 기간에 실제 영상 촬영을 시험적으로 수행하고 영상 품질을 향상시키는 작업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영상을 성공적으로 촬영한다 해도 기술 수준 노출을 우려해 이를 공개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입니다.
한국 군이 올해 5월 북한의 1차 발사 때 인양된 낙하물을 분석한 결과, 당시 정찰위성에 장착된 카메라의 해상도는 3m급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군 정찰위성의 기준인 해상도 1m 이상의 이른바 서브미터급에는 크게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장 센터장은 그러나 해상도 3m 수준이라고 군사적 효용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장영근 센터장] “1m, 3m, 5m 수준이라고 해도 1m라는 얘기는 크기가 가로 세로 1m 인 것을 식별하는 정도니까 남한 군의 각 시설들, 일본의 미군 기지들 어떤 장비가 있고 큰 장비들은 보이거든, 위에서 보면. 그러니까 북한이 저런 것을 다 띄우면 무슨 군사 시설이 있다는 걸 파악이 가능한 거죠.”
이와 함께 북한이 위성 발사 협력을 약속한 러시아로부터 지원을 받아 위성체 핵심 부품을 들여와 성능을 개선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권용수 전 국방대 교수는 북한의 발사체 기술은 이미 두 차례 위성을 우주궤도에 올릴 정도로 상당한 수준이라며 이번에 러시아로부터 지원을 받았다면 발사체 보다는 광학센서를 제공받는 등의 위성체 관련 지원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추가 위성 발사 계획도 시사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이 앞으로 빠른 기간 내에 수개의 정찰위성을 추가 발사할 계획을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 제출하게 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올해 연말에 열릴 것으로 전망되는 당 전원회의에서 추가적인 정찰위성 발사의 세부 계획이 수립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한국 정부는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에 대응해 22일 오전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임시국무회의를 열어 9.19 남북 군사합의 1조 3항의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대한 효력 정지를 의결했습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영국을 국빈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이런 ‘9.19 군사합의 일부 효력 정지안’을 현지에서 전자결재로 재가했습니다.
효력 정지는 22일 오후 3시부터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효력 정지된 조항은 군사분계선(MDL) 주변 일정 구역에서 비행을 금지한 것으로, 그동안 북한보다 우월한 공중 정찰자산을 보유한 한국에 불리한 조항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허태근 국방정책실장입니다.
[녹취: 허태근 실장] “우리 군은 9.19 군사합의 이전에 시행하던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북한의 도발 징후에 대한 공중 감시정찰 활동을 복원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오늘 03시에 국방부 장관 주재로 전군 주요 지휘관회의를 실시하여 우리 군의 대비태세와 효력 정지에 따른 군사적 이행 계획을 점검하였습니다.”
한덕수 총리는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남북 간 상호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9.19 군사합의 효력의 일부를 정지하고자 한다”며 “국가안보를 위해 꼭 필요한 조치이자 최소한의 방어 조치이며, 우리 법에 따른 지극히 정당한 조치”라고 강조했습니다.
한 총리는 또 “북한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상태 완화와 신뢰 구축을 위한 9.19 군사합의를 준수할 의지가 없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며 이번 조치를 통해 “대북 위협 표적 식별 능력과 대응태세가 크게 강화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정찰위성 발사 자체가 9.19 합의 위반은 아니지만 합의 정신을 명백히 위반한 행위라며 그동안 북한이 저질러 온 다수의 합의 위반 행위를 감안한 한국 정부의 조치라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정찰 분야에 관해선 전략적 인내에 한계가 왔거든요. 왜냐하면 하마스 사태로 정찰 능력 문제가 심각하게 드러난 상황이고 이미 예고도 했고 또 북한이 수없이 어겨왔고 그렇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적절한 대응이라고 보여지고요.”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는 남북한 간 많은 합의들이 있었고 대부분 사문화됐지만 공식 파기 선언은 없었다며, 한국 정부가 합의 전체가 아닌 일부에 대해 향후 합의 복원의 여지를 열어 둔 효력 정지 조치를 취한 것은 정치적 부담을 고려한 때문으로 풀이했습니다.
한국 군 당국은 북한에 해당 조치를 통보하는 방법과 관련해 남북한 통신선이 단절된 상황이기 때문에 언론 보도로 갈음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