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영변 경수로 가동 정황…전문가 “핵무기 기하급수 증대 의지 과시”

북한 영변 핵시설 위성 촬영 (자료사진=38노스)

북한이 영변의 실험용 경수로를 완공해 시운전에 들어간 정황이 공개되면서 한국 정부는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핵무기의 급속한 양적 확대 의지를 드러내면서 미국과 한국을 압박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이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 생산량을 크게 늘릴 수 있는 영변 핵 단지 내 실험용 경수로(ELWR)를 십수 년 만에 완공해 시운전에 들어간 정황을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공개한 데 대해 우려 섞인 반응을 내놨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정부는 한미 간 긴밀한 공조를 바탕으로 북한 핵 시설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지난 21일 실험용 경수로 시운전 정황에 대한 IAEA 사무총장 언급에도 주목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당국자는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위반해 핵 물질 생산 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작년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핵탄두를 기하급수적으로 증대하겠다고 밝히고 탄도미사일 도발을 지속하는 등 한반도와 전 세계 평화・안정을 해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 정보 당국은 영변 실험용 경수로의 핵 물질 생산 능력과 현 상태 등을 계속 추적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앞서 지난 21일 성명에서 북한 영변 핵 시설 실험용 경수로 인근에서 온수가 흐르는 등 시운전 정황이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같이 보기: IAEA “북한 영변 경수로 온수 배출”

그로시 사무총장은 지난 11월에도 이런 시운전 정황을 보고한 바 있습니다.

북한은 2010년께부터 영변에 실험용 경수로를 건설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경수로의 발전 용량은 30메가와트(MW)로 추정돼 왔습니다.

북한은 당초 2012년 완공을 공언했지만 진행이 크게 늦어지면서 최근 들어 비로소 작동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전문가 분석이 잇따라 제기됐습니다.

북한이 향후 실험용 경수로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하면 현재 영변에서 운영하는 원자로인 5MW 흑연감속로에 더해 플루토늄을 생산할 추가 수단을 얻게 될 전망입니다.

실험용 경수로는 5MW 흑연감속로보다 적어도 수 배에 달하는 플루토늄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을 것으로 당국과 전문가들은 추산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경수로는 흑연감속로에 비해 폐연료봉 재처리 기간이 길고 플루토늄 순도도 떨어져 핵무기급 원료를 만드는 데 상대적으로 효율이 떨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그러나 북한이 2021년 1월 8차 당 대회 이후 박차를 가하고 있는 핵 무력 확대와 고도화 기조의 일환으로 영변의 핵 원료 생산 능력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김정은 위원장이 핵 능력, 핵 탄두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라고 이미 지시했고 30 MW 실험용 경수로를 풀 가동하면 플루토늄 양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북한의 의도는 고농축 우라늄과 함께 플루토늄 양을 늘리겠다는 것이고 다시 말씀 드리지만 북한판 핵 강압전략만이 답이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북한이 위성 등을 통해 미국 등 외부사회에 노출되는 영변 핵 단지에서 이런 활동을 보이는 데 대해 이곳이 여전히 강력한 북한 핵 프로그램의 심장부라는 점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영변 핵 단지는 플루토늄 외에도 무기급 핵 물질 확보를 위한 또 다른 수단으로 우라늄 농축시설을 가동 중이고 수소폭탄의 원료인 삼중수소도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당시 주요 대북 제재 해제를 위한 조건으로 영변 핵 시설 폐기를 제안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그 이상의 조치를 요구하면서 북한 측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핵 보유국임을 인정 받고 군축 협상을 하기를 원하는 북한으로선 영변에서 활발한 핵 물질 생산 움직임을 보임으로써 ‘영변 폐기’가 미국에게 대북 제재 해제 등 카드와 맞바꿀만한 가치가 있다는 점을 부각하려 한다는 분석이 제기됩니다.

통일연구원 박형중 석좌연구위원은 북한은 내년 11월 미 대선 결과가 어떻든, 즉 미국의 차기 행정부가 트럼프식 협상에 나서든 대북 강경책으로 나오든 지금은 핵 무력을 최대한 늘리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형중 석좌연구위원] “이를 테면 과거 트럼프가 취했던 입장을 취할 건 지 아니면 거기에 변화가 있을 건지 이 두 가지 모두에 도박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이 두 가지 경우 중 어느 경우가 등장하더라도 북한 입장에선 지금 현재 능력을 최대한 증가시키는 게 가장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핵무기 원료 생산 확대 움직임이 추가 핵실험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일각에선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북한 함경북도에 위치한 풍계리 핵실험장이 언제든 핵실험이 가능할 만큼 복원이 끝난 상태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 국방부 산하 국방연구원 박용한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실험용 경수로 가동 움직임을 노출한 것은 내년 미 대선을 염두에 두고 여전히 모호성으로 남아 있는 북한 7차 핵실험 가능성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키는 효과를 노린 행동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용한 선임연구원]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냐 이런 추측이 나오는 것 자체가 결국 북한이 원하는 그런 효과가 달성됐다, 북한은 그런 추가 핵실험 가능성을 통해서 한국이나 미국이 핵무기에 대한 인정이라든지 비핵화 협상에 본인들이 유리한 여건에서 다시 돌아오길 원하는 이런 쪽에서 해석할 수 있겠죠.”

실험용 경수로 가동 움직임이 당장 북한 핵실험 가능성을 높이는 직접 요인이 되는 건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경수로의 완전 가동까지는 지금부터 6개월, 그리고 플루토늄 생산까지는 1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는 이미 수소탄 시험까지 한 북한이 또 핵실험을 한다고 해도 전술핵탄두용 소형 핵실험일 가능성이 크다며, 미국은 물론 중국에 미칠 부정적인 파장 등을 고려할 때 섣불리 추가 핵실험에 나서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고유환 명예교수] “만약 7차로 가면 전반적으로 더 이상 북한에 대한 비핵화 협상은 없는 거거든. 그것은 한계선을 넘는 거라고 봐야 될 거에요. 중국은 그게 바로 한국, 대만, 일본으로의 핵 확산으로 이어진다고 볼 거거든요.”

전문가들은 북한이 올해 5차례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지난 달 군사정찰위성 발사, 그리고 이번에 경수로 가동 움직임 등 전략적 도발에 집중하는 양상이라며 곧 열릴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미국을 겨냥한 핵 무력 강화 메시지를 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