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영TV 방송이 탈북민들의 필사적인 탈출을 그린 다큐 영화를 미 전역에 방영할 예정인 가운데 미국 내 탈북민들이 큰 기대감을 나타냈습니다. 북한 주민들의 아픔, 가족과 자유의 소중함이 미국 안방에 전달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 내 탈북 난민 1호인 데보라 최 씨는 미국 공영방송 PBS가 탈북민 이야기를 담은 다큐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를 미 안방에 방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감격했다”고 말합니다.
지난 2004년 미국 의회가 제정한 북한인권법에 근거해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은 최 씨는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졌다”며 미국의 친구들에게 말로만 전했던 자신의 탈북 이야기를 직접 보여줄 기회라고 강조했습니다.
[데보라 최 씨] “제가 최초로 미국에 왔을 때는 이런 일들은 상상도 못 했었는데 십수 년이 지나가고 미국 공영방송이 방영한다니 진짜 실감이 나지 않고 믿기지도 않는 것 같아요. 미국 친구들을 많이 만나면서 제가 말로 넘어온 과정을 설명했었는데 이제는 그들이 다큐멘터리 영화로 생생하게 볼 수 있어서 자세하게 실상을 알게 될 것이고 탈북민들이 겪는 아픔과 고통을 더 자세히 알게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PBS는 앞서 간판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인디펜던트 렌즈(Independent Lens)’를 통해 탈북민 가족들의 필사적 탈출 이야기를 그린 다큐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를 9일 방영한다고 밝혔습니다.
탈북민 두 가족의 북한 탈출과 강제북송, 그들을 구출하려는 한국 목사의 노력을 생생하게 담은 다큐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는 지난 1월 세계 독립 영화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선댄스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는 등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며 관심을 끌었습니다.
미국의 매들린 개빈 감독이 제작한 이 영화는 오는 3월 열릴 제96회 아카데미상 다큐멘터리 장편영화 부문 예비후보 중 하나로 최근 선정돼 주목을 받았습니다.
PBS는 방영 나흘 전인 5일 홈페이지에 “북한에서 탈출하면 가족은 어떻게 되는가, 그리고 (북한이 주장하는) 지상낙원 너머의 끔찍한 이야기들”이란 제목으로 영화를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특히 영화에 등장한 갈렙선교회의 김성은 목사와 중국에서 강제북송된 뒤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 아들을 애타게 그리는 탈북민 이소연 씨와의 특집 인터뷰를 통해 북한 주민들의 일상과 탈북 과정, 한국 내 정착 생활 등을 자세히 전했습니다.
미국 내 탈북민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그린 다큐 영화가 미 안방에 방영된다는 소식이 반갑다며 다양한 바람을 VOA에 나눴습니다.
지난 10월 미국 내 600여 개 극장에서 개봉됐을 때 극장을 직접 찾아 영화를 관람했다는 조성우 씨는 “언론이 자주 다루는 핵·미사일이나 김씨 정권에 가려진 주민들의 삶과 세뇌 공포 등 북한 체제를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성우 씨] “보통 뉴스에 보도되는 세습 정치, 핵무기 개발 외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심리 상태, 공포, 오랜 세월 동안 받아온 세뇌에 의해 의식이 굉장히 굳어졌잖아요. 나중에 영화에 나오는 할머니가 대화하는 걸 보면 자유의 땅에 와서도 마음 놓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북한에서 배우고 해오던 거짓말을 계속하고 있잖아요. 한동안은요. 그런 것 보면서 참 세뇌정치가 얼마나 무섭고 사람들의 의식을 반영구적으로 바꿔 놓았는지 그 심각성을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북한 엘리트 출신으로 현재 미국 컬럼비아대학원에서 ‘글로벌 리더십’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이현승 씨는 앞서 영화를 보며 “2시간 내내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영화는 “김씨 일가가 파괴한 가족 간의 그리움과 사랑을 담고 있어 많은 미국 시청자가 공감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습니다.
[녹취: 이현승 씨] “북한은 보통 가족보단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데, 이 휴머니즘, 사람의 본성이죠.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을 지키려는 마음. 그런 것이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잘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이 씨는 “사랑하는 가족조차 자유롭게 만나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10대 청소년을 정치범수용소로 보내는 정권이 과연 정당성이 있는 것인지 시청자들 스스로 판단하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영화 속 3대에 걸친 노 씨 가족 5명은 천신만고 끝에 중국과 동남아를 거쳐 한국에 안착했지만 이소연 씨의 17살 아들 정청 군은 엄마와 재회하기 위해 탈북했다 중국에서 체포돼 북송된 뒤 14호 개천관리소에 수감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국 무단장 지역에서 수년간 숨어지내다 미국 내 기독단체 ‘318 파트너즈’의 도움으로 10여 년 전 미 동부 지역에 정착한 저스틴 서 씨는 “지난 10월 말 극장에서 이 영화를 관람하면서 펑펑 울었다”고 말했습니다.
중국에서 숨어 지내며 겪었던 악몽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워싱턴에서 연쇄적으로 열린 중국의 탈북민 강제북송 반대 집회를 기독교 단체들과 공동 주도했던 서 씨는 “많은 미국인이 이번 PBS 방영을 통해 북한 인권 침해를 조장하는 중국의 잔혹한 실체를 바로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저스틴 서 씨] “그냥 보시지 말고 중국에서 얼마나 포악한 짓을 하는지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중국에다가 압력을 가해서 그 사람들을 사람 대접하라고. 그리고 국제 난민으로 대우해 북한으로 보내지 않게 미국인들이 이것을 미국 정부에 호소하길 바랍니다.”
일부 탈북민은 PBS 방영을 통해 색안경을 끼고 탈북민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미 중서부에 사는 허강일 씨는 “종종 탈북민을 북한에 가족을 버리고 온 이기주의자로 매도한다”며 영화를 통해 “탈북민이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는 잔혹한 환경을 깨닫길 바란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허강일 씨] “가족이 있으면서도 왜 그런 아픔을 안고 떠날 수밖에 없는지. 그 체제가 얼마나 사람들을 못살게 굴고 구박하고 죽이고 고문했으면 사람들이 이 길을 죽음을 무릅쓰고 택했는지를 정말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허 씨는 특히 “김정은 정권의 세뇌와 감시로 가족 간에도 의심하고 고발하게 만들기 때문에 소통이 막힐 때가 많다”면서 “희망이 없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 대학 교원 출신으로 미국 남부에 사는 사라 씨는 영화를 통해 탈북민에 대한 일부 편견이 사라지길 바랐습니다.
“많은 언론에 비친 탈북민 등 주민들은 못 배우고 못 먹는 동정의 대상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녹취: 사라 씨] “내 손톱이 곪아 터지면 아프다고 소리쳐도 북한 사람들의 아픔은 아무리 수천 번 이야기해도 알 수 없으니까 다큐 영화를 방영하는 것이 정말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북한 주민도 인간미가 있고 감정도 있고 정말 뜨거운 사람들입니다. 북한에 태어난 게 잘못이 아니라 김정은 체제가 잘못이지요.”
미국 내 탈북민들은 또 이 영화가 ‘자유’의 소중함을 미국인들에게 일깨우길 바란다고 강조했습니다.
조성우 씨는 “자유세계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누렸던 것이 어떤 나라에선 상상하기 힘든 사치일 수 있다”며 “목숨을 걸고 필사적으로 탈출하는 탈북민들을 보며 자유에 대해 감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이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8일 VOA에 아카데미상 최종 후보를 선정하는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들의 투표가 11일부터 시작되고 23일 5개 후보작이 발표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회원들 사이에 높은 관심과 호평이 이어지고 있어 최종 후보에 오를 것으로 내심 크게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