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조태열 신임 외교부 장관은 북한의 연이은 대남 도발은 미한일 공조에 균열이 가게 하려는 의도라고 말했습니다. 조 장관은 한국은 북한의 도발에 단호하되 절제된 대응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의 조태열 신임 외교부 장관은 서북도서 인근으로의 포 사격 훈련 등 최근 북한의 대남 도발은 한미 확장억제와 한미일 안보협력 등 대북 억제력이 강화되는 데 대한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조 장관은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가진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녹취: 조태열 장관] “윤석열 정부 들어서 한미일 확장억제력이 커지고 대북 억제력을 강화하는 우리의 구체적인 노력이 굉장히 가시화되면서 불안감을 느끼는 것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뭔가 한미일 사이의 어떤 이간, 갈라치기를 한다든가 어떤 신뢰를, 신뢰에 균열이 가게 하거나 그런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갖고 있고요.”
조 장관은 남북한 대치 국면이 ‘치킨게임’ 양상으로 흘러가는 게 아니냐는 지적엔 “도발이 강화되고 있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다고 안보가 확보되는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북한의 도발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단호하되 굉장히 절제됐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도발에 대해선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엄정하고 단호하게 대응해야 균형이 생기고 국민들이 안심하게 되는 것”이라고 부연했습니다.
조 장관은 앞서 11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취임 인사를 겸한 첫 전화통화에서도 “이런 입장을 분명히 얘기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지난 연말 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를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이후 연초에 9.19 남북 군사합의로 설정한 서해완충구역에 포 사격을 연이어 하면서 긴장을 높였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북한은 미한일이 공동 대응하기 어려우면서도 한반도 군사적 긴장을 극대화하는 도발을 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전쟁 등으로 부담이 커진 미국에게 남북한 무력 충돌 가능성을 위협하는 양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조 박사는 북한의 이런 도발은 한반도 안정을 원하는 미국과 강경한 대응을 공언한 한국 사이에 틈을 벌리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명시적으로 대한민국을 공격하진 않지만 이것으로 인해서 군사적 긴장은 최고조로 올라가거든요. 그러니까 한미일이 공동 대응하기 어려운 형태의 도발을 지금 시도하는 거고요, 우발적 충돌 가능성도 커지고. 이건 미국에겐 상당한 부담입니다. 그러니까 미국이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거든요.”
북한의 일본에 대한 태도는 눈에 띄게 유화적으로 변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지난 5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각하’란 표현을 써가며 이시카와 현 지진 피해를 위로하는 서한을 보냈습니다.일본의 자연재해에 관해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일본의 총리에게 위로서한을 보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북한 매체들이 수시로 내보냈던 일본 비난 기사도 지진 발생 이후 사라졌습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1일 지진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일본의 군비 확대와 무기 배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등 거의 매일 일본 비난 기사를 실었습니다.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는 북한이 기시다 정부의 자국 내 지지율이 존립이 위태로울 만큼 떨어진 상황을 노리고 유화 제스처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고유환 명예교수] “기시다 정권이 지지도가 상당히 떨어진 상태거든요. 그런 국내정치적 이유 때문에 북한과의 관계를 좀 풀어보려고 하지 않겠느냐 그런데 물론 한미일 공조를 깨고 나가는 것은 부담이 있겠지만 기시다 정권 유지 자체가 어려울 수 있는 상황이거든요. 그런 상황이니까 북한도 한번 제스처를 써 보는 것 같고.”
기시다 총리는 취임 직후부터 북한에 대한 ‘조건없는 대화’를 제안해 왔고 지난해 5월에는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김 위원장과 대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에 박상길 북한 외무성 부상은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반응했고 양국은 실제로 지난해 상반기 제3국에서 두 차례 비공개 접촉이 이뤄졌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도 있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한국에 대한 공세에 집중하는 것은 미한일 대북 안보 공조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반증이라며, 미한일의 강력한 대북 억제력이 각종 연합훈련과 전략자산 전개로 현실화된 데 대한 마땅한 군사적 대응책이 없기 때문에 외교전을 펴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한미일이 그렇게 확장억제를 강화하니까 북한이 감당이 안되거든요. 그래서 이들이 중점적으로 하는 것은 어쨌든 한미일을 떨어뜨려 놓으려는 게 첫째, 두 번째는 이런 외교전을 통해서 자신들의 정당성 명분싸움을 계속하는 것, 일종의 말폭탄을 하는 것, 군사안보적 대응이 제한되니까 하는 그런 선택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읽혀요.”
한편 조태열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한중 관계와 관련해선 “한국이 동맹과 연대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중국과 관계가 다소 불편을 겪고 있다”며 특히 북 핵 문제와 관련한 한중 간 입장 조율의 필요성을 지적했습니다.
그는 “북한 핵 문제라든지 여러 선을 지켜야 할 우리만의 기준이 있는데 그런 문제에서 입장 조율이 안 되면 갈등을 해소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 국제무대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두둔하는 입장을 보이는 게 잘못임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조 장관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과 관련해 “시 주석의 일정이 허락하면 가급적 조속한 시일 내에 이뤄지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조 장관은 “한중일 3국 간 상호 편리한 시기에 정상회의를 개최하기로 양해가 이뤄졌기 때문에 여러 외교 일정과 상황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시 주석 방한보다 정상회의가 먼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습니다.
조 장관은 “그동안 한국 대통령의 방중은 여섯 번이었고, 시 주석의 방한은 한 번밖에 없었으므로 이번엔 시 주석이 오는 게 합당한 순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