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진항서 선박∙컨테이너 사라져…북러 거래 ‘전담선’은 중국 입항

라진항을 촬영한 17일 자 위성사진. 북한 전용 부두(원 안)에 컨테이너와 선박이 발견되지 않는다. 반면 중국 전용 부두(사각형 안)에는 12일 하역된 것으로 추정되는 컨테이너 더미가 보인다. 사진=Planet Labs

북러 ‘무기 거래 현장’ 라진항을 드나들던 대형 선박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부두에 쌓인 컨테이너도 함께 사라졌는데, 지난 수개월간 이곳에 입항하던 러시아 선박은 느닷없이 중국 항구에서 발견됐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라진항에서 마지막으로 대형 선박이 포착된 건 지난 12일입니다.

‘플래닛 랩스(Planet Labs)’의 위성사진 자료에는 이날 대형 선박 1척이 한 때 ‘중국 전용’으로 분류됐던 부두에 선체를 밀착시킨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그런데 다음날인 13일 자 위성사진에선 이 선박이 중국 전용 부두는 물론 바로 옆 ‘북한 전용’ 부두에서도 발견되지 않았고, 이런 현상은 이 일대 마지막 위성사진 촬영 시점인 18일까지 이어졌습니다.

통상 이 일대에선 중국 전용 부두에 대형 선박이 정박하고 하루 이틀 뒤면 북한 전용 부두에서 비슷한 크기의 선박이 발견되곤 했습니다.

이에 대해 영국 합동군사연구소(RUSI) 등은 러시아에서 출항한 선박이 미리 싣고 온 컨테이너를 중국 전용 부두에 하역한 뒤, 북한 전용 부두로 이동해 새 컨테이너를 싣고 떠나는 과정으로 분석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12일 중국 전용 부두를 떠난 선박은 바로 옆 북한 전용 부두에 들리지 않은 채 라진항을 벗어났고, 이후 다른 선박이 이곳에 정박하지 않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14일에 이 일대가 짙은 구름에 가려 위성사진 판독이 불가능하고, 15일과 16일엔 ‘플래닛 랩스’가 위성사진을 촬영하지 않은 만큼, 14~16일 사이에 선박이 입출항했을 가능성은 남아있습니다.

다만 12일 이후 북한 전용 부두에 컨테이너 더미가 전혀 쌓이지 않고 있어 텅 빈 부두에 선박이 드나들 특별한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라진항의 북한 전용 부두를 촬영한 7일과 13일 자 위성사진 비교. 7일(왼쪽)에는 부두에 많은 컨테이너(사각형 안)가 쌓여 있지만 13일에는 텅 빈 모습이다. 사진=Planet Labs

일반적으로 북한 전용 부두에서는 선박 입항 수일 전부터 약 100m 길이의 컨테이너 행렬이 포착됩니다. 또 선박이 들어와도 컨테이너를 다 싣지 못하는 듯 컨테이너가 현장에 계속 남아있고 이후에는 새로운 컨테이너를 쌓는 작업이 목격돼 왔습니다.

따라서 텅 빈 부두를 거의 볼 수 없었는데 ‘플래닛 랩스’의 12일, 13일, 17일, 18일 자 위성사진에선 이례적으로 컨테이너 더미가 식별되지 않은 것입니다.

앞서 백악관은 지난해 10월 북한이 러시아에 컨테이너 1천 개가 넘는 분량의 군사 장비와 탄약을 제공했다며, 라진항에 약 6m 표준 규격의 해상 운송 컨테이너 300여 개가 적재된 모습을 담은 위성사진 자료를 공개했습니다.

백악관은 라진항에서 선적된 컨테이너가 러시아 선박에 실려 러시아 항구로 옮겨진 뒤 열차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이동한다고 전했었습니다.

이후 VOA는 라진항을 촬영한 위성사진을 분석해 지난해 8월 26일 최초 선박 포착 이후 2023년 말까지 이 일대를 출입한 선박을 26척으로 추산한 바 있습니다. 또 올해에도 약 사흘에 1척꼴로 선박의 입출항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었습니다.

따라서 선박과 컨테이너의 움직임이 일주일째 중단된 건 이례적입니다.

물론 이 같은 사실만으로 북한과 러시아가 거래를 중단한 것으로 단정할 순 없습니다.

두 나라가 선적 항구를 바꿨을 수도 있고, 일시적인 ‘숨고르기’에 들어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선박이 아닌 다른 운송 수단을 활용할 가능성도 남아 있습니다.

실제로 이곳에서 북동쪽 약 35km 떨어진 북러 국경 지대에선 북한과 러시아를 오가는 것으로 추정되는 열차 여러 대와 열차로 이동되는 화물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까지 북한 라진항을 드나든 러시아 화물선 앙가라호가 중국 항구에서 발견돼 주목됩니다.

선박의 실시간 위치정보를 보여주는 ‘마린트래픽(MarineTraffic)’에 따르면 앙가라호는 현지 시각 16일 오후 6시경 중국 닝보-저우산 항 해역에서 위치 신호를 발신한 뒤 사라졌습니다.

앙가라호는 지난해 5월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과 국무부의 제재 목록에 오른 선박으로, 지난해 8월 10일 러시아 오호츠크해를 끝으로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통한 위치 신호를 내보낸 적이 없었습니다.

이에 따라 마린트래픽 지도상에는 마지막 신호 발신지인 오호츠크해에 몇 달째 머물고 있는 것으로 표시되지만 실제로는 북한 라진항에 여러 차례 드나드는 모습이 민간 위성사진에 포착돼 왔습니다.

그러다 16일 갑작스럽게 중국 항구에서 새로 신호를 발신한 것입니다.

앙가라호가 북한과 러시아를 잇는 항로를 벗어났음을 의미하는데, 북러 거래의 ‘연결선’이 양국 간 민감한 거래를 중국과 연계할 가능성이 주목됩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