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해커들의 불법 수익금이 세탁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상화폐 계좌가 미국 정부에 최종 몰수됐습니다. 미 검찰이 민사 몰수 소송을 제기한 지 4년 만입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가상화폐 계좌에 대한 몰수 소송을 담당한 미국 워싱턴 DC 연방법원이 5일 해당 계좌(지갑)에 대한 몰수를 명령했습니다.
미국 연방법원 전자기록시스템에 따르면 재판을 담당한 워싱턴 DC 연방법원의 티모시 켈리 판사는 이날 판결문을 통해 미국 연방 검찰의 ‘궐석 판결’ 요청을 승인하고, 이에 따라 피고의 자산과 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미국 정부로 귀속한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검찰은 지난 2020년 3월 북한 해커들의 불법 수익금이 세탁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상화폐 계좌 146개(최초 113개)에 대해 민사 몰수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날 몰수 결정이 내려진 계좌는 이중 1개가 줄어든 145개입니다.
이들 계좌는 지난 2018년과 2019년 사이 북한이 한국 등에서 운영 중인 가상화폐 거래소 등에서 탈취한 가상화폐가 직접 예치되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지는 데 이용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켈리 판사는 별도로 공개한 의견문에서 “이번 소송은 북한 요원들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4개의 가상화폐 거래소를 상대로 한 해킹에 대한 미국의 조사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검찰이 소장에서 주장한 내용을 인정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2018년 약 2억 5천만 달러의 가상화폐 탈취 사건이 발생했으며, 2017년 12월엔 또 다른 거래소가 전체 자산의 17%에 달하는 가상화폐를 해킹으로 도난당한 사실을 발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2019년 12월경 한국 소재 거래소에서 탈취 사건이 일어나고, 2018년 여름엔 또 다른 한국의 거래소에서 북한 요원들에 의한 3억 달러의 가상화폐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들 자금 중 일부가 중국인 톈인인(Tian Yinyin)과 리쟈동(Li Jiadong)이 개설한 계좌 등을 통해 송금되거나 기프트카드로 교환되는 방식으로 세탁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앞서 미국 정부는 톈인인과 리쟈동이 북한이 탈취한 약 2억 5천만 달러 상당의 가상화폐의 약 36%를 전달받아 이중 일부를 중국 은행 계좌로 옮기는 등의 자금세탁 범죄를 저질렀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두 사람은 현재 미국 법무부로부터 형사 기소된 상태입니다. 또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은 이들을 특별지정제재대상(SDN)으로 지정했었습니다.
켈리 판사는 검찰이 미국 정부의 공식 공고문 등을 통해 문제의 계좌의 주인을 찾는 과정을 거쳤지만 아무도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톈인인 등에게도 해당 계좌에 대한 몰수 소송 사실을 알렸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도 의견문에 담았습니다.
이에 따라 재판 과정 없이 원고의 주장만을 바탕으로 원고에게 승소 판결을 내리는 궐석 판결의 요건이 충족됐다는 설명입니다.
또한 해당 계좌가 자금세탁 범죄에 연루된 사실을 검찰이 입증한 사실을 이번 판결의 근거로 내세웠습니다.
이번 판결에 따라 북한 해커들의 수익금 등이 담긴 가상화폐 계좌 145개가 미국 정부의 국고로 최종 귀속됐습니다.
다만 이 계좌에 얼마나 많은 자금이 남아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앞서 VOA가 검찰이 몰수를 추진 중인 계좌의 잔액을 조회해 본 결과 이더리움의 이더(ETH)를 취급하는 계좌 일부에 자금이 남아있을 뿐 상당수 비트코인(BTC) 계좌는 비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북한 해커 등 특정인이 이미 이를 다른 계좌로 옮긴 것인지, 혹은 미 검찰이 미국 정부 소유 암호화폐 지갑으로 이체한 것인지는 현재로선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미국 정부는 지난 2018년 이후 대북제재 위반 자금에 대한 민사 몰수 소송을 제기해 이를 국고로 편입시키고 있습니다.
지난 2022년 4월 미 연방검찰은 익명의 싱가포르 기업의 대북제재 위반 자금 59만 9천 930달러와 중국 기업 위안이우드의 위반 자금 172만 2천 723달러를 몰수한 바 있습니다.
당시 검찰은 익명의 싱가포르 기업이 2017년 5월 조선무역은행(FTB)의 위장회사에 총 60만 달러를 송금했고, 위안이우드는 적도기니 소재 북한 임업회사 칠보우드의 위장회사에 최소 80만 달러를 보내거나 200만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세탁했다는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해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았습니다.
2022년 1월에는 4개의 익명 기업이 소유한 계좌 3개에 예치된 237만 달러가 대북제재 위반을 이유로 미국 국고로 귀속됐으며, 2021년 11월에는 북한과의 불법 거래가 드러난 중국 기업 ‘라이어 인터내셔널 트래이딩’의 자금 42만 달러와 이 업체의 대표 탕씬 등의 개인 자산 약 52만 달러에 대해 최종 몰수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또 싱가포르 소재 기업 밸머 매니지먼트와 트랜스애틀랜틱 파트너스, 중국의 단둥 청타이무역과 이 업체 대표 치유펑 등도 같은 혐의로 2018년에서 2020년 사이 미국 정부에 자산을 몰수당했습니다.
그 밖에 미국 정부는 2019년과 2021년 각각 북한 선박 ‘와이즈 어네스트’호와 싱가포르 유조선 ‘커리저스’호를 몰수해 매각한 바 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