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 필요성이 거론될 때마다 북한 지도부나 군부로 전용될 가능성이 제기돼 왔습니다. 따라서 효과적인 모니터링 체계가 구축되지 않는 한 외부 원조가 주민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시키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았는데요. 오늘 이슈 진단에서는 현장에서 대북 식량 지원 실무를 맡았던 두 전문가로부터 대북 지원의 효용성과 한계, 개선점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을 들어보겠습니다. 앤드류 나치오스 전 미 국제개발처(USAID) 처장과 제롬 소바쥬 전 유엔개발계획(UNDP) 평양사무소장의 토론을 김영교 기자의 진행으로 전해 드립니다.
기자) 북한은 유엔에 의해 20년 가까이 외부 식량지원 필요국으로 지정되고 있는데요. 나치오스 전 처장님, 북한의 만성적 식량 부족의 주요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치오스 전 처장) 북한은 중국조차도 포기한 집단 농업 체제를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북한만이 구소련이나 중국에서도 작동하지 않았던 마지막 남은 이 공산주의 농업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죠. 또한 북한은 개인 생산을 제한하고 국가가 통제하는 식량 배급소를 통해 배급하는 체제로 되돌아갔습니다. 이 식량도 성분에 따라 차등 분배되는데요. 예전에는 60여 개의 계급으로 나뉘어져 최상위권에 속하면 더 많은 식량을 얻을 수 있고, 최하위 등급이면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현재는 12개 계급으로 줄어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 12개 계급별로 배급량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정확한 근거는 없지만, 큰 문제입니다.
기자) 1995년부터 대북 식량 원조를 시작했던 미국은 세계 최대 공여국 중 하나였습니다만, 현재 지원은 중단된 상태입니다. 그런데 북한 주민들의 식량 상황을 개선하고 경제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분배조건 없는 원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오는데요. 소바쥬 전 소장님, 이 같은 시각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소바쥬 전 소장) 먼저, ‘원조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 입니다. 북한이 극심한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해외 투자가 필수적입니다. 분명히 그들은 충분한 식량을 생산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식량 등 외부 지원을 받아야 합니다. 수십억 달러의 투자 없이 북한이 전력 생산과 식량 분배 체계를 재건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원조 즉, 외부의 개입이나 투자가 필요한 것이죠. 둘째, 조건 없는 지원에 대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조건부 원조가 북한의 핵 개발을 중단시키는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유감스럽게도 핵보유국 지위를 획득했고, 그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 정권이 안보를 명분으로 주민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강요했기 때문에 조건부 원조는 실패한 것이죠. 그래서 저는 인도적 지원을 다른 국제 지정학적 목표와 연계시키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나치오스 전 처장) 저도 어떤 식으로든 진행되지 않고 있는 핵 협상과 식량 원조를 연계해서는 안 된다는 데 매우 동의합니다. 제가 1990년대 비정부기구(NGO)에서 일하고 있을 때, 또 이후 국제개발처장으로 일할 때 그런 것에 맞서 싸웠습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진행 중이던 핵 협상을 식량 원조의 조건으로 내걸지 않기로 결정하기도 했었죠. 그러나 다른 조건은 필요한데, 식량이 전달돼야 할 사람들에게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인도적 기준에 기반한 조건입니다. 첫째는 우리가 원조받는 사람들의 영양 상태를 정기적으로 조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식량 지원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도 그들의 영양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다면 식량이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뭔가 잘못됐다는 뜻이죠. 두 번째는 세계식량계획(WFP)이나 유니세프(UNICEF), 다른 국제기구, 가급적이면 WFP의 예고 없는 감시가 있어야 합니다. 마을에 들어가서 식량이 제대로 분배되고 있는지, 전용되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식량이 전용되면 식량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없습니다. 항상 전용은 발생하지만, 그것이 60%나 된다면 용납할 수 없죠. 한국어를 할 수 있는 모니터링 요원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당국이 감시는 허용하지 않고 통역만 제공하다 보니 문제가 발생합니다. 1997년 6월 제가 북한에 갔을 때 외무성에서 통역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통역 내용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자) 소바쥬 전 소장님, 나치오스 전 처장님 말씀대로 대북 지원에 대한 논의를 할 때 감시의 부재나 원조 도달 문제 등이 항상 제기됩니다. 북한 측의 중대한 변화가 없는 한, 원조 프로그램이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소바쥬 전 소장) 인도적 지원에 대한 국제적 기준 같은 조건은 바로 제가 북한에 있을 때 그들과 협상하기 위해 매우 열심히 노력해 왔던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야 합니다. 통역과 같은 문제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고요. 또 우리는 대북 원조를 논의할 때 전용 문제를 많이 얘기합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소말리아에서의 전용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얘기하지 않죠. 저는 또 WFP의 식량 배급 감시 능력에 대해서도 옹호하고 싶은데요. WFP가 공장까지 지원에 들어갔습니다. 고아원에 들어가는 죽이나 과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다 관리했죠. 수유 중인 새로운 산모도 지원했습니다. 감시는 사실 꽤 괜찮았습니다. 수도나 위생 시설, 배관 시설 등은 전용되지 않았고, 지역사회에 직접 전달됐습니다. 물론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식량이나 원조가 전용되지 않도록 해야 하지만, 견고한 통제를 구축할 수 있다고 봅니다.
기자) 지난달 방한한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미국이 대북 지원에 열려 있음을 시사했는데요. 물론 북한은 그동안 미국의 어떤 대화 제안에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이 북한과 대화를 열 수 있는 물꼬를 터줄까요?
나치오스 전 처장) 모든 정치적 대화와 인도적 지원은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를 연결하는 것은 재앙입니다. 과거에도 그렇게 하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북한과 합의를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핵을 제한하는 어떠한 종류의 합의에도 서명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위험하고 완전히 무책임한 행동입니다. 주민들은 굶주리고 있는데 핵무기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짓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현실은 그들이 어떤 인도적 지원도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그들은 린다-토머스 대사의 대화 제의에도 응하지 않았죠.
소바쥬 전 소장) 저도 나치오스 전 처장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지금 북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누가 알겠는가’ 하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범죄 행위에 버금가는 국경 폐쇄가 이뤄진 상황에서 말이죠. 우리는 북한에 대한 정보와 데이터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들어가야 합니다. 유엔이 하고 있는 일 중 하나는 세계에서 가장 위태로운 지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실제적인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유엔은 국제사회를 대표하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북한에서 변화가 일어나기를 원한다면, 위에서부터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결국 변화를 원하는 주민들로부터 이뤄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다시 북한에 들어가야 합니다. 인도적 지원이 그 방법이 될 수 있지만, 미국과 북한 사이에 논의가 가능한 다른 주제들도 또 있을 겁니다. 김정은이 더 큰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들 말입니다.
아웃트로: 지금까지 대북원조의 필요성과 개선 방안에 대해 앤드류 나치오스 전 미국 국제개발처 처장과 제롬 소바쥬 전 유엔개발계획 평양사무소장의 대담을 들으셨습니다. 진행에 김영교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