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군 당국은 북한의 이른바 ‘오물 풍선’ 살포에 맞서 대북 확성기 방송 전면 시행을 이틀째 이어갔습니다. 북한은 과거 대북 확성기 방송에 예민한 반응을 보여왔기 때문에 남북한 접경 지역에서의 긴장 수위가 높아지는 양상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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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군 당국은 21일에 이어 22일에도 오전 6시부터 대북 확성기 방송을 시작했고 방송은 밤 시간까지 이어졌습니다.
한국 군은 북한이 대남 오물 또는 쓰레기 풍선 살포 준비를 그만둘 때까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지속적으로 시행한다는 방침입니다.
확성기 방송은 내부 정보 통제가 심한 북한에서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내용을 전파함으로써 북한 군인과 주민의 동요를 끌어내겠다는 취지입니다.
이성준 한국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22일 정례브리핑에서 북한 내부 동요라든지 탈북 또는 기강이 흔들리는 등의 다양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 이에 따른 2차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성준 공보실장] “대북 확성기 방송은 한 번 실시했다고 그래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방송을 지속적으로 듣다 보면 천천히 효과가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대북 방송이 지속된다면 그에 따른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한국 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은 국방부 직속 국군심리전단이 운영하는 ‘자유의 소리’ 방송 내용을 담아 송출하고 있습니다.
방송은 최근 동부전선 인민군 46사단 전방 비무장지대(DMZ) 안에서 탈북을 시도하다 압송된 북한 병사의 소식을 알린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또 리일규 쿠바 주재 북한 참사관 가족의 한국 망명과 비무장지대 북한 측 지역에서 지뢰 매설작업을 하다가 폭발 사고로 북한 군 다수가 사망했다는 소식 등을 방송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국 군은 전방 지역에 고정식 24개와 이동식 16개 등 모두 40개의 대북 확성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군은 고정식뿐 아니라 이동식 확성기 가동 가능성도 열어 놓았습니다.
이성준 실장입니다.
[녹취: 이성준 공보실장] “어제 13시부로 대북 확성기에 대한 모든 제한을 해제하였습니다. 고정형 확성기를 전 전선에서 가동했고 기동형 확성기도 앞으로 가동을 할 것입니다.”
북한은 지난 5월 말부터 한국 내 민간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 등에 반발해 모두 9차례에 걸쳐 오물 또는 쓰레기 풍선을 날려보냈습니다.
지난 21일 오전 9시쯤부터 저녁 8시쯤까진 모두 500여 개의 대남 쓰레기 풍선을 날려 보냈고 한국의 경기도 북부와 서울 등에 240여 개가 떨어졌습니다.
내용물은 대부분 종이류였습니다.
한국 군은 북한이 또 다시 쓰레기 풍선을 보낸 지난 18일부터 서부와 중부, 동부전선에 배치된 고정식 확성기를 릴레이식으로 돌아가며 제한적으로 방송하며 대응했습니다.
그러다가 21일 오후 1시부턴 전방 지역 모든 확성기를 동시에 가동하는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한국 군이 고정식 확성기 전체를 동시에 가동하는 것은 2018년 9.19 남북 군사합의 이후 약 6년 만에 처음입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문성묵 통일전략센터장은 한국 군 당국은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경고하면서 단계적 대응을 해왔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문성묵 센터장] “분명히 북한이 추가 도발하면 전적으로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는데도 (오물 풍선을) 날렸단 말이에요. 그렇다면 안 하면 말의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 아닙니까. 결국 어떤 조치도 상대방에게 신뢰감을 줘야 되잖아요. 그런 차원에서 이런 조치를 했다고 생각해요.”
한국 군 당국은 대북 확성기 방송 전면 재개에 대한 북한 군의 대응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이 기술적 열세에 있고 가장 꺼리는 한국 측의 심리전 수단이고 이에 대한 과거 북한의 반응은 매우 민감했습니다.
한국의 신형 확성기의 가청 범위는 이동식 확성기는 8~10km, 고정식 확성기는 12~15km로, 군사분계선에서 개성공단까지 소리가 닿을 정도의 성능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15년 북한의 목함 지뢰 도발에 대응해 박근혜 당시 한국 정부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는데, 북한은 서부전선에서 포격 도발을 감행해 대응한 바 있습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달 9일 담화에서 “만약 한국이 국경 너머로 삐라 살포 행위와 확성기 방송 도발을 병행해 나선다면 새로운 우리의 대응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습니다.
지금은 남북한 간 대화 채널이 모두 끊겨 있고 북한은 한국을 교전국으로 규정, 한국과의 접경지대에서 방벽 설치와 지뢰 매설과 같은 적대적 행위를 하고 있고 한국도 9.19 합의 효력 전면 중지 이후 전방에서의 포 사격 훈련을 재개하면서 긴장이 고조된 상황입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남북한 당국이 확전을 원치 않는 조짐도 보이고 있지만 서로 응징을 공언하면서 사태가 출구를 찾기 힘든 미궁으로 빠지는 양상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조 박사는 북한이 물리적 대응에 나설 경우 한국도 원점타격을 공언한 만큼 사태가 심각해질 수 있다며, 유엔군사령부나 중국, 러시아 등 간접적인 대화 채널이라도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지금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면 결과적으로 김여정이 말한 새로운 대응엔 무력충돌도 포함이 된다, 그러니까 원하는 무력충돌이 아니라 이 상황을 종료시키기 위한 극단적 선택도 지금 배제할 수 없습니다. 양측 다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고 대북 단체들은 전단을 계속 보낼 것이고 지금 양측 간 대화 채널이 전혀 없거든요.”
민간 연구기관인 아산정책연구원 양욱 박사는 북한이 대남 군사 도발을 하기엔 부담이 크기 때문에 비군사적 카드를 꺼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양 박사는 한국 정부는 사이버 공격이나 위성항법장치(GPS) 전파 교란 등 북한의 전자전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양욱 박사] “일부 접경 지대에 대한 GPS 교란만이 간헐적으로 있었지만 북한이 GPS 교란을 상시적으로, 전방 모든 지역에 대해서 한다면 또 만약에 소위 전자기 스펙트럼 공격을 좀 더 광범위하게 수도권까지 영향을 미치는 식으로 한다면 이런 부분은 여태까지 우리가 한번도 겪어보지 않은 그런 형태의 공격이 될 수 있고요.”
북한은 한국 측의 확성기 전면 가동 뒤인 21일 오후 8시쯤 오물 풍선 살포를 멈췄습니다.
오물 풍선 살포 중단은 확성기 방송에 압박을 느껴서 일 수도 있지만, 풍향과 강수 등 기상 상황에 따른 것일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한국 합참은 “군은 굳건한 한미 연합방위태세 하에 북한 군의 활동을 면밀히 감시하고 있으며 어떠한 도발에도 압도적으로 대응할 능력과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