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한국전쟁 참전 기념일을 계기로 북-중 두 나라가 미 제국주의의 침략전쟁이었다는 왜곡된 주장을 한 목소리로 내면서 한층 밀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중국은 강경한 대미 메시지를 보내고 있고, 북한은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23일 중국 인민지원군의 한국전쟁 참전 70주년 기념식에서 미 행정부가 국제전략과 냉전사고에서 출발해 한국 내전에 무력 간섭을 결정했다며 한국전쟁을 미 제국주의 침략전쟁으로 규정했습니다.
또 “중국의 주권, 안전, 발전 이익이 침해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며 “중국 인민은 반드시 정면으로 통렬한 반격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미-중 갈등이 날로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 때리기’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향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경고를 보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북한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 이후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을 기념해 중국 인민지원군 열사능을 처음 참배하는가 하면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연일 북-중 관계가 그 무엇으로도 깨뜨릴 수 없는 불패의 친선으로 발전됐다는 등의 보도를 내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미-중 갈등이 경제 분쟁을 넘어 군사적, 이념적으로 확대되면서 수세에 몰린 중국과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이 장기 교착에 빠진 북한이 ‘공동의 적’인 미국의 압박에 대응해 전략적인 차원에서 공고한 양국 관계를 짐짓 과시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 대선을 일주일여 앞둔 상황에서 미국 차기 행정부를 겨냥해 강한 대미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는 관측입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북한의 대중 밀착이 한층 강화되는 양상이라며, 미 대선 이후 비핵화 협상 장기화에 대비해 미-중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높이기 위한 행보로 풀이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대선 이후 바이든이 됐든 트럼프가 됐든 북한과의 협상 밖에 방법이 없으니까요, 미국 행정부도. 그럴 경우 북한이 중국과 관계가 좋다는 것은 협상이 장기화하더라도 중국을 통해서 지원을 받으면 자신들이 자력갱생과 정면돌파가 가능하다라는 그런 얘기거든요. 또 미국 입장에선 미-중 관계를 생각하니까 북한을 중국으로부터 떼어놔야 하는 부분도 있는 거고요.”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북한으로선 대북 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그리고 자연재해 등 삼중고로 맞게 된 절체절명의 경제난이 더 급한 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조 박사는 비핵화 협상 장기화 우려는 이런 위기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며 이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우방이 별로 없는 중국을 향해 ‘러브콜’을 보내면서 생존 차원의 위기를 넘겨보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 북한으로선 장기전을 준비해야 되는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는 거죠. 내부 위기는 더 심해지고 장기전으로 가야 되는 상황이라고 하면 사실은 북한으로선 상당히 위협을 느낄 만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장기전을 준비하기 위해선 역시 중국이라는 뒷배가 필요한 상황이죠.”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엔 대북 제재 결의에 찬성했던 중국과 북한의 걸끄러운 관계가 해소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전망했습니다.
천 전 수석은 시 주석의 발언은 자국 국민들의 대미 항전 의지를 결속하기 위한 국내정치용 메시지라며 이를 위해 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도운 이른바 ‘항미원조’ 전쟁 70주년 기념일을 활용한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천영우 전 수석] “지금 미-중 간 대결과 경쟁의 맥락 속에서 어떻게 보면 중화인민 공화국 역사에서 미-중 경쟁과 연결시킬 수 있는 가장 큰 사건 아닙니까. 그러니까 지금 현재 내가 보기엔 중국 인민들한테 우리가 70년 전에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싸웠듯이 앞으로 미국과 다시 싸워야 될 정신을 가다듬자, 그런 취지로 한 걸로 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되든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든 미국의 대중 압박이 장기화할 것으로 보고 대내 결속과 대미 강경 메시지를 동시에 보낸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김 소장은 중국이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을 소폭 늘릴 순 있겠지만 여전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김흥규 소장] “중국은 유엔 제재를 넘어서서 북한을 지원할 생각은 없고요. 왜냐하면 중국의 새 대외전략은 결국은 미국 아닌 유엔이라는 무대를 통해서 자신의 대외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이런 게 기본방침인데 스스로 그것을 자기가 상임이사국인데 제재 결의했던 것을 일방적으로 깨는 것은 아주 바보 같은 짓이죠.”
한편 강경화 한국 외교부 장관은 2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시 주석이 한국전쟁을 미 제국주의 침략으로 규정한 데 대해 “북한의 남침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며 “중국에 대해 한국 입장을 분명히 전달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강 장관은 “한국전쟁은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했다고 과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도 명시됐다”며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도 이 문제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