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올해 표방한 여러 경제 전략은 비현실적이고 모순이 너무 많아 경제를 회생시키기 힘들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진단했습니다. 대외관계를 개선하고 생산수단을 개인과 공유하는 경제 자유가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김영권 기자가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 봤습니다.
복수의 대북 소식통은 최근 VOA에, 물자 설비와 재정난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한 북한 내 공장·기업소·농장 관계자들이 범죄자로 처벌될 걱정까지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회주의 경제 체제를 고수하는 국가가 원자재와 자금을 제공하지 않는 상황에서 계획을 보수적으로 세울 수밖에 없는데도 최고지도자는 계획을 낮췄다고 비판하고, 어떤 계획은 주관적으로 높였다며 강하게 질타해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겁니다.
게다가 기업소 자체적으로 돈을 빌려 공장을 돌리고 이자를 갚으며 직원들을 먹여 살리려면 생산량을 모두 국가에 바칠 수 없는 구조지만, 수뇌부는 오히려 8차 당대회 이후 이런 관행을 부정부패로 몰아 처벌과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북한 당국은 실제로 5개년 계획에 따라 당의 지도와 통제를 하급 단위까지 강화하고 세도주의 등 부패 척결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과거 자유유럽방송(RFE)의 고위 간부로 옛 동유럽 공산 경제 체제를 연구했던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김정은이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그가 해야 할 일과 정반대의 행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킹 전 특사] “My impression is that Kim Jong Un is doing the exact opposite of what he ought to be doing in these circumstances. The planned economy functions best when it responds to supply and demand requirements,”
계획경제는 수요와 공급 요건이 제대로 갖춰졌을 때 기능이 가장 잘 발휘되고 수요와 공급 요구에 느리게 반응하는 게 특징인데, 북한은 현재 그런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라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자금과 물자가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에서 1960년대식 계획 경제와 내각의 역할, 금속·화학 공업을 강조하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합니다.
중국 동북재경대학 경제학 석사 출신으로 북한 무역회사 부대표를 지낸 뒤 미국에서 북중 관련 컨설팅 활동을 하는 이현승 씨는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 내부 구조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정책을 강행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현승 씨] “너무 비현실적인 정책들입니다. 일군들이 자꾸 일을 안 하는 것처럼 강조하고. 기간 기업소에서 조금 나머지 이익 갖고 팔아서 자재 등을 보장하려고 하면 국가에서 다 뺏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장 기업소가 운영이 안 됩니다. 심지어 화학공업성, 금속공업성도 돈이 없으니까 원자재를 보장해주지도 못하고. 현실적으로 국가에서 자재나 자본을 대주지 않고 공장이나 기업소 자체로 생산해서 현물을 만들어 내라는 것인데 진짜 생땅에서 돈 나오는 것을 바라는 겁니다. 그런 것을 김정은이 요구하는 겁니다. 김정은 본인 자체가 이것을 이해 못 하는 겁니다.”
김 위원장이 5개년 계획의 핵심 과업으로 제시한 금속·화학 역시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지적입니다.
풍부한 지하자원으로 중화학공업을 일으켜 경공업과 농업을 발전시킨다는 1960년대 정책을 금속·화학공업에 적용한 것이지만, 지금은 당시와 달리 전력난과 자금난이 심각해 현실성이 없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전력이 부족해 철광석을 제대로 생산하지 못하는데 과학기술로 이를 극복해 경공업에 필요한 기계·설비 부품 등을 조달하라는 김 위원장의 지시는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합니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학부총장은 최근 한반도평화경제포럼(KPEF)이 주최한 좌담회에서 북한이 이미 1970년대부터 무연탄 등을 이용한 주체철, 석탄을 활용한 주체의 화학공업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강행하는 것은 경제적 논리보다 정치적 논리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녹취: 양문수 부총장] 3819“정치적 논리가 다시 개입되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분명히 이게 경제적으로 안 됨에도 불구하고 뭔지 모르지만, 이것을 해야 되는 상황이라면 경제관료 입장에서 아니 분명히 저것은 해서는 안 되는 데 했다가는 결국 돈만 집어먹고 별다른 성과가 없을 텐데 저것을 왜 하나라는 고민들 까지도 있을 수 있는 거죠.”
윌리엄 브라운 조지타운대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이 외부 충격에 덜 흔들릴 수 있는 자기 완결적 경제 체제 구축을 위해 100% 자력갱생을 강하게 외치고 있지만, 할아버지인 김일성이 들으면 웃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So, for Kim Jong Un to be saying we have to be 100% self-reliant, his grandfather would be laughing at it.”
브라운 교수는 김일성 주석이 1960년대에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를 만나 북한은 자력갱생을 원하지만, 기계와 설비의 30~40%는 수입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지금은 당시보다 교역 구조가 더 복잡해졌기 때문에 자력갱생 구호는 비현실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내각을 ‘경제사령부’로 지칭하며 내각의 중심적 역할을 강조하는 것도 현실을 외면한 정책이란 지적이 나옵니다.
8차 당대회에서 핵무력 등 군사력 증강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알짜배기 핵심 기업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당과 군대 등 특수기관이 내각의 주도에 따라야 한다는 건 실현 가능성이 적다는 겁니다.
미국에 망명한 북한 전직 간부는 4일 VOA에, “내각에 당 위원회, 내각 위에 당 경제부와 조직지도부, 각 성에는 당 위원회가 있어 인사권과 조직권을 쥐고 있는데, 내각이 주도권을 어떻게 쥘 수 있겠냐”고 반문했습니다.
“북한은 자본주의처럼 정치와 경제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계로 당이 경제사업을 집행하는 상황에서 내각을 강조하는 것은 공허한 정치적 구호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와 포전담당제로 가장 큰 성과를 보인 경공업과 농업 분야에 대한 최근 통제 강화 움직임도 경제 발전을 후퇴시킬 것이란 우려가 나옵니다.
한국의 민간단체인 평화재단은 최근 보고서에서 두 분야는 대외무역을 통한 비공식 무역으로 이 과정에서 권력기관과의 상납 관계가 형성되면서 권력 기관 사람들은 뒤에서 이권을 봐주고 현금을 챙기며 상생과 순환구조로 발전했는데 2020년 하반기부터 이상 기류가 형성됐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 수뇌부가 농업과 경공업 등 모든 경제 부문에 당의 비상설경제관리위원회, 내각 및 국가계획위원회, 각 담당부처가 계획을 짜고 생산과 유통단위들을 관리한다는 원칙을 세웠는데, 이는 “시장의 힘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며 1960년대로 회귀한 조치”란 겁니다.
한국 서울대학교의 경제전문가인 김병연 교수도 최근 언론 기고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이런 조치는 경제 현실과 동떨어져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가계소득과 지출이 얼마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밑바닥의 경제 내구력은 극한에 가까워지는데 김정은은 8차 당 대회에서 객관적 조건이 나빠도 주관, 주체, 신념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자신한다”는 겁니다.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총재 고문은 과거로 회귀하는 이런 김정은 위원장의 정책은 북한 스스로 운영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이 안정과 성장을 모두 성취하도록 경제가 기능하기 위해서는 대외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뱁슨 전 고문] “I don't think it'll work, because I don't think they can manage to do it on their own. I think they have to have external economic relations to make their economy function, both to achieve stability and to achieve growth”
전문가들은 결국 개혁개방을 통해 시장경제를 수용하고 생산수단을 국가가 독점하는 대신 개인과 제한적으로 공유하며 경제적 자유권을 주는 방안만이 현 위기를 타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 무역회사 부대표를 지낸 이현승 씨는 북한 관리들이나 학자들도 중국과 베트남 같은 개혁에 공감하고 있지만 이런 제언을 김 위원장에게 말할 수 없는 한계가 계속 북한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현승 씨] “시장 경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북한 내 보통사람이라면 그런 인식은 다 있습니다. 그런데 김정은의 유일사상체계에 대한 도전이 되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런 이론을 만들지 못합니다. 그래서 학자들도 꺼려하고 있고, 경제하는 사람들도 개인에게 사유재산권을 주고 우리가 기업의 이익을 갖고 재생산에 이용하자는 말을 못합니다. 그러나 김정은이 아무리 얘기해도 근본적인 경제 시스템을 시장경제로 전환하지 않는 한 김정은의 요구 사항이 지켜지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