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에서 있었던 일을 공개해 파장이 일었던 존 볼튼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이 정식 출간됐습니다. 일부 언론이 미리 공개한 것처럼 북한의 비핵화 협상과 한반도 관련 사안들이 담겨 있는데요. 함지하 기자가 볼튼 전 보좌관의 시각으로 본 미-북 정상의 만남을 되돌아봤습니다.
볼튼 전 보좌관의 회고록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나기까지의 과정과 실제 만남, 그리고 그 이후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일들이 상세하게 담겨 있습니다.
당시 상황을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이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부분도 많지만, 상당수 내용은 실제 보고 들은 내용을 기록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볼튼 전 보좌관은 싱가포르 1차 미-북 정상회담 당시, 회담 당일인 2018년 6월12일 오전까지 미국과 북한이 합의문 등을 놓고 줄다리기 협상을 벌였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은 합의문에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라는 표현이 들어가는 걸 거부하면서, 협상이 길어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에 앞서 숙소에서 “이것은 홍보 연습”이라는 말을 했다고, 볼튼 전 보좌관은 밝혔습니다.
또 존 켈리 당시 비서실장 등에게 “실속 없는 공동선언에 서명하고, 승리 선언을 위해 기자회견을 연 다음, 도시(싱가포르)를 떠날 준비가 돼 있다”는 말도 했습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거짓으로 가득찼다며, “우리에겐 금요일에 가할 수 있는 300개 이상의 추가 제재가 있다”는 말도 했다고, 볼튼 전 보좌관은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볼튼 전 보좌관은 정상회담 당일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만남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정상회담 현장음]
트럼프 대통령은 한때 김 위원장을 비난할 때 사용했던 ‘로켓맨’ 등의 표현을 써가며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이날 두 정상의 대화에선 ‘공동성명’에 포함되지 않은 내용들도 논의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정상회담이 끝난 뒤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로 알려지게 된 ‘미-한 연합훈련 중단’의 경우, 김 위원장의 축소 또는 전면 중단 희망을 트럼프 대통령이 선뜻 받아들이면서 이뤄졌습니다.
또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행동 대 행동’ 접근법을 따르기로 했다는 점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명시해, 두 정상 사이에 ‘단계적 접근법’과 관련한 대화가 있었음을 암시했습니다.
다만, 볼튼 전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양보’를 하는 장면은 자신이 놓쳤다고 부연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유엔 제재 해제가 다음 단계가 될 수 있느냐는 말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건넸습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그것에 열려 있으며, 생각해 보길 원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처럼 양측 모두 만족한 듯 보인 첫 미-북 정상 간 만남은, 한 달이 채 안 돼 삐걱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같은 해 7월6일 폼페오 장관이 북한을 방문했지만 김 위원장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사실이 전해지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신뢰 구축은 허튼소리”라며 화를 냈다고, 볼튼 전 보좌관은 주장했습니다.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폼페오 장관도 “(북한의 행동이) 모두 제재를 약하게 하기 위한 시도였고, 전형적인 시간끌기 전략”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고,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의 워싱턴 방문 등을 통해 2차 미-북 정상회담이 성사됐습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정상회담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다른 의견이 본격적으로 대립하는 모습이 연출됐습니다.
당시 볼튼 전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준비해 간 ‘북한 비핵화의 정의’를 담은 문건을 김정은 위원장에게 건넸는데, 여기에는 북한의 핵은 물론 생화학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영변 핵시설 폐기와 이를 조건으로 한 유엔 안보리 제재 해제만을 고집해 평행선을 달리게 됐다는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도달이 가능한 ‘장거리 미사일’도 내놓는 게 어떻냐고 제안했지만 김 위원장은 이를 거절하면서, 단계적으로 가다 보면 궁극적으로 큰 그림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볼튼 전 보좌관은 전했습니다.
볼튼 전 보좌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부분적 제재 완화’까지 시사하며 김 위원장에게 영변 폐기 외에 추가 양보를 희망했지만 김 위원장은 이 역시 거절했습니다.
두 정상의 세 번째 만남으로 기록된 판문점 회동은 사실상 즉흥적으로 이뤄졌다는 게 볼튼 전 보좌관의 해석입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주요20개국 정상회담 참석차 일본을 방문 중이었는데, 독일과의 정상회담 과정에서 처음으로 김 위원장과의 판문점 회동 가능성을 언급했고, 이런 내용은 미 대표단조차 이 때 처음 접했다는 겁니다.
볼튼 전 보좌관은 당시 한국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 회동을 3자 회담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했다는 사실도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폼페오 장관과 자신이 당시 회담이 양자 회동이라는 점을 밝히며 반대하자 문 대통령은 자신이 김 위원장을 맞이한 뒤 트럼프 대통령에게 인계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싶어했다고, 볼튼 전 보좌관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폼페오 장관은 그런 계획을 북한에 설명했지만 거절했다고 설명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문 대통령의 뜻을 따르고 싶지만 북측의 입장이 그렇다는 점을 거듭 밝혔습니다.
앞서 한국 정부는 싱가포르 1차 미-북 정상회담 때도, 자신들이 포함된 3자 회담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했었다고 볼튼 전 보좌관은 주장했습니다.
볼튼 전 보좌관의 회고록에는 북한과의 정상회담에 대한 반대뿐 아니라 협상을 통한 북한 비핵화 달성, 미-북 간 종전 선언 등 한반도 평화 정착 방안에 대한 그의 오랜 거부감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볼튼 전 보좌관이 회고록에서 밝힌 내용과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면서, 그를 강하게 비난하고 있습니다.
케일리 매커내니 백악관 대변인은 22일 정례브리핑에서 볼튼 전 보좌관이 완전히 신임을 잃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매커내니 대변인] “John Bolton has completely discredited himself. Multiple senior administration officials are on the record exposing his lies, and even the media seems to have taken note of John Bolton and how ridiculous some of the things he said.”
여러 행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그의 거짓말을 폭로하고 있으며, 심지어 언론들도 볼튼 전 보좌관이 말한 내용들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를 알아챈 것 같다는 겁니다.
폼페오 장관은 23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들이 전적으로 자신의 재선을 위한 것이었다는 볼튼 전 보좌관의 주장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일축했습니다.
또 볼튼 전 보좌관이 책에서 자신이 “그 방에 있었다”고 말하지만, 볼튼 전 보좌관은 정보를 많이 유출하는 사람이어서 자주 회의에 참석하지 못 했다고 밝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볼튼 전 보좌관을 ‘미치광이’, ‘무능한 거짓말쟁이’로 지칭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볼튼 전 보좌관의 “멍청한 모든 주장이 북한과 우리를 형편없이 후퇴시켰다”며, 그의 과거 대북 접근법을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