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 전문가 “북 자금조달 네트워크 큰 타격...천문학적 벌금 부과해야 파급 효과”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 지점. 미국 재무부는 지난 2005년 이 은행이 북한의 불법 금융 활동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거래 금지 조치를 취했었다. (자료사진)

미국 정부가 북한의 불법 금융 거래에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하면서 북한의 핵심 자금 조달 요원들을 심각한 위험에 빠뜨렸다는 분석이 제기됐습니다. 미 대북제재 강화법 제정 과정에 참여했던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는 미국 법무부가 25억 달러 규모의 돈세탁에 관여한 혐의로 30여 명의 북한인과 중국인을 기소한 데 대해, 대체 인력을 훈련해 배치하는 것은 유령회사 설립보다 훨씬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현 대북제재는 ‘최대 압박’에 턱없이 못 미친다며, 중국 대형 은행들을 직접 겨냥하고 이란과 쿠바에 적용한 천문학적 벌금이 부과돼야 이번 기소의 파급 효과가 최대화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스탠튼 변호사를 백성원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이번 기소 조치의 중요성부터 설명해 주십시오.

스탠튼 변호사) 해당 계좌를 갖고 있는 은행에 심각한 법적 위험을 안깁니다. 이번에 기소된 개인 중 몇 명은 워싱턴 DC 법원이 이전에 소환장을 발부했던 중국 은행 세 곳과 얽혀있을 가능성이 보도됐습니다. 사실이라면 해당 은행의 변호사들은 크게 우려해야 할 겁니다. 그 외 다른 은행들은 고객 정보를 꼼꼼히 확인하거나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수 있지만, 이들 역시 민사상 처벌 혹은 더 나쁜 결과를 걱정해야 하고요. 이런 고객을 받으면 법적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금융계에 전달된다면 (2005년) 방코델타아시아 은행 제재 때와 같은 억지 효과를 보게 되는 겁니다.

기자) 직접 제재하지 않아도 은행들이 알아서 북한 관련 자금을 취급하지 않게 된다는 뜻이죠?

스탠튼 변호사) 미 법무부가 이미 북한 자산 6천300만 달러를 압류해 놨고, 이번 기소와 함께 이 돈의 몰수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6천300만 달러가 엄청난 금액은 아닐 수 있지만, 그건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에 동결됐던 2천500만 달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방코델타아시아 은행 제재가 다른 은행들에 법적 위험을 자각하게 하는 파급 효과를 가져왔던 것처럼, 이번 경우에도 북한 관련 은행을 드나드는 자금 흐름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기자) 25억 달러 규모의 돈세탁이 이뤄졌고,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 지원에 자금이 흘러 들어갔다는 게 핵심 기소 내용인데요. 법적으로 어느 정도나 심각한 불법 행위입니까?

스탠튼 변호사) 가령 대량살상무기 확산 제재 위반의 경우 20년 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다만, 매우 복잡한 연방 양형 기준 때문에 그렇게 최대 형량이 구형되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그렇다 해도 비슷한 문제로 미국에 송환돼 장기형에 처해진 사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책임 추궁을 위해 자금 몰수를 추진하는 게 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하지만 범죄인 인도가 어려운 상황이고 기소된 이들은 신분을 세탁해 다시 활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연 현실적인 처벌 방안이냐는 반론도 있습니다.

스탠튼 변호사) 신분을 변경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이들은 미국으로 송환될 걱정 없이 러시아나 중국, 북한을 드나들 순 있겠지만 북한 은행 계좌가 있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중동 국가들, 이탈리아와 같은 나라에 여권을 들고 가면 송환 위험에 처합니다. 북한과 대량살상무기 관련 거래를 한 혐의로 에스토니아에서 체포돼 미국으로 송환된 사례가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에 거주하는 북한 국적자가 현재 미국으로 인도될 상황에 처해있기도 하고요. 미국 인도가 불가능의 영역이 아니라는 이야기이고, 그런 사람들은 이동이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들이 미 연방수사국(FBI)의 심문을 받게 되는 것을 북한 정권은 절대 원치 않으니까요.

기자) 북한이 미 금융 시스템에 접근하거나 이를 통해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을 진전시키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게 이번 기소의 취지로 소개됐는데요. 그 정도의 파급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스탠튼 변호사) 불법 네트워크를 훼손시킬 수 있습니다. 가령 홍콩에 차려놓은 유령회사는 폐쇄돼도 곧바로 다시 세울 수 있지만, 요원들을 훈련시켜 배치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우선 해외 파견이 가능한 인력을 선별하고, 여행 목적으로 신고한 특정 직종에 필요한 기술을 따로 익히고, 현지에서 네트워크를 형성해 경험을 축적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기소로) 이런 사람들이 연소돼 버린 겁니다. 이들의 구체적인 신상 정보는 기업들이 공유하는 제재 준수 소프트웨어에 담겨 블랙리스트로 관리됩니다. 다시 말해 북한은 이번에 기소된 사람들 대신 또 다른 33명의 요원과 공모자를 육성해 종전 수준의 사업 활동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기자) 유령회사 설립이 아주 쉽다고 하셨는데, 제재가 강화됐어도 거기까진 영향을 못 미치고 있는 겁니까?

스탠튼 변호사) 정치적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게 최선의 설명일 겁니다. 공소장을 보면 해당 불법 행위를 2013년부터 추적했습니다. 미국이 같은 해 이미 조선무역은행을 제재 대상에 올린 걸 보면, 재무부와 아마도 FBI는 재무장관 2명이 바뀌는 기간 내내 이 은행의 거래를 감시하고 네트워크와 활동 관련 재무 정보를 수집해 온 것이 확실합니다. 앞서 이뤄진 활동만으로도 기소가 가능한데, 이 네트워크를 통해 7년 동안 25억 달러가 거쳐 간 뒤에야 기소가 이뤄진 것은 정말 실망스러운 일입니다. 현 미국 법 집행 당국이 이전보다 강력해졌다는 이유를 들 수도 있겠지만, 정치적 의지 부족도 한몫했을 겁니다.

기자) 세계 각국이 미국의 최대 압박 캠페인에 이전처럼 동조하지 않게 된 것도 이유로 들 수 있지 않을까요?

스탠튼 변호사) 저는 “최대 압박”이라는 용어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습니다. 미국 정부가 쿠바나 이란에 제재를 이행하기 위해서 한 일에 비하면 북한에는 “최대”라는 말을 쓸 수 없습니다. 전 세계 어떤 은행이든 이란과 거래하면 9~10자리 숫자의 벌금이 부과됩니다. 오바마 행정부 때나 트럼프 행정부 때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북한과 관련해선 그런 경우를 못 봤습니다. 지금까지 4~5개 소규모 은행이 북한과 거래한 혐의로 피해를 입었지만 어떤 대형 은행도 기소된 적이 없으니까요. 중국의 대형은행 3곳이 워싱턴 DC 연방지방법원의 소환에 응하지 않는 모습을 봤을 뿐, 우리는 최대 대북 압박을 가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의 동조 여부에 대해선 말하기 어렵습니다. 이번 기소를 가능케 한 정보를 미국 정부가 어디에서 입수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기자) 오히려 여러 나라의 공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입니까?

스탠튼 변호사) 이번 기소를 가능하게 한 정보의 소스에 대해선 다양한 경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금융계가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나 해외 금융 정보 부처가 수집한 정보, 또 사법 공조 조약 (mutual legal assistance treaty)에 따라 요청한 자료, 혹은 중간에 가로챈 이메일 등을 생각해 볼 수 있겠죠.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는 미 재무부나 FBI와 협조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국제 공조와 관련해선 공개된 것 이상으로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기자) 미국 정부가 중국 대형 은행을 제재하는 것이 대북제재의 판세를 바꾸는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스탠튼 변호사) 전적으로 그렇습니다. 북한과 거래할 경우엔, 증인에게 부여되는 ‘화해면책(transactional immunity·소추면제)’을 받지 못하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상당한 두려움을 전 세계 금융업계가 갖게 된다면 그들의 행동을 바꾸게 될 겁니다.

기자)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제재 방향과 수위가 이번 기소를 기점으로 전환점을 맞는 게 아니냐는 관측에 대해선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스탠튼 변호사) 북한과 무관하게 중국을 겨냥한 조치일 수도 있겠지만, 이번 기소 조치를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 방향으로 읽는 것은 오판일 수 있습니다. 검사와 조사관, 미 정부 정보 분석가들이 기울인 다년간의 노력이 이제 결과를 내기 시작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범죄의 증거를 입수해 법정으로 가져간 것이지, 트럼프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알려주는 척도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기자) 이번 기소 조치가 금융계뿐 아니라 각국 정부에 던지는 메시지가 있을까요?

스탠튼 변호사) 명백히 그렇습니다. 특히 한국 정부는 4월 총선 이후 제재 위반에 해당될 수 있는 일을 하는 데 있어 보다 진보적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미국 금융 시스템을 거치는 한국은행들의 거래에 대해 미국이 얼마나 인내심을 가질지 자문해야 합니다. 이번 기소는 이미 미 재무부로부터 경고를 받은 한국은행들이 북한 관련 거래에 연루된 계좌를 갖는 것을 더욱 꺼리게 할 것입니다. 미 재무부나 유엔 안보리의 승인을 받지 않는다면 말이죠. 흥미 있게 지켜볼 또 다른 지역은 동남아시아입니다. 동남아시아 역시 북한 금융 활동의 중심지입니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그리고 어느 정도는 베트남과 캄보디아, 필리핀도 상당량의 북한 자금을 취급합니다. 이 나라들 모두 미-북 간 싱가포르 정상회담과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미국 정부가 대북 제재를 더이상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인상을 공유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 기소는 그것이 과연 사실에 기반을 둔 결론인지 재고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문제는 ‘이번 기소가 전 세계 금융계에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인가’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될 겁니다.

미 대북제재 전문가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로부터 북한의 불법 금융 활동에 대한 미 법무부의 기소 조치와 파급 효과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백성원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