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했던 북한의 대외 선전매체들이 한국을 향한 비난을 재개했습니다.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은 여전히 삼가하고 있어 11월 미 대선 때까지 상황 관리 차원에서 수위조절을 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은 22일 한국 해군이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합동군사연습인 ‘림팩’에 참가하고 돌아오던 중 괌도 주변 해상에서 ‘퍼시픽뱅가드’를 비롯한 각종 연합해상훈련에 광분했다고 비난했습니다.
이 매체는 이번 연합 해상훈련들이 미국의 패권전략인 인도태평양 전략에 따라 북한과 주변국가들을 압살하려는 침략전쟁 연습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앞서 지난 16일엔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가 한국이 내년도 국방예산을 올해보다 5.5% 높은 약 53조원을 편성한 것을 맹비난했습니다.
또 다른 선전매체 ‘메아리’는 지난 20일 미-한 양국이 외교부 국장급 실무협의체인 ‘동맹대화’를 추진하는 데 대해, 21일엔 미-한 군 당국이 통합국방협의체(KIDD) 회의를 열어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억제력 방안을 논의한 데 대해 각각 비판했습니다.
북한은 지난 6월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비난 담화를 시작으로 대남 공세를 펴다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남 군사행동 보류’ 결정을 내린 뒤 두 달여 동안 노골적인 대남 비난을 자제해 왔습니다.
그러던 북한이 최근 들어 대외 선전매체를 동원해 한국을 겨냥해 특히 미-한 공조에 초점을 맞춰 비난을 재개했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와 홍수, 태풍으로 인한 국가적 재난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서 대남 비난을 재개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비록 비난 방식이 가장 낮은 단계인 선전매체를 통해서이긴 하지만 북한이 개성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까지 감행했던 6월 대남공세는 유보 상태일 뿐 마무리된 게 아니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6월 대남공세 당시 한국 정부가 남북협력보다는 미-한 공조를 우선시하는 데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바 있습니다.
북한의 이같은 비난 재개가 다음달 10일 당 창건 75주년 기념일을 맞아 모종의 대남 도발에 나서기 위한 명분쌓기용일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습니다.
박 교수는 북한이 오는 11월 대선 이후 미국의 차기 행정부에 대한 협상력 제고 차원에서 한국에 대한 도발 카드를 꺼낼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북한 입장에선 트럼프가 되든 바이든이 되든 어쨌든 대미 협상을 재개하려면 협상력의 우위를 가져와야 하는데 그런 측면에선 어떤 형태로든지 압박과 일종의 도발을 재개해야 되거든요. 근데 여전히 쌍십절 전후로 북한이 어떤 모습을 보일까 그 가능성은 좀 열려 있다고 판단이 됩니다. 좀 더 우려가 되는 게 대미 공세보다는 대남 공세를 중시하고 있다는 부분이 좀 더 우려가 되는 부분이죠.”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북한연구실장은 이에 대해 북한 선전매체의 최근 비난은 통상적인 수준에 그쳐 있다며, 새로운 정세 변화에 따른 민감한 반응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습니다.
홍 실장은 북한의 대남 도발 가능성은 그들의 필요에 따라 열려 있는 것이지만 미 대선 전 도발은 북한에게 실익이 적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홍민 실장] “미국 대선 전후에 어떤 상황이 펼쳐질 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남한을 그렇게 자극적으로 흔들어서 남북관계를 굳이 나쁘게 만드는 게 상황 관리에 과연 유용할지, 나중에 그렇게 남쪽을 흔들어도 되는데 지금 굉장히 불확실한 국면에서 남쪽까지 흔들어가면서 위험수위를 높일 이유가 특별히 없다는 거죠.”
북한은 한국 정부의 미국과의 공조를 맹비난하면서도 미국에 대한 직접 비난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상황 관리 차원에서 비난을 자제하고 있다는 관측입니다.
한국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입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지금 언어적 도발 수준에서 그리고 10월10일 퍼레이드하는 수준에서 넘어간다면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어느 정도 상황 관리했다고 평가할 거거든요. 대선에 부담이 되지 않기 때문에. 따라서 현재 북한이 대외 선전매체를 통해서 비난 강도를 높이고 있는 것은 북한 나름대로의 정당성 명분 확보 차원이라고 보고요.”
신 센터장은 북한이 대미 직접 비난을 자제하는 가운데 내부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외부 표적으로 한국을 겨냥해 비난을 집중하고 있는 양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