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을 피한 탈출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전쟁 중 흥남 철수 작전을 통해 한국으로 탈출한 실향민이 아프간 피란민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폭력을 피해 목숨을 걸고 자유를 찾아 나선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며, 아프간인들이 꼭 자유를 누리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1950년 12월, 14살의 나이로 흥남을 떠나 한국으로 탈출한 원동혁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한국에 사는 올해 85살의 원동혁 씨는 지난 15일 미군 수송기 안에 발 디딜 틈도 없이 앉아 있는 아프간인들의 탈출 사진을 보며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이들은 미군 철수 후 수도 카불을 점령한 탈레반을 피해 카불 공항에서 필사의 탈출을 시도한 끝에 간신히 미군 C-17 수송기 탑승에 성공한 아프간 피란민들이었습니다.
미국 공군에 따르면 C-17 수송기는 최대 탑재용량이 7만 7천 500kg으로 평시에는 최대 2~300여 명까지 탑승하지만, 이날엔 아프간인 640여 명이 빼곡히 타고 있었습니다.
원동혁 씨가 이들을 보며 눈시울을 적신 이유는 그가 70여 년 전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 전쟁 중 20세기 최대의 인도주의 사건 중 하나로 불리는 흥남 철수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한 장본인이기 때문입니다.
[녹취: 원동혁 씨] “계속 부두를 향해 뛰었죠. 한참을 뛰어가다 보니 앞에 큰 배가 있어요. 그게 지금 와서 보니 메러디스 빅토리호에요. 미군들이 ‘하버! 하버! 부산! 부산!’ 하니까 멋도 모르고 타서 먼저 탄 사람은 저 밑으로 내려가고, 화물칸이니까 데크에 있는 대로 꽉 채워서 앉을 자리도 없이 그냥 빽빽하게 콩나물시루같이!”
수송기 안에 빼곡하게 앉아 있는 아프간인들을 보며 정원의 200배에 달하는 무려 1만 4천 명의 피란민이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올랐던 70여 년 전 모습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는 겁니다.
[녹취: 원동혁 씨] “그 당시하고 조금도 다를 게 없어요. 그런 상황을 겪지 않은 사람들은 잘 이해가 안 가죠. 혹독하게 사람을 죽이고 다 빼앗고! 그런데 그걸 겪은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그 자유의 소중함이라는 것은 겪은 사람만 아는 거예요.”
원 씨는 자신이 공산군의 잔인함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에 아프간인들이 잔혹한 탈레반을 피해 필사적으로 탈출하는 그 간절함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흥남 철수는 1950년 12월, 중공군의 전쟁 개입으로 전세가 불리해진 미군이 흥남에서 배로 철수하면서 열흘에 걸쳐 북한 피란민 10만여 명을 구출한 기념비적인 사건입니다.
특히 흥남을 마지막으로 떠난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배를 급히 개조해 무려 1만 4천 명의 피란민들을 거제도로 탈출시켰고 여기에는 함흥 출신인 문재인 한국 대통령 부모도 있었습니다.
함경남도 단천 출신으로 당시 14살 소년이었던 원동혁 씨는 인민군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어머니 등 가족을 모두 남겨둔 채 아버지와 단둘이 급히 피란길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중공군의 원산 점령으로 사방이 막혀 피란민들에게 마지막 희망은 흥남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원동혁 씨] “원산 쪽으로 나갈 수가 없었어요. 이미 중공군이 나와서 원산을 점령해 버렸어요. 그래서 육로는 막혀버렸죠. 북쪽은 공산군이 밀려오고. 그래서 흥남에서 배를 못 타면 끝나는 거였죠. 그러니 절체절명의 상황이었죠.”
흥남 부두의 이런 대대적인 탈출은 2014년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국제시장’을 통해 재연돼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습니다.
[녹취: 영화 국제시장 트레일러] ‘피난민들의 아우성’ , ‘굳세어라 금순아’
눈보라 속에 그물망을 잡고 오르다 바다로 떨어지는 피란민들, 자녀의 손을 놓쳐 절규하는 가족 등 영화가 아비규환의 현장을 고스란히 담았기 때문입니다.
원동혁 씨는 이런 생사의 갈림길에서 겨우 배에 오르는 데 성공했지만, 1만 4천 명의 피란민이 거제도에 도착할 때까지 거의 사흘간 배고픔 등 여러 어려움을 견뎌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원동혁 씨] “옷을 집에서 입고 떠난지가 몇일 됐으니까 이가 바글바글 끓어서…오줌과 똥을 눌 수도 없고 그냥 앞의 사람 숨 쉬는 소리만 들리고, 그래도 춥지는 않았어요 하두 사람이 많으니까. 뭐 냄새도 나고 그러는데도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목숨을 건졌다는 게 중요하니까 싸우는 사람도 없고 모두 조용히 있었죠.”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일등항해사였던 로버트 러니 씨는 지난해 VOA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진정한 영웅은 피란민들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환경이 너무 열악해 “어쩔 수 없이 피란민들을 화물처럼 꾸역꾸역 실을 수밖에 없었고 의사나 통역관, 식량과 물도 없었지만…피란민들은 동요하지 않고 매우 침착했다”는 겁니다.
이런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성탄절을 거치며 배 안에서 5명의 아기가 태어나 피란민들에게 큰 희망을 주기도 했었다고 원 씨는 회고했습니다.
원동혁 씨는 거제도에 무사히 도착한 뒤 명문대에 진학했고, 대기업 임원을 거쳐 사업을 하는 등 성공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특히 은퇴 후 미국 중서부에서 10여 년을 사는 동안 자신의 흥남 철수 상황을 미국인들과 나눌 기회가 있었고, 미국 작가인 데이비드 와츠 씨는 원 씨의 이야기를 토대로 지난 2012년 ‘흥남에서의 희망’(Hope in Hungnam)이란 제목의 소설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원 씨는 그러나 단천을 떠난 뒤 어머니 등 가족과 생이별한 채 70년 넘게 그리움의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원 씨는 지금도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하는 아프간인들이 가족과 헤어지지 말고 어떡하든 자유를 쟁취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원동혁 씨] “어떡하든지 탈출해서 압제에서 벗어나고 탈레반을 소탕해서 어떡하든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현재 탈출을 위해 카불 공항에 진입하려는 피란민들과 이를 막으려는 탈레반의 폭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22일 기자들에게 지난 14일 이후 “미국이 2만 8천여 명을 대피시켰다”며 “이렇게 많은 사람을 여러분이 보는 것처럼 고통과 비통함 없이 대피시킬 방법은 없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