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풍경] 항일 여성 독립운동가 75인 초상화 워싱턴 전시

미국 수도 워싱턴 DC의 홀리처치에서 항일 여성 독립운동가 75인의 초상화 전시회가 열렸다.

매주 금요일 북한 관련 화제성 소식을 전해 드리는 ‘뉴스 풍경’입니다. 일본의 한반도 강점기 시절 활동했던 항일 여성 독립 투사들의 초상화 전시회가 미국에서 열렸습니다. 장양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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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을 차려입은 여인이 손바닥만한 작은 한지에 100여 년 전 나라를 위해 삶을 던졌던 여인들의 고귀한 정신을 형상화한 문양을 새긴 문전을 들었습니다.

또 한 손에는 하얀 꽃 뭉치를 들고 수줍게 웃으며 춤을 춥니다.

항일 독립 여성운동가들이 주인공인 ‘넋전 춤’을 선보이는 양혜경 한국전통 넋전춤연구소 소장.

[녹취: 양혜경] “이 분들을 그리워하는 거죠.. 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이죠.”

문전을 태워 하늘로 올려보내고 살풀이춤으로 고인들을 기립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삶을 바쳤던 순국 인사들의 희생을 기리는 추모 공연은 춤과 노래로 이어집니다.

[현장 공연 녹취: 유효진] “꽃 피운다. 그 세월을 그렇게 사셨구나…”

“한평생, 나라를 위해 그렇게 사셨구나” 빼앗긴 조국을 위해 삶을 내던졌던 이들의 고통과 좌절, 그리고 독립을 보지도 못하고 숨을 거둘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한을 떠올리며 절규합니다.

[현장 공연 녹취: 유효진 노래]

이 노래는 뮤지컬 가수 유효진 씨가 ‘여성 독립운동가의 길’을 주제로 불렀습니다.

[녹취: 유효진] “‘여로’ 라는 곡은 여성 운동가에 맞게 편곡해서 부르게 됐는데, 제가 이 분들의 자손이잖아요. 실제 자손은 아니지만, 이분들의 처한 상황이나 고통을 생각하면 지금의 우리가 편하게 살 수 있었던 건 이 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노래를 함으로써 조금이나마 지금도 잠들고 계시지만, 편안하게....”

이들의 몸짓과 선율은 19세기 말 건축물로 유명한 워싱턴 디씨의 ‘홀리 처치’ 내부를 가득 채웠는데, 교회 의자들 위에 놓인 75개 초상화를 감싸 안는 듯한 감동을 안겼습니다.

미국 수도 워싱턴 DC의 홀리처치에서 항일 여성 독립운동가 75인의 초상화 전시회가 열렸다.

‘100년 전 함성을 오늘 이곳에’라는 슬로건을 걸고 항일 여성 독립운동가를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전시회 ‘피워라(Piora Blossoming)’.

광복 75주년을 기념해 한국에 본부를 둔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사업회’가 마련한 이 전시회는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존재와 활동을 알리고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목적으로 열렸습니다.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사업회는 지난 2014년 설립 이후 ‘3.1혁명 기념행사,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추모문화제, 초상화 역사화 제작과 전시, 학술연구, 홍보와 출판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국의 16~17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희선 이사장은 VOA에 단체 설립의 목적과 이번 전시의 취지를 밝혔습니다.

[녹취:김희선] “오광심 운동가가 작은 할머니고, 할아버지가 김학균 장군이라고, 제 인척 관계때문에 시작한 것은 아니고, 항일여성독립운동가들이 남성들만 한 게 아니라, 여성이 운동한 건 묻혀있는 거예요. 유관순이라는 분 한분만, 남자는 한 1만4천 명이 국가로부터 인정받고, 여성은 유관순만 기억하느냐 하는 문제의식을 저한테 던졌습니다. 자료를 읽고는 한 서 너달을 눈이 부어서 다녔어요. 너무 기가 막혀서..”

단체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당시 나라를 위해 헌신했던 독립운동가는 300여만 명으로 2019년 기준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은 독립운동가는 1만 5천830여명. 이 가운데 여성은 477명입니다.
미주 전시에서 소개하는 초상화 75점은 광복 75주년을 의미하는데, 김 이사장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녹취: 김희선] “여기 많은 여성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을 하신 거야. 지나가다가 왜경을 만나면 젊은 애들 도망시키느라고 자기가 (일본 경찰)을 안고 논두렁으로 뛰어들고..”

김 이사장은 한국 보훈처의 후원으로 이뤄지는 사업인 만큼 개개인의 활동 내용과 사진 등은 역사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증명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75인 가운데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부인 이혜련, 대한여자애국단 샌프란시스코 지부장 차보석, 1942년 워싱턴에서 열린 한인 자유대회 연사로 참석했던 공백순 등 미국 내에서 싸웠던 인물들이 소개됩니다.

김도연은 1919년부터 1945년까지 대한여자애국단 맥스웰 지부 서기, 로스앤젤레스 지부 담당 등 미주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았습니다.

평양에서 태어난 강혜원은 1919년 8월 하와이로 이주한 인물로, 캘리포니아에 정착해 대한여자애국단 총단장으로 한인사회 부인 운동을 이끌었고, 1940년 이후 중국 상하이를 오가며 대한여자애국단, 흥사단, 대한인국민회를 도왔습니다.

항일여성독립운동가 기념사업회 송형종 대표이사는 VOA에, 전시회에 소개된 75인은 미국과 연관돼 있거나 지명도가 높은 인물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 안 의자에 띄엄띄엄 초상화를 배치한 이유에도 의미를 뒀습니다.

[녹취: 송형종] “객석과 사이 사이에 오늘을 사는 사람이 앉아요. 오늘의 교민일 수도 있고 시민일 수 있는 분들과 100년 전의 가치를 공감한다는 것을 연출한다는 의미가 있죠.”

돔 형태의 천정 아래 촘촘한 스테인드 글라스 창으로 둘러 쌓인 강단 의자에 한 점씩, 그리고 수 십 개 의자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 관람객들은 안내책자에 적힌 내용을 따라 이동하며 75인을 모두 만나게 됩니다.

한국 보훈처 후원으로 열리는 항일여성독립운동가 기념사업회의 첫 미주 초상화 전시회는 뉴욕, 필라델피아, 워싱턴 디씨에서 열리고 있는데요, 이들 지역은 모두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무대였습니다.

뉴욕은 1921년에 창립돼 한반도 해방 전후 한인회와 학생회 국민회, 흥사단 등 각종 단체들의 집회와 임시거처로 활용된 뉴욕 한인 교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필라델피아는 1919년 한국의 3.1운동 소식이 당시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했던 도산 안창호에게 전해진 후 미주 한인들을 결집한 1차 한인 회의가 열렸던 리틀극장이 있는 곳입니다.

김 이사장은 미주 한인사회에서 전시회를 개최한 이유 중 하나로 조선 여성에 대한 인식과 관련이 있다는 점도 강조합니다.

[녹취: 김희선] “조선 여성이라고 하면 정신대(일본군 강제 위안부)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나쁘다 좋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의 네루 수상이 딸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왜 조선의 여성처럼 투쟁하는 딸들이 없느냐, 이런 글이 나올 정도로 조선의 여성들은 투쟁을 했다는 거예요. 이미 해외가 알고 있더라고요. 역사 속에 묻혀있는 분을 찾아내서 알려드려야 할 의무가 있고”

일본군 위안부 역사로 다소 우울하게 인식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한인사회에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존재와 활동을 알림으로써 자부심을 심어줄 목적이라는 겁니다.

김 이사장은 이 단체의 활동은 차세대 교육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한인사회 청년들의 관심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녹취: 김희선]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어요. 확실한데 그럼 그 젊은이들은 뿌리와 성장 과정과 자기 미래가 정확하게 읽히지 않을 뿐 아니라 살기 힘들다. 역사를 알아서 그 다음 발자국을 걷는 것이지..”

3년여 준비를 거쳐 열린 광복 75주년 기념 항일 여성 독립운동가 전시회 ‘피워라’는 지난 9일 뉴욕을 시작으로 21일 워싱턴 디씨 일정을 끝으로 마무리 됐습니다.

VOA 뉴스 장양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