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연락선 복원으로 남북대화 발판 마련…실질적 관계 진전 전망 엇갈려

27일 한국 파주 통일전망대에 지난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 사진이 전시돼있다.

남북한 통신연락선이 복원되면서 남북대화의 발판이 마련됐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추가적인 남북관계 진전으로 이어질지 여부에 대해 엇갈린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통신선 복원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개를 위한 가장 낮은 단계의 조치일 뿐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박수현 한국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8일 한국의 ‘MBC’ 라디오의 한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남북간 통신연락선 복원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개를 위한 가장 낮은 단계의 조치라고 평가하면서 “이제 출발선에 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 수석은 “통신선 복원만으로는 충분한 대화와 협상의 수단이 될 수 없을 것”이라며 “이제 남북 간 각급 실무협의 접촉을 해나가게 될 텐데 화상회의 시스템 구축을 구상해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통일부도 연락채널 복원의 다음 과제로 대화 복원을 꼽으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대면회담이 힘든 현실을 고려해 북한 측에 화상회의 시스템 구축 문제 논의를 제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박 수석은 이런 소통채널 강화를 바탕으로 방역 협조나 남북연락사무소 복원 등의 구체적 의제를 차차 협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통신선 복원이 문재인 한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두 정상이 지난 4월 이후 여러 차례 교환한 친서를 통해 합의한 결과물이고 두 정상이 단절된 남북관계의 조속한 회복에 공감했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기 때문에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북한이 지난해 6월 일방적으로 차단했던 통신선을 복원한 것은 한국과 소통하겠다는 의사 표현으로 봐야 한다며, 대화에 적극적인 한국 정부의 기대에 곧바로 화답할지는 두고봐야 하겠지만 남북간 공유할 수 있는 의제들부터 대화가 이뤄질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한국) 정부는 부인하고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코로나 조기 종식과 관련한 보건의료 분야 협력이 논의될 수 있을 것 같고 또 8월에 북한의 자연재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안 좋은 기후 조건 하에서 북한의 식량 작황이 어떤 영향을 받느냐 거기에 따라서 쌀 지원을 포함한 인도적 지원도 협의할 수 있을 것이고 그래서 여러 현안들이 열려 있다 이렇게 봐야 할 거에요.”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국제사회 대북 제재가 완화되지 않는 한 남북 간 합의사항 이행을 놓고 대화를 재개하기는 여전히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조 박사는 그러나 북한이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식량난 대응 차원에서 한국의 인도적 지원 문제나 남북 군사 부문 합의 이행 문제 등 제재와 관련 없는 의제 협의는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황일도 교수는 외부 지원을 애써 무시했던 북한이 식량난 가중으로 태도를 바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에만 의존하는 게 북한으로서도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기 때문에 한국과의 대화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황일도 교수] “사실은 중국이 유일한 선택지인 것보다는 한국이나 미국이 선택지로 같이 있는 게 중국에 대한 레버리지로도 훨씬 더 도움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인도적 지원이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중국 입장에선 상당히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될텐테 그 때 중국이 영 아니라고 하면 ‘우리는 다른 카드도 있어’ 라고 보여줄 게 있어야 하니까 그러니까 이런 것들을 맞춰가면서 진행해 나가겠죠.”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번 통신선 복원 소식이 ‘노동신문’ 등 북한 대내매체에는 보도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면서 북한이 한국의 지원이나 남북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박 교수는 북한이 신종 코로나 방역 차원에서 중국 측의 지원물자 반입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어떻게 보면 자력갱생 노선이라고 할 만큼 지금까지 귀가 따갑게 자력갱생을 강조했는데 갑자기 남북 경협을 한다든지 해외에서 지원을 받는다든지 하는 것은 김정은 체제가 자기모순에 빠져버리는 거거든요. 북한 주민들한테 설명이 안되죠. 그러니까 지금 통신선 복구도 노동신문엔 안 나지 않았습니까.”

일각에선 정상 간 친서 소통이 이어져 온 정황에 비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네 번째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 때문에 화상으로라도 정상회담이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청와대는 이 같은 관측이 이어지는 데 대해 남북정상회담 개최 문제는 논의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조한범 박사는 이와 관련해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섰지만 미-북간 신뢰는 여전히 매우 낮은 수준이라며 반전 카드로 남북정상회담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조 박사는 통신선 복원은 북한이 문재인 정부에 미-북 협상 견인의 중재자 역할을 기대하는 메시지로 보인다며 이와 관련한 남북간 협의가 물밑에서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반면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은 남북정상회담이 조기에 이뤄질 상황은 아니라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미국을 설득해서 대화로 복귀할 수 있도록 제재 완화라든가 이런 부분의 선물을 이끌어낸다거나 식량이나 백신 지원 같은 데 있어서 한국이 기여를 한다거나 뭔가 북한이 원하는 조건이 이뤄져야 정상회담을 하지 그냥 하진 않을 것 같거든요. 그런 점을 고려할 때 가시적으로 정상회담 가능성이 눈에 보이느냐, 아직은 눈에 보인다고 말하기엔 이른 거죠.”

박원곤 교수도 미-북 간 입장차를 조율하는 중재 역할로서의 한국 정부 한계가 이미 상당 부분 드러났고 상황 자체가 변한 게 없다며 북한도 한국의 역할에 큰 기대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 교수는 이와 함께 다음달 실시 예정인 미-한 연합훈련이 통신선 복원 이후 남북관계 진전 여부에 시험대가 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비록 한국 내 신종 코로나 4차 대유행으로 연합훈련의 규모가 축소되더라도 그동안 규모와 관계없이 예민하게 반응해 온 북한의 대응 여부에 따라 대외관계에 있어 향후 북한의 태도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한편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북한에서 ‘전승절’로 부르는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기념일 68주년인 27일 평양에서 열린 제7회 전국노병대회에 참석해 연설했지만 지난해와 달리 ‘자위적 핵억제력’ 강화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또 대미 관계나 남북 관계와 관련한 메시지도 없이 보건 위기와 장기적 봉쇄로 인한 어려움을 강조하면서 내부 결속에 집중했습니다.

전문가들은 1년여만에 통신연락선을 복원하며 대외환경 개선에 나선 상황에서 자극적인 발언을 피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