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동서남북]  북한 당 대회 김정은의 '솔직화법'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7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8차 대회에서 연설했다.

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8차 대회에서 경제 목표가 “엄청나게 미달됐다”고 공개적으로 시인했습니다. 솔직한 화법 외에도 경제를 중시하고 권한을 위임하는 등 김 위원장의 통치스타일에 대해 알아봅니다. 최원기 기자입니다.

지난5일 개막한 북한 노동당 8차 대회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솔직한’ 화법이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이날 개회사에서 지난해 끝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이 “엄청나게 미달됐다”고 공개적으로 시인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 중방]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수행 기간이 지난해까지 끝났지만 내세웠던 목표는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됐습니다.”

북한 내부를 오래 관찰해온 켄 고스 미 해군분석센터 소장은 김정은 위원장이 2012년 로켓 발사가 실패했을 때도 이를 인정했다며, 솔직화법은 그의 정치적 스타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켄 고스] “In keeping with Kim Jung-Eun leadership style back in 2012...”

북한에서 최고 지도자는 ‘무오류’한 존재이자 ‘신격화’ 된 존재입니다.

이런 이유로 선대 김일성·김정일 집권기에는 최고 지도자가 주민들이나 한국에 사과하는 것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절 수 십만 명이 굶어죽는 사태가 발생했지만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단 한 번도 주민들에게 사과한 적이 없습니다.

2008년 7월 금강산에서 한국 관광객이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북한은 끝내 한국 정부에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김 위원장의 솔직화법은 남북관계에서 일부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9월 서해에서 남측 민간인 총격 살해 사건이 발생하자 청와대에 친서를 보내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준 데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개회사에서 언급한 ‘노동당 검열위원회’도 주목되는 대목입니다. 김 위원장은 이번 8차 당 대회를 준비하면서 지난 4개월간 비상설 중앙검열위원회를 지방에 파견해 노동자, 농민, 지식인 당원들의 의견을 청취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김 위원장이 `3중고’를 겪고 있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민심을 다독이려는 의도였다고, 한국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지난번 2016년 당 대회가 김정은 체제의 출범을 알리는 것이었다면 이번 당 대회는 그걸 실패한 것을 자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체제 결속, 내부 안정화라고 볼 수 있거든요.”

이번 당 대회에서 군부 의석이 줄어든 것도 눈에 띄는 대목입니다.

5년 전 열린 7차 대회에는 군부 대표가 719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군인 대표는 절반 가까이 줄어든 408명으로 나타났습니다.

한미연합사령관을 지낸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전우회 (KDVA)회장은 “군부 의석이 감소된 것은 국정 목표를 군사에서 경제발전으로 옮기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브룩스 전 사령관] “And now a reduction in the number of political seats associated with the Korean People’s Army, that too is instructive. So I think it is.”

김정은 위원장의 아버지 김정일은 자신을 ‘국방위원장’으로 부르며 군부를 중시하는 ‘선군정치’를 폈습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은 2016년 6월 국방위원회를 폐지하는 한편 헌법 개정을 통해 ‘선군사상’이나 ‘선군정치’ 등의 용어를 없앴습니다.

경제를 중시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의도는 당 대회 인적 구성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번 당 대회 집행부 총원은 지난 7차 대회와 마찬가지로 39명이지만 이 중 75%인 29명이 교체됐습니다.

집행부에는 주로 경제를 담당하는 관료들이 새로 진입했습니다. 김덕훈 내각총리와 박봉주 당 부위원장, 김일철 등 부총리 전원과 최상건 당 과학교육부장을 비롯한 경제, 과학 부문 관료들이 대거 포함됐습니다.

이는 김 위원장이 경제발전을 체제안정의 핵심 요소로 보고 있다는 뜻이라고, 켄 고스국장은 말했습니다.

[녹취: 켄 고스] “Economic development is ultimate object of Kim Jung-eun regime…”

노동당을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것도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입니다.

노동당 규약에 따르면 원래 당 대회는 5년마다 열어야 합니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80년부터 36년 간 당 대회를 열지 않았습니다.

반면,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5년차인 2016년 5월에 7차 당 대회를 연데 이어 이번에 다시 8차 당 대회를 열었습니다.

또 김위원장은 2017년에 2회, 2018년에 3회, 그리고 2019년 6회에 걸쳐 고위 노동당 회의를 열었습니다.

특히 지난해의 경우 정치국 회의, 정치국 확대회의, 정치국 비상확대회의, 정무국 회의 등 14차례 이상 노동당 회의를 주재했습니다.

이는 김 위원장이 노동당을 통해 국가 기능을 정상화하려는 의도라고,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북한판 계엄통치, 선군통치로 김정일 위원장이 비상정치를 했다고 하면 김정은 위원장은 다시 당 중심 국가로, 사회주의 보통국가로 정상화 한 거죠.”

문제는 이 정도의 통치스타일 변화와 경제 중시 방침, 그리고 조직과 인사 개편으로는 현재의 난국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 당 대회 개회사에서 경제 실패를 자인하면서 “결함의 원인을 객관이 아니라 주관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북한경제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조지타운대 교수는 이것이 시장경제를 받아들인다는 뜻이라면 희망이 있지만 기존 사회주의를 고수한다는 것이라면 전망이 어둡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윌리엄 브라운] “Their choice, market side choice or socialist choice…”

조한범 박사는 북한이 내부 개혁이나 대외 개방 보다는 주민 노력 동원을 통한 자력갱생이라는 기존 기조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이미 지난해 말 포착된 평양 김일성광장 카드섹션에서 글귀를 보면 결사옹위라는 글씨가 식별됐거든요. 그리고 인민복을 입고 나왔다는 것은 개방보다는 사회주의체제를 강화하겠다는 의도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파격적인 개혁개방 조치보다는 우리식 사회주의 정면돌파전의 시즌2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북한 수뇌부가 내우외환의 위기를 어떻게 헤쳐갈지 주목됩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