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를 강조하며 미국과의 대화와 대결에 모두 준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김 위원장의 첫 공식 메시지로, 전문가들은 향후 미-북 협상 재개 가능성을 놓고 엇갈린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대외관영 ‘조선중앙통신’은 18일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3차 전원회의가 6월 17일에 계속됐다”며 “현 국제정세에 대한 분석과 당의 대응 방향에 대한 문제를 넷째 의정으로 토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는 데 주력해 나가야 한다”며 “국가의 존엄과 자주적인 발전 이익을 수호하고 평화적 환경과 국가의 안전을 믿음직하게 담보하자면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대결에는 더욱 빈틈없이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김 위원장이 미국을 향해 내놓은 공식 메시지입니다.
김 위원장은 “국가의 전략적 지위와 능동적 역할을 더욱 높이고 유리한 외부적 환경을 주동적으로 마련해 나갈 것”이라며 “시시각각 변화되는 상황”과 “최근 국제정치 무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주된 변화” 등을 언급해 북한을 둘러싼 정세를 민감하게 살피고 있음을 드러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새로 출범한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을 상세히 분석하고 금후 대미 관계에서 견지할 적중한 전략·전술적 대응과 활동 방안을 명시했다”고 전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김 위원장의 발언에 대한 평가에 신중하면서도 북한이 대화에 나설 것을 거듭 촉구했습니다.
차덕철 통일부 부대변인입니다.
[녹취: 차덕철 부대변인] “정부는 한반도의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는 가장 좋은 길은 대화와 협력에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합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김 위원장의 발언의 맥락을 놓고 엇갈린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과의 대화와 대결 가능성을 모두 언급한 것은 지난 1월 8차 당 대회에서 밝힌 ‘선대선, 강대강’ 기조를 유지한 태도지만 ‘한반도 정세 안정’을 강조하고 미국을 직접 비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북한이 열린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박사입니다.
[녹취: 홍민 박사] “특히 이제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에 계속적으로 유지해왔던, 대북 적대시 정책이 철회돼야만 대화 테이블에 나오겠다는 전제조건을 발언하지 않았다는 것 이게 일단은 상당히 대화 쪽에 무게를 싣고 있지 않느냐는 추측이 가능한 부분이라고 보여지고요. 그래서 전체적으로 미국에게 기회를 열어 놓는 쪽으로 메시지가 나왔다는 것이고요.”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은 최근 주요 7개국, G7 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는 물론 대북 제재 이행, 인권 문제 등이 담긴 공동성명이 나오는 등 국제사회 분위기가 북한의 기대에 반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상황에서 예상보다 온건한 메시지가 나왔다고 평가했습니다.
신 센터장은 식량난과 같은 북한 내부의 경제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한반도 긴장 고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북한이 협상 재개를 위해 보다 적극적 행보를 보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지난달 미-한 정상회담을 전후로 남북간 의미있는 소통이 있었다고 한 박지원 한국 국가정보원장의 발언을 상기하며, 향후 협상 재개를 위한 미-북 또는 남북 간 물밑접촉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조 박사는 북한이 경제난 타개를 위한 미국과의 협상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19일 한국을 찾는 성 김 미국 대북특별대표가 북한에 어떤 메시지를 보낼지도 주목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홍민 박사] “여러 가지 G7에 대해서도 반응이 없다는 얘기는 결과적으로 국내 문제 해결에 주력하고 대외관계는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겠다, 오히려 협상을 하겠다, 그리고 한국 정부의 중재 노력도 기다리겠다는 의지로 읽혀지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향후 협상 전망은 부정적이지 않다, 그리고 한-미정상회담 전후 남북 접촉이 있는 것 같다, 이런 느낌이 듭니다.”
반면 민간 연구기관인 아산정책연구원 차두현 박사는 김 위원장 발언은 협상 복귀 보다는 여전히 대결 의지에 방점을 두면서 미국의 태도 변화가 없으면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확인한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녹취: 차두현 박사] “북한이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자기 입장을 변화시키지 않고 미국과 한국 그리고 국제사회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태도를 결정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 정책의 반복이라고 볼 수 있는 동시에 내부 결속에 더 방점을 둔 정책 방향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하반기에도 북한 변화가 먼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전제할 땐 남북관계와 미-북 협상 타결 전망이 그렇게 밝다고 보긴 힘들죠.”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도 김 위원장의 발언은 정면돌파전이라는 기본노선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박 교수는 김 위원장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미국에 대한 전략·전술적 대응과 활동 방안이 명시됐다는 대목은 대북 적대시 정책 우선 철회가 없으면 핵 무력 강화를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박 교수는 그럼에도 김 위원장 발언 수위가 조절된 이유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라는 초유의 변수 때문으로 분석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북한이 이럴 경우엔 더 강경한 메시지를 갖고 끝까지 몰아 부친 다음에 확 국면을 전환하는 게 패턴인데 이 코로나라는 변수가 들어가 있으니까 그것에 대한 고민이 있다라는 생각은 분명히 있습니다. 코로나 상황을 생각한다면 자신들이 문을 열
수는 없죠. 그런데 문을 안 열면 백신도 안 되고 근본적 문제 해결 안 되고 식량난 어려워지고 그러니까 문을 열어야 되고 그 균형점을 찾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대화의 가능성은 열어 놓을 필요성이 있는 거죠.”
한편 당 전원회의 사흘째인 이날 회의에서 김 위원장은 이례적으로 자신이 서명한 주민생활 안정 특별명령서를 발령했습니다.
홍민 박사는 북한 장마당에서의 환율이나 곡물 가격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며 경제난에 따른 주민들의 위기 의식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고 애민지도자로서의 자신의 이미지를 높이려는 행보로 풀이했습니다.
사흘간 진행된 전원회의는 현재 6가지 의제 가운데 조직과 인사 문제를 제외한 모든 의제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회의는 계속된다”고 전해 전원회의가 18일에도 나흘째 이어지고 있다고 알렸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