웜비어 사망 4주기…억류에서 죽음까지 무슨 일 있었나

지난 2017년 6월 22일 미국 오하이오주 와이오밍의 와이오밍고등학교에서 열린 오토 웜비어 씨의 장례식에서 조문객이 웜비어 씨의 사진 옆에 놓인 방문객에 이름을 적고 있다.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북한에 17개월 간 억류됐다 송환된 직후 사망한 지 4년이 지났습니다. 웜비어의 죽음은 이후 미국 정부의 대북 정책과 인식에도 큰 영향을 줬는데요, 억류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박형주 기자가 되돌아봤습니다.

미국 동부 버지니아주립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던 오토 웜비어가 북한 여행길에 오른 건 2015년 12월 29일이었습니다.

중국에 있는 북한 전문여행사가 진행한 3박 4일 일정의 새해맞이 북한 여행 상품을 통해서였습니다.

웜비어는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인 북한에서 연말연시를 보내고 2016년 1월 2일 귀국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생애 마지막이 된 여행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 무려 17개월이 걸렸습니다.

2016년 1월 2일, ‘정치 선전물을 훔치려 했다’는 이유로 평양 순안공항에서 북한 당국에 체포된 것입니다.

2개월 뒤인 2016년 2월 29일, 웜비어는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녹취: 북한 기자회견장 녹취] “지금부터 반 공화국 적대행위를 감행하다 적발 체포된 미국 버지니아 종합대학 학생 웜비어 오토의 요청에 따른 기자회견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날 회견에서 웜비어는 숙소인 양각도 국제호텔에서 정치적 선전물을 떼어냈다고 자백했습니다.

침착하게 회견문을 읽어 내려가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해달라며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녹취: 웜비어 씨] “My mother needs me, my father needs me, my younger brother, my younger sister need me. I have made the single worst decision of my life but I’m only human…I beg”

하지만 북한 정권은 웜비어에게 국가전복음모죄를 적용해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했습니다.

이후 웜비어가 북한 어디에서 어떻게 수감 생활을 했는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북한을 방문했다가 억류된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씨가 지난 2016년 3월 평양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미국이 그의 석방을 위해 북한 측과 의미 있는 대화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2017년 5월부터였습니다.

당시 조셉 윤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반관반민 대화에서 북한 외무성 관계자를 접촉해 미국인 석방 문제를 논의한 것입니다.

그리고 6월 2일, 북한 유엔대표부는 미국 측에 웜비어가 혼수 상태라고 통보했습니다.

북한 당국은 웜비어가 식중독을 앓았으며 수면제를 복용한 뒤 혼수 상태에 빠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이후 조셉 윤 대표는 의료진과 함께 평양을 방문해 6월 13일 웜비어를 미국으로 데려왔습니다. 송환 당시 웜비어의 코에는 튜브가 꽂혀 있었고 의식적인 움직임이 전혀 없는 상태였습니다.

의식불명 상태로 1년 5개월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웜비어는 결국 엿새 만인 2017년 6월 19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북한에서 혼수상태로 풀려난 오토 웜비어의 병실을 어머니 신디 웜비어 씨가 지키고 있다. 웜비어의 아버지 프레드 웜비어 씨가 워싱턴 DC 연방법원에 제출한 진술서에 첨부한 사진이다.

건강하던 20대 청년이 북한에 장기간 억류됐다 혼수상태로 풀려난 직후 사망한 이 사건은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줬고 미 정부의 대북 인식과 정책에도 영향을 줬습니다.

국무부는 웜비어 사망 3개월 뒤인 2017년 9월 북한 여행 금지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국정연설에 웜비어의 부모를 초청했고, 웜비어의 가족을 향해 “세계를 위협하는 세력에 대한 강력한 증인”이라고 말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You’re powerful witnesses to the menace that threatens the world, your strength truly inspires us all. Tonight we pledge to honor Otto’s memory with total American resolve”

미 의회에서는 웜비어의 이름을 딴 사상 가장 강력한 대북제재 법안인 ‘오토 웜비어 북 핵 제재 및 강화법’을 채택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은 웜비어 부모의 삶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프레드 웜비어 씨와 신디 웜비어 씨는 2018년 4월 아들을 잔인하게 고문하고 숨지게 한 혐의로 북한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미 법원은 그해 12월 북한에 5억 100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법원은 북한 당국의 주장과 달리 웜비어가 고문과 학대로 숨졌다고 가족들의 주장을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미국 의회가 북한에 억류됐다 사망한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군의 이름을 딴 새 대북재제법안을 의결한 가운데, 워싱턴에서 열린 관련 기자회견에서 어머니 신디 웜비어 씨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아버지 프레드 웜비어 씨, 오른쪽은 법안을 대표발의한 크리스...

프레드 웜비어 씨는 지난해 VOA와의 인터뷰에서, 자신들이 겪은 비극을 긍정적인 힘으로 바꿔 변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프레드 웜비어 씨] “How can we, as reasonable people who love people and want to be a great person among the world, how can we take a tragic situation that Cindy and I find ourselves in? And then we find out we're not alone. And how can we make that and turn it into something positive and make a difference?”

프레드 웜비어씨와 신디 웜비어 씨는 현재 다른 납북자 가족들과 연대해 북한의 불법 활동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VOA 뉴스 박형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