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군사령부는 올해로 발발 70주년을 맞는 한국전쟁을 기념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사연을 모아 왔습니다. 가족에게 전해졌던 전사 통지 전보문과 고향의 약혼녀와 주고 받은 연애편지, 포로로 지낸 2년여 동안의 이야기까지 한국전쟁의 다양한 사연들이 공개됐습니다. 김시영 기자의 보도입니다.
캐나다 제1 패트리샤 공주 경보병연대(PPCLI) 소속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케네스 노튼 이병.
가족들에게 전해진 1951년 11월 7일자 전보에는 노튼 이병이 이틀 전인 5일 전투 중에 전사했다는 비보가 적혔습니다.
또 노튼 이병이 보낸 마지막 편지가 된 엽서에는 여동생 밀리에게 “답장을 보내지 않으면 정말 크게 화 낼 거야”라는 장난기 섞인 농담이 쓰여 있습니다.
아들의 사망 통지 전보를 받은 노튼 이병의 어머니는 아들을 잃은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1954년 9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또 아버지 역시 아들과 아내를 한꺼번에 잃었다는 마음에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고, 유엔사에 사연을 제공한 노튼 이병의 여동생 밀리 여사는 회상했습니다.
노튼 이병의 7남매 중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밀리 여사는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오빠를 찾아갔던 2008년의 기억을 떠올리며, 오빠를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기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영국 육군 산하 왕립 포병 제170독립박격포대 소속 토미 클로 씨는 19살의 나이로 참전했습니다.
클로 씨는 ‘글로스터 고지 전투(임진강 전투)’에서 3일 동안 벌어졌던 중공군과의 전투를 떠올렸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중공군에 포위되면서 59명의 동료들이 사망했고, 자신을 포함한 526명이 포로로 붙잡혔었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포로수용소까지 6주에 걸쳐 600 마일을 걸어가는 동안 중공군은 중상자들을 제거했고, 걸을 수 있는 부상자들만 남겨뒀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전우 중 34명은 포로수용소에서 사망했다고 당시의 참상을 회상했습니다.
1953년 9월 동료들과 함께 무사히 풀려난 클로 씨는 지금까지도 당시 전우들과 함께 한국전의 경험을 알리고 있습니다.
유엔 파견 네덜란드대대(NDVN) 소속 쿠스 하이쿱 씨는 약혼한 아내를 남겨둔 채로 한국전에 참전했습니다.
참전 1년 뒤 네덜란드로 무사히 귀국한 하이쿱 씨는 결혼식을 올렸고 이후 60년 동안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하이쿱 씨의 딸 폴린 여사는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부모님이 작고한 뒤 두 사람이 한국전 동안 주고받았던 수백 통의 편지 중 일부를 뒤늦게 발견했다며, 하이쿱 씨가 귀국 당시 들고 온 편지들을 공개했습니다.
폴린 여사는 5년 전 아버지가 싸웠던 강원도 원주 325고지 전투 현장을 방문했다며,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운 아버지에게 감사함을 느꼈다고 밝혔습니다.
이밖에 대표적 고지전이었던 ‘펀치볼 전투’에 참전했던 미 육군 로버트 패럿 중사, 태국군으로서 자발적으로 참전했던 알폰 부타카녹 대령 등 지금까지 총 27건의 사연이 모집됐다고 유엔사는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전 참전 용사와 가족, 친구들의 마음 속에 있는 한국전 관련 이야기들을 공유함으로써, 한국전을 ‘잊혀진 전쟁’에서 ‘기억되는 전쟁’으로 바꾸고 싶다고 공모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유엔사는 한국전 당시 전세계에서 참전한 각국 군대들을 통솔하고 지휘하기 위해 유엔 안보리 결의 84호에 따라 1950년 7월 창설됐으며, 현재는 한반도 정전 체제 관리를 맡고 있습니다.
VOA뉴스 김시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