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질적 진전 가능하면”…북한 “적대시 정책 철회하면”

마이크 폼페오 미국 국무장관.

최근 미-북 3차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무성한 가운데 양국이 실제로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게 될지 주목됩니다. 미국은 비핵화와 관련한 `실질적 진전’을 회담 개최의 조건으로 강조하는 가운데, 북한은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철회해야 대화가 가능하다는 주장입니다. 미국과 북한의 입장을 박형주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3차 미-북 정상회담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지난달 말입니다.

문재인 한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유럽연합(EU)과의 정상회담에서 오는 11월 미 대선 이전 미-북 정상회담 추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문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북한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한반도에서 긴장이 한껏 고조된 직후였습니다.
하지만 추가 정상회담은 시간 상 비현실적이며 미국은 당분간 ‘현상유지’를 원할 것이라는 게 워싱턴의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었습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도 한국 측에서 ‘미-북 정상회담’ 언급이 나오기 전날, 공개 석상에서 이런 인식을 내비쳤습니다.

[녹취: 비건 부장관] “I think it's probably unlikely between now and in the US election…”

대선까지 남아 있는 시간과 전 세계적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여파를 고려할 때 미-북 양측이 직접 대면해 정상회담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상상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비건 부장관은 다만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에 준비가 돼 있고, 북한이 협상에 임하기만 한다면 빠른 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국익연구소(CFNI)가 개최한 ‘한국전쟁 70년’ 행사 연설에서 미-북 대화 재개 의지를 거듭 밝혔습니다.

[녹취: 오브라이언 보좌관] “Tangible progress has been slow, but the door to dialogue and progress remains open.”

북한과 눈에 보이는 진전은 더뎠지만 미국은 대화와 진전을 위한 문을 여전히 열어 놓고 있다는 겁니다.

이후 비건 부장관의 한국 방문 계획이 전해지면서 ‘미-북 접촉’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먼저 나서 대화 가능성을 일축했습니다. 북한은 지난 4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이름으로 낸 담화에서, 미-북 정상회담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미국과는 마주 앉을 필요가 없다"며 선을 그었습니다.

이어 7일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도 담화에서 이런 입장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이에 비건 부장관은 한국을 방문 중이던 8일 “북한에 만남을 요청하지 않았다”면서도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거듭 확인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7일 미 ‘그레이 TV’와의 인터뷰에서 3차 미-북 정상회담과 관련해 “만약 도움이 된다면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I would do it if I thought it was going to be helpful. Yeah.”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발언이 원론적 차원의 언급인지, 구체적인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발언인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최근 미-북 정상회담 이야기가 나온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첫 긍정적 반응이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통해 거듭 3차 정상회담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 부부장.

김 제1부부장은 10일 발표한 장문의 담화에서 자신의 개인적 생각이라며, 미-북 정상회담이 올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결코 비핵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며 '비핵화 대 제재 해제'라는 지난 협상의 기본 주제가 이제 '적대시 철회 대 협상 재개' 틀로 고쳐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바라는 듯한 메시지와 함께, 미국 독립기념일 행사 DVD를 개인적으로 얻고 싶다며 담화를 끝냈습니다.

이 담화에 대해 북한이 3차 정상회담 가능성을 일축했다는 관측과 함께, ‘추가 양보’를 얻기 위한 압박 차원’이라는 분석이 엇갈렸습니다.

폼페오 장관은 15일 미국은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고, 북한은 엇갈린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폼페오 장관] “Well, we're getting pretty close to the election. The North Koreans have given mixed signals.”

폼페오 장관은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실질적 진전’을 이룰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믿을 수 있어야만 정상회담에 관여하고 싶어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폼페오 장관은 이날 다른 행사에서는 시기상 대선 전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면서도, 진전을 이룰 수 있는 최상의 방안이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만나는 것이라면 그것(정상회담)이 적절할 것이라며 여운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미-북 비핵화 협상이 장기 교착 상태에 머물고 있는 가운데 3차 정상회담 가능성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17일 자신의 트위터에, 김정은 위원장을 향해 “빨리 행동해야 하며 합의를 이뤄야 한다”며 “곧 보자”고 썼습니다.

미국과 한국이 연합공중훈련 연기를 전격 발표한 직후 나온 이 발언에 대해 북한은 김계관 외무성 고문의 담화를 통해 ‘새로운 미-북 정상회담을 시사하는 의미로 해석한다’면서도 미국이 적대시 정책부터 철회하는 결단을 내릴 것을 요구했습니다.

VOA 뉴스 박형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