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한 새 대북전략 공조…"미국은 신중, 한국은 '신속한 대화 재개' 방점"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

미국과 한국 정상간 어제(4일) 이뤄진 전화통화에서 미국은 새 대북 전략을 짜는 데 신중한 태도를 보인 데 비해 한국은 조속한 대화 재개에 강조점을 뒀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전문가들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에 외교적 인센티브를 먼저 내놓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한국 대통령의 4일 전화통화 내용 가운데 대북 전략과 관련해 백악관은 양측이 “긴밀한 조율에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청와대는 “가급적 조속히 포괄적인 대북 전략을 함께 마련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 했다”고 전했습니다.

한국의 외교전문가들은 양측의 이같은 설명에 비춰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에 앞선 전략 수립에 한국보다 한층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백악관 발표 내용엔 ‘조속히’라는 표현이 없다며 북 핵 문제의 심각성과 협상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북한과의 협상 재개를 서두르려는 의지는 읽히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조 박사는 청와대가 전한 ‘포괄적 대북 전략’이라는 표현에 대해 미국 입장에선 지금까지의 북한정책 전반을 재검토해 큰 틀의 새로운 정책을 세우겠다는 의미 정도라면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나 조기 접촉을 암시하는 신호는 아니라고 분석했습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에게 ‘포괄적’이라는 표현은 북한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와 이를 위한 단계적 이행 계획을 모두 담은 협상전략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최종 목표가 분명히 나오고, 그러니까 북한의 경우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같이 그려지는 거죠. 구체적인 과정에서 북한이 어떤 조치를 하면 거기에 대한 상응 조치는 또 어떻게 되는지 그런 걸 말 그대로 포괄하는 그런 포괄적인 전략을 지금 만들고 있다, 그렇게 이해가 됩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은 한반도 전문가들로 채워진 바이든 행정부 외교라인이 북한과의 조기 대화가 갖는 장단점을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신 센터장은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과제 순위에서 북한 문제가 후순위에 놓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며 협상 주도권 차원에서도 정책 검토 기간을 충분히 가지면서 북한의 태도를 지켜보려 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미국이 지금 정책 리뷰를 본질적으로 하는 과정은 일단 북한을 테스트해 보고 있다, 그렇게 봅니다. 정책 리뷰 기간에 과연 북한이 인내력을 갖고 도발하지

않고 기다릴 것인가, 그렇다면 대화를 제안한다고 하더라도 협상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고 판단을 하고 있을 거에요. 그래서 협상에 서둘러서 나오지 않고 있다고 보고.”

문재인 정부는 미-북 간 북 핵 협상 재개가 조속하게 이뤄지는 데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 후보자는 5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미국 신정부의 대북정책 검토에는 그렇게까지 많은 시간은 걸리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대북정책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의견을 우선적으로 검토하고 협의하겠다고 밝혔는데 이게 긍정적 신호라고 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북한에 대해서는 한국이 가진 통로를 통해서 남북, 미-북 대화를 조기에 재개할 수 있도록 계속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정의용 후보자] “새로 출범한 미 행정부와 조율된 전략을 바탕으로 북-미 대화의 조기 재개를 통한 실질적인 비핵화 진전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외교력을 집중하겠습니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 임기가 1년 남짓 밖에 안 남아 북 핵 협상 성과를 서두르는 한 가지 요인이 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박원곤 교수는 한국 정부는 3월로 예정된 미-한 연합훈련 전에 미국이 선제적으로 북한에 대화를 제안함으로써 교착 국면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이 북한과 협상하기 위해 외교적 인센티브를 먼저 제공하진 않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미국의 비확산 정책 같은 경우엔 이란과 북한이 같이 가는 거잖습니까. 한쪽만 일방적으로 유화적 제스처로 갈 순 없죠. 이란에 대해선 JCPOA(핵 합의) 복귀에 상당히 높은 조건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인데. 그리고 또 하나는 정부가 새로 출범한 상황에서 처음부터 유화책으로 갈 순 없죠.”

조한범 박사는 미얀마 군부 쿠데타 사태 등으로 바이든 행정부 출범 초부터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가 대외정책 전면에 부각되고 있다며 북한 인권 문제가 미-한 두 나라의 대북정책 공조에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북한 인권 문제가 만일 부각되면 한국 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알지만 그러나 그 부분보다는 남북관계를 먼저 진전시켜야 된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데 미국 정부가 이렇게 가면 인권 문제를 전면적으로 내세울 가능성도 있거든요. 그러면 한-미가 정책상 포인트가 좀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죠.”

박원곤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대통령 시절 임명하지 않았던 북한인권특사를 부활시킬 가능성이 크지만 북한 문제를 푸는 초기 단계부터 인권 문제를 내세우는 전략은 쓰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