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미국의 새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바이든 대통령의 이름을 언급하는 대미 메시지를 삼가하면서 경제난 타개 등 대내 문제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다음달로 예정된 미-한 연합훈련이 교착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미-북 관계의 1차 고비가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초 노동당 8차 대회를 통해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의 철회를 요구하며 ‘강대강, 선대선’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북한은 연이어 이달 초 개최한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은 채 김 위원장이 대외 대남 부문에서의 활동 방향을 명백하게 정했다고만 전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TV’ 입니다.
[녹취: 조선중앙TV] "대남 부문과 대외사업 부문의 금후 활동 방향을 명백히 찍어주시고 이를 한 치의 드팀(빈틈)도 없이 철저히 집행해 나갈 데 대하여 강조하시었습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물론 관영매체 조차도 취임한 지 한 달이 넘은 바이든 대통령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 등 극도로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건군절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인 광명성절이 들어있는 2월은 과거 북한이 핵실험이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을 실시하기도 한 시기였지만 올해는 조용히 지나가는 모양새입니다.
북한에서 군 동계훈련이 막바지에 접어든 현재까지도 여전히 특이동향이 감지되지 않고 있다는 게 한국 군과 정보 당국의 판단입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북한이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재검토 결과를 기다리면서 일종의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섣부른 메시지 발신 보다는 당 대회를 통해 한편으론 조건부 대화 용의를 시사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핵 무력 고도화와 자력갱생 의지를 내세워 무언의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입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미국이 뭐라고 나와도 우리는 상관없다, 우리는 계속 핵을 고도화할 것이고 그 길로 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더욱이 선제적으로 뭘 할 것이라고 전혀 기대하지 말아라 라는 그런 메시지가, 이것도 메시지죠.”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은 현 단계에서 대미 메시지 발신을 삼가하면서도 미국과의 협상에 대비해 경제난 완화를 위한 내부 시스템 정비와 중국과의 경제협력 강화 모색에 나서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김 전 차관은 또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 기조를 의식하는 듯한 북한의 행동도 눈에 띈다고 말했습니다.
김 전 차관은 북한 최고지도자 통치자금을 관리하는 ‘금고지기’로 불렸던 전일춘 전 노동당 39호실 실장이 얼마 전 ‘조선중앙TV’에 등장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전 전 실장이 한국에 망명해 최근 미국 ‘CNN’ 방송에 출연한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의 장인이라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바이든 정부가 인권을 강조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인권과 관련한 미국에 대한 그런 시그널이지 않나, 이렇게 누가 보더라도 처벌할 수 있는 사람을 처벌하지 않고 공영방송을 통해 아직도 건재한 상황을 내보낸다 라는 것은 북한이 무자비한 인권 탄압국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지금은 북한이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이 드러나길 기다리는 형국이지만 그렇다고 북한이 느긋한 상황은 아니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북한 문제는 바이든 행정부 내에서 자국 현안은 물론이고 외교과제들 가운데서도 순위가 뒤로 밀리는 상황이라며, 그렇다고 ‘도발을 통한 협상 견인’이라는 북한의 전통적인 대미 외교술을 쓸만한 여력도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조 박사는 리선권 외무상의 지위가 한 달 간격으로 연이어 열렸던 당 대회와 전원회의에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 것은 북한 대미정책의 혼선을 시사하는 대목일 수 있다고 짚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1월 당 대회나 2월 당 전원회의에서도 대미 정책, 대남정책 포함해서 결정문이 일단 공개가 안됐어요. 그리고 리선권이 1월 당 대회에서 일종의 상대적 위상 하락이 있었는데 정치국 후보위원 마지막 호명으로 그런데 한 달도 안돼서 당 전원회의에서 다시 정치국원으로 복귀했거든요. 이 얘기는 북한 내부에서도 일종의 혼선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고요, 느긋하게 기다린다고 볼 순 없는 거죠.”
전문가들은 미-북 관계의 교착 상태는 다음달로 예정된 미-한 연합군사훈련이 1차 고비가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박원곤 교수는 김 위원장이 8차 당 대회를 통해 자력갱생과 핵 무력 고도화라는 대내외 메시지를 내놓은 만큼 미국과의 교착 상태를 오래 방치하진 않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당 대회 통해서 대내기강을 잡고 그리고 미국에 대한 메시지 그 다음엔 당연히 압박 수순으로 갈 것이다, 그 압박의 정도를 조정하면서 우선적으로 노리는 것은 바이든 행정부의 관심을 끌고 바이든 행정부가 뭔가 행동과 제안에 나서게 만드는 그런 목표가 우선적으로 있겠죠.”
조한범 박사도 3월 미-한 연합훈련이 북한의 도발 명분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습니다.
조 박사는 새 대북정책을 검토 중인 바이든 행정부를 겨냥해 곧바로 전략적 도발을 벌이는 것은 북한에게 실익은 없고 부담만 커지기 때문에 김 위원장이 당 대회에서 지시했던 전술핵무기 개발을 뒷받침하는 단거리 미사일 발사 등의 수위를 조절한 도발이 예상된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