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엘리트 탈북민들 “북한 금연법 강화, 지도자부터 솔선수범하고 경제 수준 높여야 효과적”

북한 평양 시내에서 주민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북한의 강화된 금연법은 지도자부터 솔선수범해야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미국에 사는 평양 엘리트 계층 출신 탈북민들이 말했습니다. 또 경제가 개선돼야 건강 등에 대한 주민들의 의식 수준도 높아져 흡연율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이 4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전원회의를 열어 담배 생산과 판매, 공공장소에서의 흡연 통제를 강화하는 금연법을 새로 채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습니다.

지난 2005년 제정한 금연통제법을 더 보완해 극장 등 공공장소와 어린이 보육기관, 의료 시설 등에 금연 장소를 지정하고, 이를 어기면 처벌하겠다는 게 핵심입니다.

전시성 금연 정책이 걸림돌

평양외국어대학과 중국 대학에서 공부한 평양 엘리트 계층 출신으로 최근 미국에서 ‘평해트나이트’ 유튜브 채널을 시작한 이현승 씨는 5일 VOA에, 금연법 강화는 긍정적 조치라면서도 큰 개선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현승 씨] “의도가 어쨌든 사회가 발전하는 데 긍정적 모습이라고 봐야죠. 그렇지만, 분명히 지켜야 할 사람들이 안 지키는 게 문제죠. 뉴스 보니까 흡연을 금지하는 공공장소들을 지정했던데, 그런 장소들에서는 원래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김정은 혼자만 폈죠. 공연장에서, 실내에서 혼자만 피웠지. 아니 어린이집 가서 담배 피우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공용극장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북한에 흡연자가 많기 때문에 담배 생산과 판매 통제 조치 등은 긍정적이지만, 보여주기식 전시성 정책이 여전하고 미국이나 한국과는 크게 다른 사회 분위기가 금연 운동의 걸림돌이란 겁니다.

[녹취: 이현승 씨] “여기(미국)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고, 한국처럼 공공장소에서 강압적으로 담배를 못 피우게 하니까 많은 분들이 끊고, 세금도 올리고 가격도 올리니까 끊는 분들도 계시는데, 북한은 (흡연이) 너무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특히 담배를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제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아마 못 피우게 한다면 반발하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북한은 2005년 금연통제법을 제정한 뒤 외국산 담배 수입 제한 등 다양한 운동을 펼쳤지만, 개선에 대한 평가는 엇갈립니다.

북한과 중국이 636만 달러를 합작투자해 2008년 설립된 평양백산담배합영회사.

북한 금연 인구 평가 엇갈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8년과 지난해 발표한 세계 흡연과 담배 규제 관련 보고서에서 북한의 남성 흡연 인구가 2006년 54.8%에서 2017년에 46.1%로 감소 추세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흡연을 감시하고 예방할 구체적인 실행계획과 예산이 없고, 흡연 금지구역 설정의 강력한 이행 결여, 낮은 담배 가격, 북한의 책임자들과 소통이 어렵고 자료도 적어 평가가 힘들다며 북한의 금연정책 점수를 10점 만점에 5점만 부여했습니다.

탈북민들은 북한 보건당국의 보고를 토대로 작성된 유엔의 흡연 통계는 신뢰하기 힘들다며, 북한 성인 남성들 사이에 흡연은 최소 10명 중 8명 이상일 정도로 매우 만연돼 있다고 말합니다.

평양외국어대학과 해외 북한식당 지배인 출신으로 미국에 망명한 허강일 씨는 미국에 정착한 뒤 담배를 끊었다며, 미국과 북한은 흡연 문화와 정부의 규제 조치가 확연히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허강일 씨] “여기 미국 와서 담배가 너무 비싸서 피울 엄두를 못 내겠어요. 진짜 비싸요. 담배가 보통 한 갑에 11불~14불 합니다. 그래서 살 때 지출이 안 맞더라고요. 그래서 끊었어요. 어떻게 보면 담뱃값 인상이 좋은 점도 있더라고요.”

미국은 담배 생산과 판매에 높은 세금을 부과해 가격을 올리고 담뱃갑에 폐암 환자의 끔찍한 사진 등을 넣어 경각심을 높이지만, 북한은 200종류가 넘는 담배의 가격이 대체로 저렴하고, 경고문도 건강해 해롭다는 작은 문구만 적혀있다는 겁니다.

미국과 북한의 담배 가격 500백 배 차이

실제로 지난해 WHO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에서 가장 저렴한 담배는 한 갑에 69원, 가장 인기가 높은 담배는 229원인데, 인기 담배를 장마당 환율로 환산하면 미화로 2.6센트에 불과합니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말보로 담배가 뉴욕과 시카고 등 대도시에서 13달러에 판매되는 것을 감안하면 북한과 무려 500배의 가격 차가 나는 겁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담배 판매에 대한 높은 세금 부과 등 지속적인 금연 캠페인 등으로 미국의 18세 이상 흡연인구는 지난 2005년에 20.9%에서 2018년에 13.7%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습니다.

북한 담배 '평양'.

북한 최고지도자가 금연 솔선수범해야

최근 북한과 외부 세계를 비교해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 ‘북한을 바꾸다’를 개설한 허강일 씨는 북한의 금연 캠페인이 성공하려면 “지도자부터 솔선수범해 담배를 끊고, 경제를 발전시켜 주민의 의식 수준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허강일 씨] “당연히 김정은이 먼저 끊어야죠. 본을 보이려면. 또 담배를 끊게 하려면 우선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안정이 되어야해요. 사람들의 정신 상태가 안정돼야 합니다. 그런데 북한이란 사회가 사람들을 가만 안 두잖아요. 스트레스를 많이 주잖아요. 독재국가니까.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담배를 쉽게 끊을 수 없어요.”

한국처럼 주민의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 의식 수준도 올라가 웰빙, 즉 개인의 건강과 복지를 정부와 개인이 모두 챙기지만, “북한처럼 경제가 어려우면 걱정이 많아 고민을 해소할 게 담배밖에 없다”는 겁니다.

한국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한국인 성인 남성의 흡연 인구는 1980년에 79.3%로 북한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2018년에는 36.7%로 크게 감소했습니다.

흡연이 코로나 폐해에도 심각

허 씨는 흡연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에 심각한 폐해를 끼친다는 전문가들의 경고에 따른 두려움이 북한의 이번 금연법 강화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금연법 채택으로 북한 선전선동부도 김정은 위원장의 흡연 모습이 관영매체에 나가지 못하도록 통제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보건 전문가들은 흡연이 밀집된 구역에서 이뤄지고, 흡연할 때 마스크를 벗고 대화하며, 손을 입 쪽에 자주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흡연이 코로나 감염 촉매제는 물론 중증과 사망위험도 높인다며 금연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