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대통령 "아프간 철군, 국익 위해 불가피한 결정"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6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아프가니스탄 상황에 관해 연설했다.

미군이 대부분 철수한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점령한 가운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미군 철수가 국익을 위한 결정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미국 역사상 최대의 전쟁 비용이 투입되고 10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아프간 전쟁이 사실상 막을 내린 가운데 이번 결정이 한반도 등 다른 나라에 미칠 파장도 주목됩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주말인 지난15일 미국 언론들은 아프가니스탄 반군 조직인 탈레반이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을 점령한 소식을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미군의 완전 철수를 발표한 지난 4월14일 이후 약 4개월 만이고 미군이 실제 철군을 시작한 5월3일 이후 불과 3개월 여 만의 일입니다.

이후 탈레반은 아프간 국영방송을 장악한 뒤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전쟁은 끝났다”며 자신들의 승리를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탈레반이 일정 기간의 과도 정부를 거쳐 본격적인 집권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이에 따라 과거 탈레반의 과격한 통치 방식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으며, 이런 불안감 등을 이유로 카불 공항에는 아프간을 떠나는 비행편에 탑승하려는 인파가 몰려 공항 기능까지 마비된 상태입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16일 이번 사태와 관련한 대국민 연설에서 아프간 철군은 더 이상 미룰 수 없었으며, 이번 결정이 미국의 이익을 위해 최선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녹취: 바이든 대통령] “I know my decision will be criticized. But I would rather take all that criticism than pass this decision on to another president of United States yet another one a fifth one, because it's the right one. So the right decision for our people, the right one for our brave service members who have risked their lives serving our nation. That's the right one for America.”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의 결정이 비판을 받을 것을 알고 있지만 다음 대통령 즉, 아프간 문제를 다루게 될 5번째 대통령에게 이번 결정을 물려주기 보다는 자신이 모든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는 미국인들, 목숨을 건 용감한 군인들, 그리고 미국을 위해 옳은 결정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아울러 아프간 작전이 처음부터 ‘국가 재건’이나 중앙집권적 민주주의 건설이 아니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오늘은 물론 항상 그랬듯 아프간에서의 우리의 유일한 주요 국익은 미 본토를 테러 공격으로부터 막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 정부와 군의 무능함도 비판했습니다.

[녹취: 바이든 대통령] “American troops cannot and should not be fighting in a war, and dying in a war that Afghan forces are not willing to fight for themselves…Afghanistan political leaders gave up and fled the country. The Afghan military collapsed, sometime without trying to fight.”

아프간 군인들이 스스로를 위해 싸울 의지가 없는 전쟁에 미국 군대가 나서거나 죽을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아프간 정치 지도자들이 포기하고 아프간을 탈출했으며, 아프간 군대는 때론 싸우려는 시도조차 없이 무너졌다고, 바이든 대통령은 말했습니다.

16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진입한 탈레반 대원들이 하미드카르자이 국제공항 입구 주변을 통제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언론들은 아프간 정부와 군의 부패와 무능을 미국이 아프간 전쟁에서 실패한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습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 신문은 14일 미국이 거액을 투입해 아프간 정부군을 키우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특히 미국이 ‘아프간군 기금’을 비롯해 무기와 장비 등의 비용을 아프간 정부에 지원했지만 실제 아프간에서는 임금을 받기 위해 거짓으로 등록한 병력이 많은 등 심각한 비리가 발견됐다고 신문은 지적했습니다.

또 ‘워싱턴 포스트’ 신문은 15일 탈레반이 정부군과 경찰들에게 ‘무기를 넘겨주면 돈을 주겠다’는 식으로 회유해 투항을 받아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따라 예상보다 빨리 탈레반이 아프간 전역을 손쉽게 점령할 수 있었다는 주장입니다.

미국이 아프간에 병력을 보낸 건 지난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9.11 테러를 일으킨 이슬람 무장단체 알카에다와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소탕하고, 이들을 비호하던 아프간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기 위해 미국이 아프간 전쟁을 시작한 겁니다.

이후 2006년까지 1~2만 명 내외의 미군 병력이 아프간에 주둔했지만, 2009년부터 대규모 증원이 이뤄지기 시작하면서 2010년과 2011년엔 미군 병력이 10만 명을 넘어서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20년 가까이 이어오던 아프간 전쟁은 지난해 2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탈레반과의 협상을 통해 올해 5월1일까지 미군과 동맹군의 철군에 합의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

이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올해 4월 이 시한을 오는 9월11일로 연장하긴 했지만, 미군의 완전 철군 계획을 유지했고, 결국 미군이 거의 다 빠져나간 현 시점 탈레반이 수도인 카불 장악까지 성공하게 된 겁니다.

아프간 전쟁은 미국의 전쟁 역사에 다양한 기록도 남겼습니다.

미 연방보훈부와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아프간 전쟁이 이어진 기간은 19.8년으로, 두 번째로 긴 전쟁이었던 베트남전 10.75년과 이라크전 8.75년 그리고 한국전 3.1년을 크게 뛰어넘습니다.

희생자 규모도 적지 않습니다.

지난 20년간 미군 사망자는 2천442명으로 한국전에서 희생된 미군 3만3천739명이나 베트남전 4만7천 명보다는 많지 않지만, 민간인과 반군, 아프간 군경과 언론인 등을 모두 합친 사망자는 17만1천336명입니다.

또 미국 정부가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을 위해 지출한 비용은 사상 최대인 대략 2조 달러로 추산되는 가운데, 상당부분이 부채로 조달돼 이자 비용이 앞으로도 계속 추가되면서 이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16일 탈레반 통치 하의 아프가니스탄을 떠나기 위해 카불 공항에 모인 사람들.

일각에서는 아프간에서의 미군 철수를 향후 한반도에서의 미군 철수와도 비교하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아프간 관련 소식을 전한 한국 언론들의 기사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을 통해 게시된 의견에는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하는 쪽을 비판하며 “한국도 (미군이 없으면) 같은 상황일 것”이라는 글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프간과 한국의 상황을 단순 비교하기에는 다른 점이 많다는 게 미국 정부의 입장입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10일 정례브리핑에서 아프간 철군이 다른 나라에 주둔 중인 미군에 미칠 영향에 대한 질문을 받고 ‘주한미군’을 언급했습니다.

[녹취: 프라이스 대변인] “I would caution against comparing what U.S. forces Korea face and what our service members in Afghanistan would have endured after May.”

프라이스 대변인은 주한미군이 처한 상황과 지난 5월 이후 아프간에 주둔 중인 미군 병력을 비교하는 데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기자들의 추가 질문에 “특정 국가를 다른 나라와 비교하는 건 어렵고 불가능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주한미군 감축 등은 미 의회의 의결 사항으로, 미 행정부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일종의 ‘장치’가 마련된 상태입니다.

미 의회는 주한미군 감축에 관한 행정부의 일방적인 조치에 의회가 제동을 걸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2018년부터 매해 국방수권법에 포함시키고 있으며, 지난해 말 의결된 2021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에도 주한미군 규모를 현행 2만8천500 명으로 유지하도록 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