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열린 미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도 북한에 대한 비관론이 짙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대북 협상과 제재를 총괄하는 두 당국자는 시종일관 전방위 압박을 강조했고, 의원들은 북한 정권을 겨냥한 강도 높은 ‘응징’을 주문했습니다. 3시간 동안 이어진 청문회 진행 상황과 여기 반영된 미 정치권의 강경한 대북 기류에 대해 백성원 기자와 함께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진행자) 미 의회가 올해 개원하자마자 북한 문제를 청문회 주제로 올렸네요.
기자) 그만큼 북한 문제를 바라보는 미 정치권의 시각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말해주는 거죠. 미 의회에서 북한을 주제로 청문회가 이따금씩 열립니다만, 대개는 출석하는 의원들도 많지 않고 1시간쯤 의례적인 질의응답을 주고받은 뒤 끝나는 경우가 자주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청문회 분위기는 여느 때와 달랐습니다. 하원 외교위원회 소속 의원들 20여 명이 빽빽이 들어앉아 3시간 가까이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냈는데, 북한의 도발적 행동을 어떻게든 제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 시급성, 이런 긴장감이 묻어났습니다.
진행자) 의원들의 달라진 태도, 역시 결정적인 계기는 북한의 소니 영화사 해킹 공격이라고 봐야 되겠죠?
기자) 물론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북한의 위협이 실제로 미 본토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소니 영화사 해킹 사건이 경고음을 울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전에도 북한의 사이버 위협을 다루는 청문회가 가끔 열렸지만, 위협의 주체가 어느새 북한에서 중국으로 종종 넘어가곤 했습니다. 그것도 미국의 무수한 기업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이냐, 여기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고요. 하지만 이날 청문회에선 시종일관 북한의 사이버 공격이 국가안보 차원의 문제라는 전제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의원들의 집중도가 아주 높았고 긴장감도 감돌았던 청문회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 국무부에선 성 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출석했고요, 재무부에선 대니얼 글레이저 테러.금융 담당 차관보가 나왔습니다. 두 사람이 대북 제재와 압박 수단을 설명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 같더군요.
기자) 예, 북한 관련 청문회에 늘 등장하는 ‘대화’와 ‘협상’과 같은 단어는 이날 참 듣기 힘들었습니다. 성 김 대표가 북한의 잘못된 행동을 반드시 응징할 것이라는 미국 정부의 정책기조를 큰 방향에서 설명했다면, 글레이저 차관보는 구체적으로 어떤 채찍을 휘두를 것인가를 보여주는 식으로 진행됐습니다. 두 사람 발언의 공통점은, 이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 북한을 더욱 압박해 앞으로 또다시 잘못된 행동을 저지르면 값비싼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는 의지로 모아졌습니다.
진행자) 두 당국자 뿐아니라 이날 의원들 발언 하나하나에도 대북 강경 기류가 그대로 반영돼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 어떻습니까?
기자) 북한과의 대화 필요성을 역설하는 의원이 한 사람도 없었던 정말 드문 자리였습니다. 특히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문제가 어느 때보다도 심도 있게 제기됐습니다. 최근 미 의회에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도록 촉구하는 법안이 제출되지 않았습니까?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이날 청문회에서는 미국의 컴퓨터 네트워크를 공격하는 게 테러인가, 아닌가 바로 대답하라는 다소 거친 질문도 나왔습니다. 잠깐 들어보시죠.
[녹취: 성 김 특별대표, 테드 포우 공화당 의원]
성 김 대표가 테러지원국 재지정의 기술적 절차를 설명하려고 하자 공화당의 테드 포우 의원이 말을 가로막고, 그럼 언제까지 기다릴 거냐, 그런 외교적 수사 대신 북한을 당장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장면입니다.
진행자) 테러지원국 재지정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는데, 이게 그렇게 간단히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잖아요.
기자) 물론 정치적으로는 현 상황에서 제기될 수 있는 주장이지만, 정책결정자 입장에선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선 해당 행위가 정말 테러를 지원했는가를 명백히 밝혀야 하는데다 더 어려운 건 그 행위가 반복적으로 일어나야 한다는 법률적 요건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로선 어느 것도 단정하기 힘들고, 이 때문에 이날 성 김 대표 역시 유보적인 입장만 확인하는 데 그쳤습니다.
진행자) 청문회 분위기만 보면 미 행정부나 의회나 북한에 대한 전방위 압박에 무게를 두는 것 같은데, 실제로도 미국 정부 입장이 완전히 그런 방향으로 돌아선 건지, 어떻게 봐야 할까요?
기자) 소니 해킹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오바마 행정부는 분명히 북한과의 대화 의지가 있었습니다.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인 3명이 모두 석방되던 시점을 전후해 국무부 고위 관리들도 그런 신호를 공공연히 내비쳤습니다. 워싱턴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당시 미국 정부는 북한이 어느 정도 성의만 보이면 덥석 손을 잡을 태세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소니 해킹이 불러온 후폭풍이 너무 컸습니다. 사이버 공간이라는 개념을 만든 주체인 미국이 북한에 국가안보를 위협당한 초유의 사태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북 관계가 어떻게든 접점을 찾을 것으로 보는 시각은 찾기 힘든 상황입니다.
진행자) 청문회에서 성 김 대표가 대북 압박과 제재를 강조했지만 대화에 열려있다는 입장도 확인하지 않았습니까? 어쨌든 북한과의 대화 노력도 병행하겠다는 뜻 아니었을까요?
기자) 분명히 그런 말을 하긴 했습니다. 의원들도 관련 질문을 했고요. 하지만 성 김 대표는 북한이 어떤 비핵화 관련 조치도 취하지 않는 상황에서 대화를 위한 대화를 하진 않겠다는 원칙에 더 강조점을 뒀습니다. 게다가 북한이 미국 뿐아니라 어떤 상대와도 건설적 대화를 할 조짐을 안 보인다면서 더욱 대화에 회의적인 인상을 줬습니다. 특히 중국 역시 자국의 전략적 이해에 따라 북한을 압박하고, 최근 북한과 부쩍 가까워진 듯 보이는 러시아마저도 물밑에선 북한 핵 문제 등에 매우 비판적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하면서 북한과의 대화 보다는 국제적인 압박 공조에 무게를 실었습니다.
진행자) 가까운 시일 내에 미-북 간에 모종의 대화나 협상이 조심스럽게라도 시작되기 힘들 것이다, 그런 비관적인 전망으로 들리는군요.
기자) 그때 그때의 이해에 따라 순식간에 다른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는 게 국제관계이긴 합니다. 오바마 행정부가 최근 전격적으로 쿠바와의 국교정상화를 선언한 게 단적인 예죠. 하지만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13일 청문회가 끝난 직후, 현재로선 설령 미국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이를 실천에 옮기기 매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행정부 내 대화파가 섣불리 목소리를 낼만한 환경이 아니고, 오히려 미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북한과의 대화 재개 요건만 한층 강화됐다는 게 이 소식통의 설명이었습니다.
13일 북한의 위협을 주제로 열린 미 하원 청문회 현장의 이모저모와 여기 반영된 미국의 대북 기류에 대해 얘기 나눴습니다. 백성원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