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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공동구호 나열은 열악한 경제 사정 반증"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제시한 남북관계 개선 등 과업 관철을 촉구하는 평양시 군중대회가 지난달 6일 김일성광장에서 열렸다. (자료사진)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제시한 남북관계 개선 등 과업 관철을 촉구하는 평양시 군중대회가 지난달 6일 김일성광장에서 열렸다. (자료사진)

북한은 지난주 관영매체를 통해 당 중앙위원회가 발표한 무려 310개의 올해 공동구호를 소개했습니다. 해외 주요 언론들은 이들 구호가 역설적으로 열악한 경제 사정을 반영하고 있다며, 북한 주민들이 구호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고 보도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녹취: 조선중앙TV] “온실남새 농사를 대대적으로 하라! 버섯생산을 과학화, 집약화, 공업화하여 우리나라를 버섯의 나라로 만들자!”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와 중앙군사위원회가 지난 12일 발표한 310 개 공동구호에 대해 외신들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정부가 국민의 언행을 통제할 목적으로 공식적으로 명령을 발표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란 게 외신들의 설명입니다.

영국의 ‘BBC’ 방송은 공동구호 전문을 영어로 번역해 소개하면서, 구호들이 경제와 식량에 초점을 맞춘 게 특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영국 쉐필드대학의 한반도 전문가인 제임스 그레이슨 교수는 ‘BBC’ 방송에 구호들이 북한의 열악한 경제 상황을 역설적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평양의 일부 특권층만 풍요로운 삶을 즐기고 다른 지역은 지옥 같은 삶을 사는 북한의 현실을 공동구호들이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겁니다.

‘로이터’ 통신 역시 경제 관련 주요 구호들을 소개하면서, 어린이들에 대한 식량 공급과 안정적인 전력 등 국가 전반에 필요한 것들을 구호들이 반영하고 있다고 풀이했습니다.

하지만 공장이나 생산 시설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주민들의 먹거리를 해결하겠다고 진지한 어조로 밝히는 게 서방세계에는 오히려 웃음거리로 보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로이터 TV] “It actually reflects North Korea’s real concerns..”

북한 정부가 열악한 주민들의 삶을 향상시키겠다고 수 십 년 동안 약속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만성적인 식량 부족과 전력난, 국제적 고립이 계속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프랑스의 ‘AFP’ 통신은 북한 정부가 체제 유지를 위해 구호들을 활용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통신은 특히 탈북민들을 인용해, 북한 주민들은 정부의 구호들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으며 오히려 구호들을 주민식으로 바꿔 정부의 행태를 비난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가령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8년에 나온 대표적인 구호인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는 “저희나 웃으며 가지 왜 우리까지 가자고 하나’로 바꿔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겁니다.

북한 농업과학원 출신인 이민복 씨는 ‘AFP’ 통신에 북한 주민들이 구호의 홍수 속에서 충성에 대한 맹세로 구호들을 외워야만 한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지나면서 이런 상황이 바뀌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민복 씨는 13일 ‘VOA’에 그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녹취: 이민복 씨] “ 구호가 먹힐 수 없습니다. 한 두 번도 아니고 반 세기 이상 그 것을 지켜봤고 결과는 거꾸로 됐고. 중요한 것은 예전에는 배급을 받으면서 어쩌고 저쩌고 했는데 이젠 주민들이 스스로 장마당을 통해 생활하는데 그런 상황에서 체감적으로 구호가 먹힐 수가 없죠.”

미국 언론들은 북한의 공동구호가 현대세계와 거리가 너무 멀다며 오히려 풍자적 소재로 묘사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 신문과 시사주간지 ‘타임’ 등 주요 매체들은 기사 제목을 아예 “버섯국가로 만들자”로 쓰면서 구호들의 기괴함을 자세히 나열했습니다.

특히 ‘USA 투데이’ 신문 등 일부 언론들은 웹사이트 동영상을 통해 구호들이 코미디 소재로 더 적합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일부 영상들] “Country of mushrooms? (웃음)” “What kind of mushrooms? …”

미 ‘ABC’ 방송은 9가지 구호들을 선정해 김정은 정권과 미국 프로농구 NBA 선수 출신 데니스 로드먼 가운데 누가 한 말인지 알아맞혀 보라는 퀴즈를 내기도 했습니다.

영국의 ‘가디언’ 신문은 북한의 구호들이 서방세계에는 완전히 외계적으로 보인다며 그런 나라는 지구상에 거의 없다고 밝혔습니다. 서방에서도 정치인들이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해 구호들을 적극 사용하지만 북한처럼 정부가 뻔뻔하게 개인의 행동 변화와 복종을 주입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는 겁니다.

탈북민 이민복 씨는 북한의 구호대로라면 이미 2012년에 강성대국이 됐어야 했다며, 의식이 깨인 주민들 사이에서 정치구호는 이미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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