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최고 지도자의 신년사는 북한의 한 해 대내외 정책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연설이어서 큰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년사가 북한의 정책방향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최원기 기자와 함께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올해도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신년사를 내놨는데, 먼저 신년사가 무엇인지 좀 설명해주시죠?
기자) 네, 북한 최고 지도자의 신년사는 지난 1946년 1월 시작됐는데요. 김일성 주석은 신년사를 통해 주민들에게 새해인사와 함께 북한의 정책방향과 중요한 대남 제의를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이어받아 1995년부터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그리고 2012년부터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김정일 위원장 시절에는 공동사설이 신년사를 대체하지 않았나요?
기자) 네, 김일성 주석은 거의 매년 1월1일 육성으로 신년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1994년 김 주석 사망 후 집권한 김정일 위원장은 노동신문, 조선인민군, 청년전위 등 3개 신문에 신년 공동사설을 게재하는 방식으로 신년사를 대체했습니다. 그러다 2011년 김정일 위원장 사망 이후에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다시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그렇군요. 그런데 신년사가 왜 관심 대상이 되는 겁니까?
기자) 신년사는 그 해 북한의 정책방향을 보여 주는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로 내부적인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남북관계나 미-북 관계 등 대외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등 주변국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진행자) 문제의 핵심은 신년사 내용과 북한의 실제 정책이 맞아떨어지느냐 여부인데요?
기자) 전문가들은 김정일 위원장 시대부터 신년사와 정책이 ‘따로 노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김일성 주석 시절에는 신년사에 뭔가가 언급되면 이를 관철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 시절부터는 신년사와 현실이 동떨어지거나 정반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진행자) 예를 들어 좀 설명해 주시죠?
기자) 2009년 신년사가 좋은 예인데요. 당시 김정일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그 해 4월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데 이어 5월에는 2차 핵실험을 강행했습니다. 따라서 신년사에서 언급한 비핵화는 ‘빈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진행자) 그러면, 북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지난 몇 년 간 신년사에서 밝힌 대남정책이 어떻게 구현됐는지 알아봤으면 좋겠는데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언제부터 육성으로 신년사를 했죠?
기자) 2013년부터입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 해 신년사에서 “조국통일은 더는 미룰 수 없는 민족 최대의 절박한 과제”라며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했는데요, 목소리 들어보시죠.
[녹취: KCNA] “통일을 이룩하는 데서 중요한 문제는 북과 남 사이의 대결 상태를 해소하는 것입니다”
진행자) 그럼 실제로 남북관계는 어떻게 전개됐습니까?
기자)남북관계는 신년사의 내용과는 정반대로 전개됐습니다. 북한은 한 달 뒤인 2월에 3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개성공단을 일방적으로 폐쇄해 남북관계를 최악으로 만들었습니다.
진행자) 그 이듬해인 2014년에는 어떤 신년사를 했습니까?
기자) 이 때도 김정은 제1위원장은 비방중상 중단을 비롯한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했습니다. 들어보시죠.
[녹취:KCNA] ”백해무익한 비방중상을 끝낼 때가 되었으며 화해와 단합에 저해를 주는 일을 더 이상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진행자) 실제로 그런 신년사 내용이 남북관계에 반영됐나요?
기자) 2014년은 북한이 어느 정도 남북관계 개선을 모색한 해로 볼 수 있습니다. 그 해 2월에 고위급 접촉을 통해 남북한은 상호 비방중상 중지를 합의하고, 또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켰습니다. 또 인천아시안게임에 북한 선수단이 참가하고 이 행사 폐막식에 황병서, 최룡해, 김양건 같은 북한의 실세들이 전격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해에는 대북 전단 문제가 워낙 불거져 본격적인 남북관계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진행자) 지난해 2015년도 신년사도 좀 소개해 주시죠?
기자) 2015년 신년사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최초로 ‘최고위급 회담’ 즉,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한 대목인데요. 들어보시죠.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데 따라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진행자) 그래서 남북관계는 어떻게 됐나요?
기자) 지난해에도 이산가족 상봉과 당국회담 등 남북관계에서 긍정적인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지난 8월 북한의 비무장지대 목함지뢰 도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남북 8.25 합의에 따른 것이지, 처음부터 남북한이 정책 차원에서 움직인 것이라고 보긴 힘듭니다.
진행자) 지금까지 사례를 보면 신년사로 북한의 정책방향을 가늠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걸까요?
기자) 전문가들은 신년사가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주민들에 보내는 새해 인사말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기본적으로 신년사는 ‘백두의 혁명정신’ ‘강성국가 건설’ 같은 구호를 내걸고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한 성격이 강합니다. 이런 이유로 신년사는 남북관계를 비롯한 대외관계 측면에서도 ‘조국통일’ ‘외세 배격’같은 구호 차원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북한의 신년사를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진행자) 지금까지 최원기 기자와 함께 북한 신년사의 성격과 의미에 대해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