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36년만에 노동당 7차 대회를 개최했습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이번 당대회를 통해 핵개발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습니다. 1946년부터 1980년까지 여섯 번에 걸친 노동당 대회를 최원기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이번에 평양에서 열린 7차 노동당 대회는 지난 1980년 10월에 열린 6차 당 대회 이후 36년 만에 열리는 겁니다.
노동당 규약에 따르면 당 대회는 최고 지도자를 비롯해 수 천 명의 대의원이 모여 당의 노선과 현안을 논의하는 최고 지도기구입니다.
북한은 1946년부터 지금까지 총 6 번의 당 대회를 통해 통치이념과 노선, 그리고 인사 문제를 정해왔습니다.
1946년에 열린 1차부터 4차 대회까지는 통상적인 당 대회에 해당됩니다. 기록을 보면 이 때는 당 규약을 개정하고 경제 분야를 비롯한 당 중앙위원회 사업을 총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그러나 1970년에 열린 5차 당 대회를 계기로 노동당의 성격은 크게 변합니다. 북한은 이 때부터 새로운 지도이념인 ‘주체사상’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이른바 ‘8월 종파 사건’으로 정적을 제거한 김일성 주석이 유일영도체제를 본격화한 겁니다. 한국의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입니다.
[녹취: 강인덕] "주체사상을 생활화 하라, 다시 말해 막스-레닌주의에서 김일성주의로 바뀌는 것이 5차 당 대회죠.”
1980년에 열린 제 6차 당 대회는 김정일 후계구도를 다진 행사였습니다. 당시 김정일은 이 대회를 통해 서열 4위에 해당하는 상무위원과 비서국 비서, 중앙군사위원 등 고위 직책에 올랐습니다.
이미 1970년대 초반부터 후계자 역할을 해 온 김정일이지만 당 대회를 통해 부자세습을 공식화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마지막으로 노동당 대회는 36년이라는 긴 공백기에 들어갑니다.
강인덕 전 장관은 1990년대 소련의 붕괴와 김일성 주석의 사망 등으로 당 대회를 개최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녹취: 강인덕] "1980년대가 북한으로서는 가장 위험한 시기입니다. 79년에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으로 가고 85년에 고르바초프가 나와서 페레스트로이카로 가고, 90년이 되면 동서독이 통일되고 사회주의권이 붕괴되고 그 뒤 김일성 사망 후 고난의 행군이 되니까 당 대회를 개최할 정세와 여건이 안되는 거죠.”
그리고 2010년 9월, 북한은 44년 만에 당 대표자회를 소집했습니다. 당 대회 대신 임시전당대회 격인 당 대표자회를 개최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3차 당 대표자회를 통해 김정은이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등장합니다.
[녹취: 조선중앙]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김정일, 부위원장 김정은, 부위원장…”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듬해인 2012년 4월에 4차 당 대표자회를 엽니다. 그리고 김정은은 이 대회를 통해 ‘제1비서’ ‘정치국 위원’,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의 지위를 얻어 북한의 최고 지도자로 등극합니다.
[녹취: 조선중앙TV(2012년 4월)]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최고 영도자 김정은 동지께서 대표자 회의에 참석하셨습니다."
이른바 `선군정치'를 내세웠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달리 김정은 제1위원장은 당을 활용해 자신의 통치기반을 굳혔습니다. 2013년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열어 ‘핵-경제 병진 노선’을 선포한 것이 한 가지 예입니다.
또 김정일 시대에 유명무실했던 ‘정치국 회의’를 부활시켜 주요 정책결정을 내렸습니다. 장성택 처형도 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통해 결정됐습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이번 7차 당 대회를 계기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훈통치’에서 벗어나 자신의 시대를 열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VOA뉴스 최원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