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인권 관련 제재 대상에 포함시킨 미국 행정부의 조치에 대외적으론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정작 북한 내부에선 이를 쉬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른바 ‘최고 존엄’에 대한 정당성이 훼손될 가능성을 우려해 관영 매체들을 통제하고 있다는 관측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12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 당국이 미국 행정부가 최근 인권 관련 제재 대상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포함시킨 사실이 주민들 사이에 알려지지 않도록 내부통제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 당국자는 미 행정부가 김 위원장을 제재 대상에 포함시킨 데 반발해 유엔주재 북한대표부가 미국 정부에 뉴욕 미-북 접촉 통로를 차단하겠다고 통보한 사실과 외무성 성명을 통해 미국에 초강경 대응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힌 사실 등을 북한 내부 매체가 일절 다루지 않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이른바 ‘최고 존엄’을 정면으로 공격한 미국을 규탄하는 군중시위 움직임도 전혀 포착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 당국자는 이는 지난 2011년 6월 한국의 일부 예비군 훈련장에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그리고 김 위원장 등 3부자의 사진을 사격 표적지로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을 당시 보였던 반응과는 대조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북한은 사격 표적지 사건이 터졌을 당시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특대형 도발행위’로 규정하고 전면적인 군사적 보복을 가하겠다고 위협한 것을 시작으로 연일 대남 비방에 열을 올렸습니다.
비난에는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비롯해 대내방송인 `조선중앙방송', 대외방송인 `평양방송', 대남 인터넷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 등 북한매체가 총동원됐습니다.
또 이들 매체들은 언론계 교육계 노동계 등 북한사회 각계 인사들은 물론 평양방직공장 등 일반 주민들이 쏟아내는 한국에 대한 거친 비난의 목소리도 연일 보도했습니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이번 사안은 사격 표적지 사건과는 달리 김 위원장을 인권 탄압의 주체로 낙인을 찍은 것이기 때문에 북한 당국이 대외적으론 강하게 반발하면서도 내부적으론 이 사실이 퍼지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 당국자는 특히 일부 북한 주민들도 불법 구금이나 강제노동, 그리고 총살 등 북한 당국의 인권 유린 행위를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조심스러워 하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장용석 박사는 북한의 이런 조심스런 행동은 미국의 북한 적대시 정책의 부당성을 선전하고 북한 주민들의 대결 의식을 고취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소재인데도 최고 존엄의 정당성을 크게 훼손할 가능성을 우려한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장용석 박사 /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최고 지도자를 제재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최고 지도자가 대내적으로 지닌 정당성, 정통성의 문제 특히 최고 지도자의 국제적 위상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결과에 대한 우려를 북한이 하지 않겠나 싶은 생각을 하고 내부적으로 김정은이 인권 문제로 인한 제재 대상이 됐다는 점을 가급적 통제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내부적으론 강한 통제를 하면서도 미국에 뉴욕채널 차단을 통보한 것은 이른바 수령제 국가의 체제 특성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고유환 교수 / 동국대 북한학과] “자기 나라의 최고 존엄과 관련해서 미국이 제재 대상으로 적시함으로써 존엄을 훼손했다는 내부 논리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결국은 미국이 북한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죠. 그렇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는 미국과 대화할 수 없다 그래서 뉴욕채널을 닫았다고 봐야 되겠습니다.”
고 교수는 북한이 미국의 김 위원장에 대한 제재 발표를 계기로 향후 정국을 전시법에 따라 다뤄나가겠다고 천명함으로써 이를 핵 능력 고도화의 명분으로 활용하면서 핵실험이나 장거리 로켓 발사 등 무력 시위를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