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북한에 있는 이산가족과의 상봉을 신청한 사람들 가운데 사망자 수가 생존자 수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 정부는 추석을 한 달여 앞두고 있지만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과 위협 때문에 이산가족 상봉을 먼저 제의할 상황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민간 연구기관인 현대경제연구원은 11일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현황과 특징’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올해 들어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가운데 사망자 수가 생존자를 추월했다고 밝혔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전쟁 정전 63주년인 올해 6월 말 기준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13만850명이고 이 가운데 사망자는 6만7천180명으로 생존자 6만3천670명보다 많았습니다.
이산가족 사망자 비율은 올해 2월 50.4%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50%를 돌파했고 이어 그 비율이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보고서를 작성한 현대경제연구원 이용화 연구위원입니다.
[녹취: 이용화 연구위원 / 현대경제연구원] “올해 2월만 해도 사망자 비율이 50.4%였는데 불과 4개월만에 51.3%까지 증가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더라도 사망자가 많아지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처럼 사망자 비율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상봉 신청자의 상당수가 80대 이상의 초고령층이기 때문입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상봉 신청자 가운데 80대 이상은 60.4%입니다. 70대까지 포함하면 전체의 84.4%에 달합니다.
2014년 기준 50대에서 60대 연령층의 기대 여명이 평균 25년 3개월인 점에 비춰 앞으로 25년 후엔 이산가족 신청자들이 모두 사망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특히 70세 이상의 평균 기대여명은 7년 9개월에 불과하기 때문에 10년 이내에 대부분 사망할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이들이 사망하기 전 한 번이라도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려면 한 해 7천200명이 상봉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밝혔습니다.
하지만 상봉 기회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습니다.
남북한 당국 차원의 이산가족 상봉은 지난 15년 간 모두 20 차례에 걸쳐 진행됐고 모두 2만3천600여 명이 만났습니다.
그나마 2000년대 초반과 중반엔 해마다 설이나 추석 등을 계기로 두 세 차례 정도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지만 2009년 이후로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그 횟수가 크게 줄었습니다.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연간 평균 이산가족 상봉자 수는 1천540명 정도로 같은 기간 사망자 수 3천800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올해는 전망이 더 어둡습니다. 연초부터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그리고 계속된 도발 위협으로 한반도 긴장이 크게 높아진 때문입니다.
과거 남북 긴장이 고조됐을 때도 이산가족 상봉 행사만큼은 조건 없이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던 한국 정부도 지금은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11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추석 이산가족 상봉 제의 여부를 묻는 질문에,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한국 정부 대북정책의 최우선 현안이지만 지금은 이를 거론할 상황이 아닐 정도로 엄중하다며 이산가족 상봉 제안 등 선제적 조치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또한 추석을 한 달여 앞둔 현 시점에서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한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현대경제연구원 이용화 연구위원은 추석에 맞춰 상봉 행사를 가지려면 준비 기간이 한 달 정도 걸리는 점을 고려할 때 지금쯤 남북한 당국이 협의를 가져야 하지만 지금으로선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습니다.
한편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은 지난달 한국 성인 1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올해 추석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대해 응답자의 절반인 49%가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해야 한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남북관계 상황을 봐가며 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41.5%였고, 불필요하다는 응답자는 5.5%에 그쳤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