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신문을 비롯한 북한 관영 매체들이 일제히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실명을 언급하며 비난의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한국의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반 사무총장에 대한 견제에 나선 것으로 풀이됩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달 24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최근 유엔사무총장 반기문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의 정정당당한 핵탄두 폭발시험을 악랄하게 걸고 들면서 미국과 박근혜 패당을 비롯한 추종 세력들이 벌이고 있는 극악무도한 반공화국 제재 압살 소동에 충실한 하수인 노릇을 자청하고 있다.”
‘반기문’이라는 이름이 총 6번 들어가는 이번 성명은 조선중앙TV와 노동신문 등 매체를 통해서도 북한 내부에 전달됐습니다.
북한은 최근 몇 년간 반 총장과 관련된 내용을 언급할 땐 그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은 채 ‘유엔사무총장’이라는 직함만을 언급해 왔습니다.
실제로 올해 6월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자국의 위성발사권리를 부정한 유엔 사무총장을 비판하면서, 반 총장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고, 얼마 전 주체사상국제연구소 부이사장이 반 총장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도 ‘반기문’이라는 이름은 뺏습니다.
노동신문 역시 올해 초부터 9월18일까지 반 총장과 관련된 총 11건의 기사를 실었는데, 11번 모두 이름은 빠져 있습니다.
비록 올해 7월 노동신문이 한 차례, 반 총장의 이름 세 글자를 언급하긴 했지만, 당시엔 ‘유엔사무총장’이라는 직함을 뺀 채 ‘새누리당 차기 대선후보’라고만 소개했었습니다.
북한이 반 총장의 실명을 의도적으로 감춰온 건 전세계를 대표하는 국제기구의 수장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로 북한에 약 2년간 억류됐다 풀려난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 씨는 북한 주민들이 유엔 사무총장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으며, 이를 믿으려 하지도 않았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달 중순부터 상황이 달라진 겁니다.
지난달 20일을 시작으로 반 총장은 노동신문에 3건, 조선중앙통신 2건의 기사에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직함과 함께 등장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인 4일에도 스위스의 친북단체들이 반 총장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실명을 그대로 언급했습니다.
대남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 역시 반 총장의 이름을 감추지 않고 내보내고 있으며, 일반인들의 게시판에도 반 총장을 비난하는 글이 지난 두 달여간 10여개가 올라온 상태입니다.
심지어 지난달 28일, ‘우리민족끼리’는 처음으로 반 총장을 주인공으로 한 동영상까지 만들어 공개했습니다.
[녹취: 우리민족끼리 동영상] “지금 남조선에서 보수의 차기 대권주자로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는 반기문은 어떤 사람인가.”
반 총장의 실명 공개와 함께 비난 수위가 높아진 배경은 비난의 내용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북한의 매체들은 올해 말 임기가 끝나는 반 총장이 한국으로 돌아가 대통령 선거에 도전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반 총장이 친미적인 성향을 지녔고, 박근혜 한국 대통령과 정치적 노선을 같이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반 총장에 대한 견제를 본격화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실제로 ‘우리민족끼리’에 올라온 한 게시판 글은 내년도에 있을 한국 대선을 언급하면서, “이번 기회를 놓치면 남쪽에는 비극이 가중되고 통일이 아주 멀어지고, 미국을 등에 엎고 나타날 반기문을 초기에 묵사발을 만들지 않으면 나중에 큰 재난을 보게 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한편 파란 하크 유엔 부대변인은 반 총장에 대한 북한의 비난과 관련한 ‘VOA’의 논평 요구를 거절하고, 대신 지난 10일 북한의 5차 핵실험과 관련한 반 총장의 발언을 참고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당시 반 총장은 북한의 5차 핵실험이 안보리 결의에 대한 노골적인 위반이라면서, 가장 강력한 표현으로 북한을 비난한다고 밝혔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