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북한인권법이 제정된 지 100일이 넘었지만 이 법의 취지를 살릴 핵심 기관인 북한인권재단이 출범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이 재단이사 배분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11년 간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해 지난 9월 4일 시행에 들어간 한국의 북한인권법에는 정부가 북한인권 실태를 조사하고 북한인권 증진과 관련된 연구와 정책개발을 수행하기 위해 재단을 설립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인권법이 시행된 지 100일 넘게 지났지만 이 법의 핵심 내용인 북한인권재단은 아직 출범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재단이사 배분을 놓고 한국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모두 12명의 재단 이사진 가운데 통일부 장관이 2명, 그리고 여야가 각각 5명을 추천하도록 돼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이지만 제1다수당으로서 재단 이사장과 사무총장 등 상근이사직을 여당인 새누리당과 균등하게 나눠야 한다며 이사 추천을 미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재단 이사장의 경우 이사들의 투표로 선출하고 사무총장은 이사장이 임명하도록 돼 있는 법 조항에 따라야 한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법 조항엔 국회의 이사 추천 기한이 명시되지 않아 결국 민주당이 이사를 추천하지 않는 한 재단 출범은 불가능합니다.
통일부는 북한인권법 시행 직후 재단을 설립한다는 목표로 서울 시내에 사무실을 마련했고 관련 비용도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이규창 박사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헌법재판소 심판 등 박 대통령의 탄핵 여부가 최종 마무리될 때까지 이 문제가 풀릴 것 같지 않다고 우려했습니다.
[녹취: 이규창 박사 / 한국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을 개선하기 위해서 북한인권재단의 연구조사 활동 이런 게 매우 중요한데 지금 구성이 안되다 보니까 그런 게 이뤄지지 않고 있는 거죠. 그래서 여야가 북한인권법에 의해서 재단을 만들기로 합의했으니까 그 법 정신에 기초해서 조속히 만들어서 출범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북한정의연대 정베드로 대표는 북한인권 문제가 국내 정치 상황과 관계없는 중대 현안으로서 유엔 인권이사회나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인권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작 한국 정치권이 소모적인 정쟁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녹취: 정베드로 대표 / 북한정의연대] “한국 정부와 국회가 국제사회와 인류가 모든 반인도 범죄를 척결하려는 이런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고 보고요. 하루속히 (한국)정부와 정당이 이런 부분에 나서서 부끄럽지 않는 그런 실행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일부에선 당초 북한인권법을 마땅치 않게 여겨 온 야당이 박 대통령 탄핵 이후 정권교체를 염두에 두고 재단 출범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했습니다.
이와 함께 한국 국회는 최근 내년도 통일부 예산심의 과정에서 북한인권재단 예산을 삭감하기도 했습니다.
당초 134억원, 미화로 약 1천150만 달러였던 북한인권재단의 내년 예산 가운데 약 140만 달러를 줄였습니다.
통일부 관계자는 줄어든 예산의 약 80%가 북한인권재단이 북한인권 개선 활동을 하는 민간단체를 지원하는 항목의 예산이라고 밝혔습니다.
북한정의연대 정베드로 대표는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선 인권 침해 사례들을 조사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민간단체 활동이 중요하지만 한국 정치권에는 굳이 인권 문제로 북한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