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씨 살해 사건의 배후가 북한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와 북한 사이에는 외교 갈등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말레이시아 당국이 김정남 씨 살해 사건의 용의자로 북한 국적 남성들을 지목하면서 북한 배후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17일 검거된 북한인 리정철 외에 리지현과 홍송학, 오종길, 리재남을 용의자로 지목하고, 추가로 3명의 북한 국적자가 이번 사건에 연루됐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말레이시아의 누르 라시드 이브라힘 경찰청 부청장은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와 협력해 용의자들의 행방을 쫓고 있다고 밝힌 데 이어 20일 별도의 언론기고문을 통해, “살인범들을 법정에 세울 수 있도록 모든 증거를 수집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현지 언론보도에 따르면 북한 국적 용의자들은 범행 직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출국한 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등을 경유해 17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평양 행 항공편으로 북한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때문에 용의자들을 다시 말레이시아로 송환하기까지 난항이 예상되지만, 북한이 이번 사건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확연해지고 있습니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보건부는 이르면 22일 중 김정남 씨 부검 결과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발표를 통해 김 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독극물 종류가 밝혀지고, 이로써 북한과의 연계 여부가 추가로 밝혀질지 주목됩니다.
이런 가운데 말레이시아주재 강철 북한대사는 ‘북한 배후설’을 강력히 부인하고 나섰습니다.
강 대사는 20일 쿠알라룸푸르 북한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건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사망 원인에 대한 명백한 증거는 없는 상태”라면서 “북한은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를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강 대사] “…but there is no clear evidence on the cause of death...”
강 대사는 한국과 말레이시아 정부가 결탁해 북한을 이번 사건의 배후로 지목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는 이날 강 대사의 주장을 일축했습니다.
나집 총리는 말레이시아의 의료진과 경찰이 매우 전문적이고 객관적이라는데 “절대적인 확신을 갖고 있다”면서, “(말레이시아가) 북한의 이미지를 나쁘게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객관적일 것이고, 북한도 우리가 말레이시아 법 절차를 따른다는 점을 이해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에 앞서 말레이시아 외교부는 이날 강 대사를 초치해 지난 17일 말레이시아 당국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연 데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고 밝혔습니다.
외교부는 성명에서 “이번 사건이 말레이시아 영토에서 발생한 만큼 사망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조사를 실시하는 건 말레이시아 정부의 책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이번 사건 조사가 투명하게 이뤄졌으며, 북한대사관에도 관련 내용을 수시로 알렸다며 불쾌감을 드러냈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말레이시아 외교부는 협의를 목적으로 평양에 주재하고 있는 말레이시아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언론들은 말레이시아 총리가 북한 대사의 주장을 반박하고, 정부 차원에서 북한대사 초치와 평양주재 자국 대사까지 소환하면서 말레이시아와 북한 간 외교 갈등이 점차 심화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한편 이날 인터넷 동영상 공유 웹사이트인 ‘유튜브’ 등에는 김정남 씨가 지난 13일 공격을 받는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이 공개됐습니다.
총 5분 분량의 해당 영상에는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2청사에서 항공권 발권을 위해 무인기계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김 씨에게 2명의 여성이 접근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어 흰색 상의의 여성이 김 씨의 머리 부분을 뒤에서 감싸고, 앞쪽에 있던 또 다른 여성이 김 씨와 접촉한 뒤 유유히 사라지는 장면이 담겼습니다. 해당 영상에 따르면 이들이 김 씨를 상대로 범행을 저지르는데 걸린 시간은 2.3초였습니다.
영상은 공격을 받은 김 씨가 공항 관계자 등에게 도움을 요청한 뒤 이들과 함께 의무실로 향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