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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암살에 북한 외무성 가담...외교 고립 심화될 것”


28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주재 북한대사관 앞에 몰려든 취재진이 대사관에서 나오는 차량을 쫒고 있다.
28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주재 북한대사관 앞에 몰려든 취재진이 대사관에서 나오는 차량을 쫒고 있다.

한국 국가정보원은 최근 김정남 씨 암살 사건을 김정은 북한 정권에 의한 계획된 범죄로 규정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사건의 실체가 드러날수록 북한의 외교적 고립, 특히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까지 나쁜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국가정보원은 27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씨 암살과 관련해 국가보위성과 외무성이 직접 주도한 사건이며 용의자 8명 가운데 2명이 외무성 소속이라고 밝혔습니다.

김정남 씨 암살 사건을 북한 외무성이 직접 개입한, 사실상 김정은 정권이 자행한 ‘국가범죄’로 규정한 것입니다.

한국의 북한 전문가들은 정찰총국이 주도했을 것이라는 관측과는 달리 공식적인 대외관계를 담당하는 외무성 소속 인력이 직접 가담한 사실에 대해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특히 살해 수단으로 화학무기인 맹독성 신경작용제 ‘VX’가 사용돼 국제사회에서 북한이 겪고 있는 외교적 고립을 한층 더 악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한국 외교부에서 고위 관료를 지낸 한 인사는 28일 ‘VOA’와의 통화에서 말레이시아 부총리와 각료들이 최근 잇따라 북한과의 외교관계 재검토를 촉구하고 나선 것은 단순히 엄포용으로 보기 어렵다며, 단교로 가기 위해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이 전직 관료는 어떤 경로로 말레이시아에 반입됐는지 모르지만 ‘VX’가 자국 내에서 사용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말레이시아로선 국제사회에서 씻기 어려운 큰 상처를 입은 셈이라며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고 진단했습니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지난 22일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암살사건의 용의자로 추가 발표한 3명. 왼쪽부터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 현광성,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 북한 국적자 리지우.
말레이시아 경찰이 지난 22일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암살사건의 용의자로 추가 발표한 3명. 왼쪽부터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 현광성,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 북한 국적자 리지우.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인 전현준 박사도 북한대사관이 용의자들을 넘겨주지 않는 이상 말레이시아 수사 당국이 북한 소행임을 100% 규명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면서도 북한이 말레이시아 당국을 무시하는 언행까지 겹쳐지면서 어느 정도 북한 소행임이 드러나면 단교까지 갈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말레이시아는 물론 북한이 오랫동안 외교관계를 유지해 온 동남아 국가들과의 관계에도 적지 않은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입니다.

[녹취: 고유환 교수 / 동국대 북한학과] “북한은 아세안을 상당히 중시했고 아세안 지역안보 포럼에도 참석했고 또 동남아 국가들이 남북한에 어느 정도 균형 있게 대해 왔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해서 북한에 대한 아세안 국가들의 여론이 나빠지고 거기에 따라서 북한의 외교적 고립은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죠.”

한국 외교부 전직 관료는 이와 관련해 말레이시아는 북한이 처음으로 무비자 협정을 맺은 나라로, 동남아 외교의 거점 역할을 해 왔다며 양국 관계가 단절될 경우 말레이시아는 피해가 거의 없지만 북한의 손실은 상당히 클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또 동남아 국가들은 지역 안정과 발전을 위해 남북한 관계가 좋아지기를 바라는 차원에서 등거리 외교를 펴왔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동남아 국가들 사이에서도 북한과의 관계를 재정립하자는 문제 제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김현욱 교수도 북한이라는 국가 차원의 범죄임이 드러날 경우 북한이 외교적으로 사면초가에 빠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녹취: 김현욱 교수 / 한국 국립외교원] “이것은 추후에 국제사회가 북한을 외교적으로 바라보는 그런 외교관계까지 상당히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것이고 미국을 비롯해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데 상당히 속도를 낼 수 있는, 더 강경한 대북정책으로 갈 수 있는 그런 하나의 단초가 될 수 있는 사건이겠네요.”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런 외교적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이번 사건을 둘러싸고 국제사회 외교 관례에 어긋난 행태를 계속 보이고 있는 이유에 대해, 김정은 독재체제 하에서 북한 외교관들이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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