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전술핵의 한국 재배치는 미국의 전통적인 핵 정책에 위배될 뿐 아니라 작전 운용과 전략적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미 군사 전문가들이 지적했습니다. 이들은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 고도화가 남북 간 군사적 균형을 깨지도 않았다며 미-한 연합전력은 여전히 군사적 우위에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매주 현안을 깊이 있게 보도해 드리는 ‘심층취재’. 오늘은 김영권 기자가 북한의 6차 핵실험 뒤 한국에서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는 미 전술핵의 한국 재배치 논란에 대해 미 군사 전문가들의 견해를 전해드립니다.
[녹취: 서먼 전 주한미군사령관] “When I was over there, I was not in favor tactical nuclear weapons. I think that just escalates situation”
“저는 주한미군사령관으로 있을 때 전술핵을 선호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내) 전술핵 재배치가 (위기)상황만 고조시킬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임스 서먼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전술핵 재배치 주장을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더 높일 수 있는 우려 사안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술핵 재배치를 대응 방안의 하나로 유지할 필요는 있지만, 현시점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적극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겁니다.
지난 2011년 7월부터 2년 3개월간 주한미군의 수장을 지낸 서먼 전 사령관은 구체적인 핵 능력과 장소를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미군의 원칙을 강조하면서 짐 매티스 국방부 장관이 북한 문제를 잘 다루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매티스 장관은 지난 14일 미 전략사령부를 방문한 뒤 한국 내 전술핵 재배치 지지 여부에 관한 취재진의 질문에 미군은 강력한 핵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말로 대신했습니다.
그러면서 적이 미국의 핵무기 위치를 모르게 하는 게 미군의 오랜 정책이기 때문에 자세한 보관과 배치 장소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기존의 원칙을 강조했습니다.
미 육군 특전사 대령 출신인 데이비드 맥스웰 조지타운대학 전략연구센터(CSS) 부소장은 한국 내 전술핵 재배치를 촉구하는 사람들은 미국의 정책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녹취: 맥스웰 부소장] “I think people who call for the redeployment of tactical nuclear weapons don’t understand U.S. Policy.”
미군은 핵무기의 위치를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고, 핵무기를 어딘가에 배치해도 이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 배치를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겁니다.
전술핵은 1kt~수백 kt의 위력을 가진 소규모의 핵무기를 말합니다. 미군은 1958년부터 1991년까지 소련과 중국 억제 등을 이유로 총 11개 유형의 전술 핵무기를 한국에 배치했었습니다.
전술핵은 과거 소형 폭탄, 핵 지뢰, 핵 배낭 등 여러 유형이 있었지만 대부분 폐기되고 지금은 공중에서 투하 가능한 B61 폭탄이 거의 배치 가능한 유일한 전술핵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마다 전술핵 재배치 목소리가 커져 왔습니다. 특히 이달 초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전술핵을 포함해 자체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론조사 결과 60%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전술핵 배치를 당론으로 정하고 미국에 최근 대표단까지 파견했고, 홍준표 대표는 지난 25일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을 만나 거듭 전술핵 재배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로 인한 군사력 불균형 보완,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 등 동맹 결속, 중국이 한국에 대한 전략적 위상을 재고해 일방적 행동을 못 하도록 하는 이점들이 있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미 랜드연구소의 안보 전문가인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은 이점보다 한국이 짊어져야 할 전략적 부담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베넷 선임연구원] “Nuclear programs are really expensive. The notion that would only cost…”
핵무기 배치와 유지는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이를 결정할 경우 다른 국방 분야에 상당한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겁니다. 게다가 배치 장소 선정 문제, 그리고 북한의 공격징후가 확실할 경우 선제 타격하는 한국의 킬체인과 미군의 상호운용성에도 전술핵이 여러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베넷 박사는 지적했습니다.
베넷 박사는 특히 미군이 B-61 폭탄을 배치할 경우 미 핵무기 보관 시설과 같은 기준의 안전 시설과 보안, 환경, 자원, 요원 훈련, 기지 재편 등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서먼 전 사령관은 재임 시절에 처음 시도했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인 사드의 한국 배치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생각해 보라고 반문했습니다.
[녹취: 서먼 사령관] “We tried to get THAAD in there when I was there. Look at how long it has taken to get the THAAD…”
사드 배치 반대 여론과 지역 주민들의 시위 등으로 지금도 완전히 배치가 완료되지 않았는데 핵무기가 배치된다면 얼마나 많은 장애에 부딪힐지 상상해 보라는 겁니다.
랜드연구소의 베넷 선임연구원도 전술핵을 한국 어디에 배치하든 많은 진보세력의 반대에 부딪힐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또 사드 사례에서 보듯이 배치 장소조차 비밀로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베넷 선임연구원] “Many people among the progressives in South Korea would be very opposed to whatever location was chosen so that would be troubling……”
이런 과정 자체가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미국의 핵 정책과 어긋난다는 겁니다.
조지타운 대학의 맥스웰 부소장도 전술핵 배치 장소는 북한의 제1 타격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한국 정서상 지역 주민들이 사드 이상으로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맥스웰 부소장은 북한의 핵무기 때문에 남북 간 군사력 균형이 깨졌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적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맥스웰 부소장] “There is no imbalance of nuclear power. In fact, the imbalance of nuclear power in the United States and South Korea favor…”
미군은 북한이 감히 근접조차 할 수 없는 아주 우수한 전략 핵무기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미-한 연합군이 여전히 핵에 관해서도 군사력 우위에 있다는 겁니다.
맥스웰 부소장은 전술핵을 배치할 경우 오히려 북한이 선제공격할 수 있는 구실만 제공한다며, “재배치는 감정적인 만족 외에 아무런 유익이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한국인들의 신뢰 부족이 이런 전술핵 재배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도 이 때문에 이달 초 전술핵 재배치를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워싱턴의 전문가들은 매케인 위원장의 언급을 모든 대응방안이 테이블 위에 있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라고 풀이합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마이클 오핸론 선임연구원은 25일 ‘VOA’에 보낸 이메일에서 더 많은 대응 방안을 검토해야 하는 차원에서 매케인 위원장의 제안에 동의한다며, 그러나 전술핵 재배치는 현 상황에서 가장 낮은 선택 방안이라고 말했습니다.
전술핵 재배치가 추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군사적 선택을 더 어렵게 할 수는 있겠지만 상황을 타개할 해법은 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은 이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B-1B 장거리 전략폭격기와 F-35B 등 최신 전투기를 한반도 상공에 보내 무력 시위를 하는 것은 북한에 대한 경고 뿐아니라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 등 방어공약을 재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미 국방연구원의 오공단(케티 오) 책임연구원은 주한미군과 주일미군 사령관의 계급이 다르다는 것을 주시하라고 말합니다.
[녹취: 오공단 책임연구원] “미국이 큰 나라이니까 한국에만 신경을 쓸 수 없지만 그래도 한국이라는 스페셜 시어터, 하나의 개념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유일하게 주한미군사령관이라는 게 있는 게 아니에요? 주일미군사령관은 3성(장군)밖에 안 돼요. 유일하게 4성장군이 가 있는 데 대한 가치를 알고 받을 것을 받고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도와줘야 한다고 봅니다.”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대사 역시 워싱턴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한국에는 2만 8천 500명의 미군과 가족 등 10만 명이 훨씬 넘는 미국인들이 있다며, 전술핵을 배치하지 않더라도 미군의 핵우산 등 방어공약은 확고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부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VOA’에 방어 공약에는 완벽한 게 거의 없다며 한국 정부도 미군의 방어공약을 신뢰하며 연합방위능력 개선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가 전술핵 재배치를 추구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한 행보라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또 방어체계인 사드 배치를 놓고도 중국이 상당한 보복 조치를 하는 것을 볼 때 전술핵 배치는 중국의 더 큰 반발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습니다.
랜드연구소의 베넷 선임연구원은 북한의 공격에 대한 빠른 핵무기 대응 차원에서 전술핵이 필요하다면 핵무기를 장착한 미 핵잠수함 등 핵 전략 자산을 한반도 해상에 더욱 자주 전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베넷 선임연구원] “I think it could include some more visible demonstration of the US nuclear capabilities in the region, US nuclear submarine…”
베넷 선임연구원은 오하이오급 같은 미 잠수함에서 핵미사일을 발사하면 15분 만에 북한을 타격할 수 있다며 이런 미 전략자산 전개를 통해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를 더욱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베넷 박사는 그러나 미국이 B-2나 B-52 와 달리 핵무기 공격 능력이 없는 B-1B 전략폭격기를 군사분계선에 전개하는 것은 위기 상황을 더 고조시키지 않으려는 의도가 있음을 중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전술핵 배치에 관한 미 정부의 입장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는 겁니다.
크리스토퍼 로건 미 국방부 동아태 대변인은 지난 11일 전술핵 재배치 지지 여부에 관한 ‘VOA’의 논평 요청에 핵 관련 사안은 비공개 논의로 제한한다며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