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가능 링크

[기자문답] 9년 만의 테러지원국 재지정...의미와 배경은?


미 백악관 전경.
미 백악관 전경.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전격 재지정했습니다. 대북 압박이 거세지면서 북한의 고립 또한 한층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함지하 기자와 함께 이번 결정의 배경과 그 동안의 과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려면 테러를 저질렀거나 테러를 지원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북한이 명단에 오른 배경은 뭔가요?

기자) 가장 큰 요인으로는 지난 2월 말레이시아에서 발생한 김정남 씨 암살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일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재지정 사실을 발표하면서 ‘해외 영토에서 일어난 암살사건을 포함해 반복적으로 국제테러 행위를 지원해 왔다’고 지적했습니다.

진행자) 당시 사건은 화학무기인 VX를 사용했다는 점 때문에 국제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는데요?

기자) 그 뿐 아니라 북한 외교관 등이 대거 개입을 하고, 이후 전원 도주를 하면서 말레이시아는 물론 국제적인 공분을 일으켰습니다. VX는 유엔이 금지한 화학 물질인데 이를 외교관들이 버젓이 국제공항에서 사용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줬던 거죠.

진행자) 그런데 미국 정부가 당시 사건을 북한 정권과 연계시킨 건 꽤 최근 일이죠?

기자) 그렇습니다. 북한이 일으켰다는 정황은 확실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이를 공식화하는 데 조심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한 예로 유엔총회 제 1위원회가 당시 사건에 대한 우려를 담은 결의를 채택했는데, 여기에는 북한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당시 결의에 찬성입장을 밝혔던 로버트 우드 미 국무부 군축대사 역시 이 사건을 언급했지만 북한을 지칭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달 초H.R.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당시 사건을 명백한 테러 행위로 규정하면서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진행자) 그 밖에 이번 결정의 요인이 된 사건들은 어떤 게 있을까요?

기자)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억류됐다 풀려나 이후 사망한 대학생 오토 웜비어를 언급했습니다. 웜비어는 지난 6월 의식불명 상태에서 석방됐지만 엿새 만에 숨을 거뒀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남 씨 테러 사건을 언급한 직후 이번 조치가 훌륭한 젊은이인 오토 웜비어와 그 외 북한의 억압에 잔인하게 영향을 받은 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이 두 가지가 전부인가요?

기자) 현재로선 그렇습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당시 암살사건과 함께 북한이 자행한 여러 (테러) 행위들이 이날 테러지원국 지정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밝혔지만, 다른 테러 행위들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진행자) 이번 조치는 사실 미리 예고됐었죠?

기자) 그렇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 날인 15일 중대발표를 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발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었는데요. 이날 관련 내용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틀 뒤인 17일 새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이번 주 초, 트럼프 대통령이 이 문제를 결정해 발표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관심이 모아졌습니다.

진행자)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국회 연설에서 이미 이번 결정을 어느 정도 암시했다는 관측도 있었는데요.

기자) 당시 연설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꽤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북한 정권의 잔혹함을 여러 차례 고발하면서 과거 북한 공작원들이 한국에 침투하고, 고위 지도자 암살을 시도했다고 지적했고요. 또 오토 웜비어를 고문하면서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화합이나 대화 메시지보다는 미국의 추가 행동에 초점을 많이 맞췄었는데, 자연스럽게 테러지원국 재지정 같은 중대 조치가 예상됐었습니다.

진행자) 미 의회도 줄곧 요구했던 조치가 아니었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올해 4월 미 하원은 ‘북한 테러지원국 재지정 법안’을 압도적으로 통과시켰습니다. 당초 이 법안은 연초에 발의돼 김정남 씨 암살 내용이 빠져 있었는데요. 이 사건이 발생한 이후 의회가 김정남 씨 사건을 재지정 사유로 새롭게 추가하기도 했습니다. 또 지난달에는 상원의원 12명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라는 요청을 담은 서한을 국무부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결국 김정남 씨 암살사건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겠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올해 2월 민간 차원에서도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라는 요구가 백악관 청원사이트인 ‘위더피플’에 올라왔었는데요. 당시 청원 역시 김정남 씨 암살 사건을 테러지원국 재지정의 분명한 이유로 제시했습니다.

진행자)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된 나라에는 어떤 조치가 취해집니까?

기자) 무역과 투자, 원조 등에 있어서 미국의 제재를 받게 됩니다. 세계은행(World Bank), 아시아개발은행(ADB),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 금융기구에서 지원이나 차관을 받을 때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틸러슨 국무장관도 이번 조치를 통해 대북 압박이 더 강화될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트럼프 행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대북 압박 캠페인을 이번 테러지원국 지정을 계기로 더 옥죄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맞춰서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재무부가 2주에 걸쳐 추가 조치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고요.

진행자) ‘재지정’이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 이번 지정이 처음은 아닌데요.

기자) 그렇습니다. 북한은 과거 1988년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가 2008년 미국과 핵 합의를 하면서 제외됐었습니다. 따라서 이번 지정은 9년 만에 이뤄진 것입니다. 그런데 핵 합의는 결국 깨지지 않았습니까? 이 때문에 핵 합의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는 건 어찌 보면 예견된 수순으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진행자) 북한의 과거 테러 행위를 한 번 짚고 넘어가 볼까요?

기자) 1988년 북한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된 건 대한항공 폭파사건 때문입니다. 1987년 11월 북한 공작원 김현희가 당시 사건에 연루됐는데, 115명의 희생자를 낳았었습니다. 1983년엔 전두환 전 한국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미얀마 아웅 산 묘역 테러를 일으켰습니다. 이 때문에 17명의 각료와 수행원들이 사망했었죠. 또 1996년엔 잠수정을 이용해 26명의 무장공비를 강원도 강릉에 침투시키기는 등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은 테러 사건을 여럿 저질렀습니다. 또 2000년대 들어선 해킹을 이용한 범죄에 북한이 자주 연루되고 있습니다. 지난 2014년엔 미국의 소니 영화사를 해킹하기도 했죠.

진행자) 현재 미국 정부의 테러지원국 명단에는 어떤 나라들이 올라와 있습니까?

기자) 이란과 시리아, 수단입니다. 북한까지 총 4개 나라가 올라 있는 겁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수단은 지난주 북한과의 군사·무역 관계를 단절하겠다고 선언하지 않았습니까? 테러지원국 목록에서 빠지기 위해섭니다. 앞서 미국은 수단에 가해진 경제 제재 상당부분을 해소했는데, 여기에는 북한과의 관계 단절이 큰 몫을 했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에 취한 추가 조치가 테러지원국 제외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겁니다. 실제로 존 설리번 국무부 부장관은 수단 정부가 계속해서 대테러에 대한 협력을 비롯해 인권 문제 등 기타 주요 현안에 진전을 보인다면 수단을 제외하는 방안을 고려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었습니다. 현실화될 경우 미국의 테러지원국에는 북한과 이란, 시리아만이 남게 됩니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함지하 기자와 미국 정부의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재지정 결정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XS
SM
MD
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