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올림픽과 월드컵 축구 등 대규모 국제 스포츠 행사 뒤에 군사적 혹은 정치적 충돌이 많았다고 미 전문가가 지적했습니다. 이 전문가는 올림픽이 평화를 조성한다는 것은 근거가 빈약한 선입견이라며 평창 올림픽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과 비슷한 점이 많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지적은 미국에서 일부 언론이 북한의 평창 올림픽 행보를 너무 미화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나왔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올림픽이 역사적으로 평화 분위기를 정말 조성했을까?”
지난 9일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에 남북한 선수단이 동시 입장하자 적지 않은 언론이 “평화의 희망”이 싹텄다며 크게 보도했습니다.
특히 북한 응원단과 예술단의 공연, 김여정이 오빠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 제안 친서를 직접 문재인 한국 대통령에게 전달하자 여러 언론이 평화를 앞당길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전했습니다.
하지만 정치와 스포츠의 연관 관계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미 다트머스대학 디키국제이해센터의 앤드류 버토리 박사는 12일 ‘VOA’에 “섣부른 기대”라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올림픽 등 국제 스포츠 행사가 평화를 적극 조성했다는 주장은 객관적인 근거가 거의 없으며, 오히려 행사 뒤에 군사적·정치적 충돌이 발생한 경우가 많았다는 겁니다.
[녹취: 버토리 박사] “If you look back historical cases and if you ask self-question….”
지난해 11월 영국 옥스포드 대학 학술지(Oxford Academic)에 ‘민족주의와 충돌: 국제 스포츠의 교훈’이란 논문을 발표해 관심을 끌었던 버토리 박사는 “스포츠는 공격적인 국정운영의 핵심 자원”이라며 이같이 지적했습니다. 국가 지도자들이 올림픽 등 국제 스포츠 행사를 활용해 민족주의를 고무시켜 독재를 강화하거나 무력 충돌의 동력으로 이용한 사례들이 많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월드컵 축구는 1969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간 전쟁까지 촉발했고 2009년 이집트와 알제리는 외교 분쟁으로 전쟁 직전까지 가는 등 수많은 사례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올림픽도 크게 다르지 않다며 평창 올림픽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상황과 매우 비슷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버토리 박사] “1936 Olympics are, I think, very relevant case….”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는 당시 호전적이고 반유대적인 목소리를 낮추며 국제사회에 친근한 척했지만, 올림픽이 끝난 뒤 다시 본색을 드러내 이웃 나라를 공격하고 유대인을 학살하며 2차 세계대전까지 일으켰다는 겁니다.
버토리 박사는 이렇게 호전적인 의도를 숨기고 한국에 평화 공세를 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모습이 베를린 올림픽 상황과 매우 비슷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4년 소치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침공 계획을 숨긴 것도 비슷한 배경이라고 말했습니다.
국제 스포츠를 통해 국제 위상을 강화하고 국민을 민족주의로 선동하며 본색을 위장하는 것은 역대 독재자들의 공통적 특징 가운데 하나라는 겁니다.
[녹취: 버토리 박사] “dictators often try to use international sports to bolster their international reputation….
미 정계와 언론계에서도 미국과 각국의 일부 언론들이 평창 올림픽과 관련한 북한 정권의 행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데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CNN’ 방송의 유명 앵커인 제이크 테퍼는 11일 ‘트위터’에 “당신이 김정은 정권보다 미국 지도자들을 싫어한다면, 정말로 북한에 관한 이것들을 읽을 필요가 있다”며 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 인터내셔널과 휴먼 라이츠 워치, 북한인권위원회의 북한 인권 보고서 웹사이트 주소를 올렸습니다.
‘워싱턴포스트’ 신문의 애나 파이필드 도쿄지국장은 11일 ‘트위터’에 새 독자들이 이 신문의 북한 관련 기사를 읽으려면 이 기사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며 탈북민 25명을 인터뷰한 기사를 연결했습니다.
북한 정권의 실체를 먼저 꿰뚫어 본 뒤 평창 올림픽에서 나오는 관련 기사들을 읽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수 백만 명의 팔로워가 있는 유명 방송인 로라 잉그레햄은 ‘트위터’에 평창 올림픽에서 북한의 선전 쿠데타를 찬양하는 언론 매체는 정말로 (어디가) 아픈 매체일 것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마이크 허커비 전 알카소 주지사 등 여러 정치인들도 “북한을 응원하는 게 북한 응원단이냐 아니면 우리 언론들이냐”며 일부 매체들의 보도를 비난했습니다.
‘CNN’ 방송과 ‘ABC’, ‘뉴욕 타임스’ 등 여러 언론은 앞서 “김여정이 (올림픽)쇼를 훔쳤다”, “올림픽 외교 금메달감” 혹은 그를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인 이방카와 비교하며 움직임을 자세히 전했습니다.
특히 한국의 많은 언론은 북한 정권의 핵 문제와 잔혹한 인권 문제 등 실체를 강조하려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올림픽을 망치려는 인물로 묘사하며 무례하다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다트머스대학의 버토리 박사는 민주주의 지도자들 역시 올림픽을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위해 활용한 사례들이 많다며, 문재인 한국 대통령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올림픽을 통한 관계 개선 접근은 “순진한 실책”으로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버토리 박사] “democratic leaders also use international sports for their own purpose….”
북한 정권의 특성상 미국과 한국 관계를 이간질하고 제재를 회피하며 핵 개발을 완성하려는 시간을 벌려는 의도가 농후한 데 올림픽을 통해 북한을 오히려 정상적인 국가로 미화하고 있다는 겁니다.
존 볼튼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도 12일 언론 기고에서(The Hill) 일부 언론들의 보도 행태를 비난하며 남북한이 지난 2000년과 2004년, 2006년 올림픽에서 단일팀을 구성하고 두 번의 정상회담을 했지만, 모두 핵무기 개발 진전을 막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탐색적 차원에서 북한 정권의 의도를 확인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의 노력 결과를 지켜보자는 의견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민간단체인 미 군축협회의 데럴 킴볼 대표는 11일 ‘트위터’를 통해 남북 관계 개선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이 공개 혹은 비공개로 미국에 핵과 미사일 시험을 자제할 것이라고 밝히고 미국은 미-한 연합훈련 계획 수정에 합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