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부가 지난 2일 식수절을 맞아 대대적으로 산림복구 전투를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산림은 해마다 평양시와 비슷한 면적이 사라질 정도로 심각하다는 지적입니다. 전문가들과 탈북민들은 북한 정권이 요란한 구호 정치를 청산하고 국민 우선의 정책을 펴야 산림뿐 아니라 식량과 전력 등 민생이 모두 개선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김영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영국에 사는 탈북민 박지현 씨는 지난 1일 스위스를 방문했다가 푸른 산들에 잔뜩 매료됐습니다. 구릉지대로 산이 거의 없는 영국과 달리 높은 산에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차있었기 때문입니다.
[녹취: 박지현 징검다리 대표] “스위스에 갔을 때 산이 있는데 산에 나무가 빼곡히 들어있는 것을 보니까 북한의 산이 떠올랐어요. 벌거숭이 북한산. 그리고 딱 떠올랐던 게 북한의 산에 올라가서 7월에 나무껍질, 송이 껍질, 칡뿌리 캐던 것, 그런 생각들이 (기억 속에) 지나가더라고요. 벌거숭이 산도 지나가고 그러면서 한쪽으로 정말 분노하고. 마침 그걸 보면서 동료와 식수! 나무에 대해 얘기를 했어요. 식수절에는 학교에서 가 나무도 심는데 하면서.”
박 씨가 스위스의 아름다운 숲을 즐기지도 못한 채 분노했던 이유는 조국의 강산을 벌거숭이로 만든 북한 정권의 무책임한 정책 때문입니다.
북한 지방 간부 출신으로 난민 지위를 받아 미국에 사는 정모 씨는 2일 ‘VOA’에 “미국이나 한국 정부처럼 북한 정권이 연료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산림의 황폐화가 계속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정 씨] “아이고 그저 북한에서는 연료 부족이니까 화목을 때야 하는데 한국처럼 뭐 여러 가스 같은 게 많아서 그런 것을 사서 쓸 수 있으면 사람들이 왜 그렇게 하겠어요. 사람들이 땔 게 없으니까 마을 주변은 나무가 없어요. 군부대 같은 곳에나 나무가 있지. 주민 부락은 반반해요. 왜냐하면, 땔 게 없으니까. 겨울은 길지. 어디 가서 불을 지피고 밥을 해 먹어요. 그러니까 나무를 찍지 말라고 해도 다 찍어가지요”
북한 관영 매체들은 지난 2일 식수절을 맞아 대대적으로 산림복구전투를 벌이자고 촉구했습니다.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산림은 나라의 귀중한 자원”, “후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재부”, “모든 산을 푸른 숲이 우거진 황금산으로 만들자”고 말했다고 크게 선전했습니다.
하지만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북한의 산림 면적이 계속 줄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김정은 정권의 공식 출범 직전인 2011년에 553만 헥타르에 달했던 임야가 2015년에는 503만 헥타르로 감소해 해마다 평양시 면적의 산림이 사실상 사라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합니다.
탈북민 정 씨는 “김씨 정권의 구호 선전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수 없이 반복됐다”며 지금 정권에서는 “답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정 씨] 식수를 한다고 해도 나무를 심는다 해도 그걸 밤에 가서 뽑아서 불을 때는 거죠. 답이 없어요. 통일이 되어 자유를 얻거나 개방되기 전에 답이 없어요. 북한에 가면 무슨 개발을 하려 해도 원동력이 있어야 하잖아요. 동력이 문제인데 동력이 없잖아요. 뭐 전기가 있어요? 연유가 있어요? 뭐가 있어요?”
전력을 개선하겠다는 김씨 정권의 약속은 해마다 신년 공동사설이나 최고지도자의 신년사에 반복되지만, 역시 구호뿐입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전력’이란 단어를 9번이나 반복하며 전기 사정을 개선하겠다고 강조했었습니다.
[녹취: 김정은] “도들에서 자기 지방의 특성에 맞는 전력생산 기지들을 일떠 세우며 이미 건설된 중소형 수력 발전소들에서 전력생산을 정상화하여 지방 공업 부분이 전력을 자체로 보장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주정거장에서 340일 동안 머물렀던 우주인 스콧 켈리 씨는 최근 ‘VOA’와의 인터뷰에서 우주에서 바라본 남한의 환한 불빛과 북한의 캄캄한 모습은 매우 충격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대조적인 모습은 남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이 얼마나 극명하게 다른지를 보여주기 때문에 “지정학점 관점에서 한반도는 지구상에서 가장 충격적”이란 겁니다.
북한 정권의 요란한 선전 구호는 식수나 전력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365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취임 첫해인 2012년 4·15 열병식 연설에서 다시는 인민의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고 말했지만, 경제 상황 역시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녹취: 김정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인민, 만난 시련을 이겨내며 당을 충직하게 받들어 온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며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입니다.”
김 위원장은 농업에서 포전담당제를 실시하고 장마당 단속을 느슨하게 하는 등 일부 긍정적인 노력을 했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오히려 인민들을 위해 써야 할 귀중한 국가 자원을 핵과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데 대부분 전용해 국제사회의 제재를 자초했다는 지탄이 지배적입니다.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의 한반도 전문가인 렘코 브뢰커 교수는 2일 ‘VOA’에 북한의 구호 정치가 과거처럼 주민들에게 영향력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브뢰커 교수] "그런 구호 정치 의미가 많이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어쩔 수 없이 평양이 하라는대로 하지만 주민들은 그런 구호를 이제 안 믿는 것 같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 할 뿐이지 옛날 1970~80년대처럼 최고 지도자의 말을 믿으면서 조국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것으로, 더 이상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러 소식통과 최근에 북한을 탈출한 탈북민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김정은 정권이 국민을 보호하는 게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것을 북한 주민들도 깨닫고 있다는 겁니다.
[녹취: 브뢰커 교수] “They are not protecting their own people…”
브뢰커 교수는 정부의 가장 책임은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지만, 북한 정권은 너무 오랫동안 수뇌부의 이익과 정권 유지에만 집중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국제 변호사이자 북한 인권 전문가인 원재천 한국 한동대 교수는 이런 자국민을 차별하는 정책 때문에 북한이 요즘 과거 악명이 높았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유색인종 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와 자주 비교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원재천 교수] “그래서 얘기가 나오는 게 북한이 현대판 아파르트헤이트다! 소위 정치적 인종차별이다 그런 얘기가 나오고 그래서 이것은 당연히 개선돼야 하고. 남아공 같은 문제는 국제사회가 올림픽 참가를 금지시키면서 압박을 가하고 내부적으로 정책이 변하도록 했었죠.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핵 문제도 있지만, 핵심은 정치적 차별문제, 여성과 아동,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정부 정책과 실행, 실질적인 역할이 무지하게 부족하고, 부족하다는 게 어떻게 보면 국가의 책임을 못 하는 엄청난 부정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 거죠.”
영국에서 북한 여성과 아동의 인권 보호를 촉구하는 민간단체 ‘징검다리’를 설립한 탈북민 박지현 씨는 정부가 잘못하면 의회와 주민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심지어 선거를 통해 지도자가 교체까지 되는 모습을 보며 참 민주주의를 배우고 있다고 말합니다.
[녹취: 박지현 대표] “국가가 우리를 살리는 게 아니고 사실은 우리가 국가의 잘못된 점을 지적할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독재자들의 얘기에 귀 기울이지 마시고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얘기를 담대하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어렵고 힘들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일어나서 북한의 사회를 바꾸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 후손들도 계속 독재자 밑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꼭 지금 세대에서 변화할 수 있도록 외부와도 손잡고 외부 정보도 많이 보셔서 언젠가는 일어나서 싸울 수 있는 준비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