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동영 국회의원은 미국과 북한이 각자의 '선행 신뢰 조치'로 비핵화 단계를 밟아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미국의 적대관계만 해소되면 북한은 먼저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정동영 의원을 서울에서 함지하 특파원이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남북정상회담이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그런데 과거 두 차례의 정상회담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런 평가가 많은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정동영 의원) 공교롭게도요. 2000년 정상회담은 그 해에 미국 대선에서 미국 정권이 바뀌는 바람에 성과가 제한적이었어요. 2007년 정상회담의 결과는 그 해 한국에서 정권이 또 바뀌었어요. 미국에서의 정권교체, 한국에서의 정권교체가 정상회담의 성과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됐죠.
기자) 이번엔 과거와 달리 핵 문제가 핵심입니다. 또 미-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있는데요?
정동영 의원) 핵 문제는 결국은 적대관계의 산물입니다. 남북의 적대관계, 미-북 간의 적대관계 속에서 태어난 게 북한의 핵이에요. 미사일이고요. 그래서 핵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 해법은 적대관계 해소입니다. 제가 10년 전에 2005년 6월에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을 때 그 때도 똑같은 대답을 했어요. 그러니까 제가 그 때 끌어냈던 말이 비핵화가 '선대의 유훈'이라는 말이었어요. 제가 세 번을 같은 질문을 했어요. '당신의 궁극적인 목표가 핵 보유 아니냐?' 그랬더니 '아니다' (라고 해요). 그러나 제가 '아니라고 하지만 국제사회는 믿지 않는다, 결국은 핵을 갖고 말 것 아니냐?' 했더니, (김 위원장이) '그렇지 않다. 초강대국인 미국과 우리의 적대관계가 해소된다면 우리가 가져야 할 이유가 없지 않나? 와서 보면 될 것 아닌가' 그래서 똑같은 질문을 또 했어요. '그렇게 말하지만 한국의 보수세력은 믿지 않습니다. 결국은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같은 질문을 반복했을 때, 김정일 위원장이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쏟아낸 말이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입니다.' 이 말이 처음 나온 거에요. 저는 속으로 무릎을 쳤어요. 이건 최상급 표현이다. 그런데 선대의 유훈이라는 말이 이번에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을 이끌어 낸 '최상급 비핵화' 의지 표현이죠. 미국은 북한을 믿지 않죠. 북한도 이렇게 말해요. 미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이 뒤집어진다.' 그런데 작년 말에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성공했다고 선언하면서 핵 무력을 완성했다고 선언했잖아요? 그리곤 유턴한 거죠. 180도. 전략적 결단을 했다고 봅니다.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안전 보장이 되면 핵을 포기하겠다, 이 걸 교환하겠다는 거죠. 근데 왜 교환하겠다는 거냐? 북한의 국가 목표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핵과 경제의 병진입니다. 그런데 핵을 갖고 경제를 베트남이나 중국처럼 발전시킬 방법은 없어요. 결국 이 핵을 체제안전 보장과 교환할 때 가능하다는 것을 지금 김정은 위원장이 알고 있다고 봅니다.
기자) 북한이 주장하는 비핵화는 궁극적으로는 미-한 동맹의 약화로 이어지지 않겠느냐, 이런 우려도 있습니다.
정동영 의원) 이미 북한은 냉전 붕괴 이후, 탈냉전 속에서 1992년에 미 국무부에 북한의 2인자 김용순 비서를 보내서 북-미 관계를 수립하자, 그러면 주한미군이 주둔하는 것을 용인하겠다는 뜻을 1992년에 부시 정권에 전달했어요. 2000년에도 김대중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그리고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에 왔을 때 똑같은 얘기를 했어요. 보수세력 쪽에서 무슨 '남북 간의 평화협정이 맺어지면 주한미군이 나가야 된다'는 것은 근거 없는 정치공세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지금 말씀하신 보수세력은 북한을 믿지 못하는 이유가 천안함 사건이나 6.25전쟁까지도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주장에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요.
정동영 의원) 어떤 생물도 어떤 국가도 다 목표는 생존과 번식입니다. 국가 입장에서 보면 체제생존, 경제적 번영을 목표로 하는 거죠. 근데 북한은 70년 동안 고립돼 있었어요. 소외되고요. 특히 동서냉전이 붕괴된 이후에 가장 외로운 나라가 돼 있어요. 그 다음에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으로부터 지난 70년 동안 국가가 탄생한 이후 국가로 승인을 받지 못했어요. 국가로 인정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적이에요. 지금 초강대국 미국의 적은 어떤 나라입니까? 쿠바가 적이 아니잖아요. 이제 북한만 남았어요. 그러니까 북한 입장에서는 사활을 걸고,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데 집중하는 건 당연하죠. 김정은 위원장은 6년 전에 인민들에게 약속했어요.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겠다, 더 이상 인민의 허리띠를 졸라 매게 하지 않겠다.' 이런 약속이에요. 사회주의 부귀영화는 다른 말로 하면, 우리도 정치는 공산당, 노동당 일당독재를 하면서도 고도성장을 하겠다는 거에요.
기자) 과거 노무현 정권 당시 대북접근법에 있어서 미국과 엇박자를 냈다는 주장이 있는데요. 이에 대한 우려나 대비책, 혹은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요.
정동영 의원) 기본적으로 노무현 정부 때는 부시 정부였는데, 부시 정부의 대북한 정책은 네오콘이 주도했어요. 딕 체니, 럼스펠드, 볼튼… 이런 분들은 북한을 악마로 규정했어요. 악마와 대화는 필요 없는 거죠. 그건 때려 부수는 거에요. 붕괴시키는 거에요. 그런 관점에서 우린 그걸 용납할 수 없죠. 북한과 전쟁을 불사한다? 우린 용납할 수 없는 거에요.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안 된다는 건 우리 입장이기 때문에 그 점에선 불편했어요. 그런데 지금 트럼프 대통령도 전쟁 가능성, 군사적 옵션 가능성을 얘기했지만 심지어 볼튼 보좌관 같은 사람도 2년 전에 제가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어요. '미국의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가능성은 제로다. 나는 판문점과 서울을 여러 번 가 본 사람이다. 판문점, DMZ와 서울이 얼마나 가까운 거리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다. 북한이 얼마나 비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집단인지 알기 때문에, (미국의) 선제공격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그리고 한국이 절대로 미국의 선제공격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이런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볼튼 대사의 평소 주장과 달라서, 볼튼 대사도 상황에 따라서 유연해지는구나. '상황론자다' 이런 생각을 했죠.
기자) 지금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접근법에 대해 남북 그리고 미국 간의 약간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CVID'와 점진적, 동시적 접근법을 어떻게 보세요?
정동영 의원) 부시 정부 때 네오콘이 제기한 'CVID'는 사실 선 핵포기론이에요. '먼저 핵을 내려 놔라.' 그러면 대화해주겠다는 거였어요. 지금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마주 앉기로 한 상황에서는 선 핵 포기는 아니잖아요. 동시 행동이잖아요. 'CVID'를 북에 대해 하라는 거고, 북한은 미국에 대해서 'CVIG'를 해달라는 얘기에요. 'G' 게런티를 해달라는 거에요. 동시 조치를 해달라는 거지요. 북한과 미국 사이에 신뢰가 없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선행 신뢰 조치'가 필요해요. 미국이 북한이 믿을 수 있도록 조치를 해야 돼요. 무슨 조치를 해야 되나 하면, 미국이 지금 근심하고 걱정하는 건 'ICBM'이잖아요. 우선 운반 수단이에요. 그러면 'ICBM'과 관련해서 그 생산기지를 한 두 개라도 폐쇄하는 거에요. 철거하는 거에요. 또 핵실험장을 폐쇄하는 거에요. 그런 조치를 하게 되면 미국이 믿을 거 아니에요. '진짜로 비핵화 의지가 있구나.' 이렇게 될 거고요. 그런데 그게 일방적인 요구만은 아니죠. 미국도 선행 조치를 해야죠. 예를 들어서 테러리스트 지원국가에서 다시 빼주는 절차를 시작한다든지, 아니면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기로 한다든지, 이런 결정을 하면 북한도 '아 미국이 우리를 적대만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인정할 수도 있겠구나, 체제 보장이라는 게 가능하겠구나'라는 신뢰를 얻게 되면 비핵화의 속도는 빨라질 수 있겠죠. 그래서 'CVID'와 'CVIG'를 교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지금 말씀하신 'CVID'와 'CVIG' 교환 방식은 이전 합의 때 나온 게 아니었나요? 예를 들어 1994 핵 합의 이후에 결과적으로 그런 단계들이 실패했다는 인식들이 미국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정동영 의원) 이번엔 톱다운 방식이잖아요. 이번엔 위에서 큰 틀에서 합의를 하고, 그리고 이제 바로 실무 고위급 회담을 열어서 일정표를 작성하고, 또 막히면 정상 간에 그걸 뚫어낼 수 있겠죠. 그 과정에서 남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죠. 왜냐하면 비핵화 과정에서 미국이 돈을 댈 일은 없을 거에요. 미국경제 상황 등으로 봐서, 미국이 경제 지원을 하거나 돈을 대줄 일은 없잖아요. 기본적으로. 그런데 북한이 원하는 것은 경제발전인데 결국 남한이 손을 잡아줄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 점에서 남북관계의 전면 정상화와 또 북한의 비핵화가 한 쪽의 축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저는 그런 면에서 한-미 공조가 긴밀하게 작동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요.
기자) 과거 통일부 장관으로 재직하실 때 경험했던 김정일과 이번에 김정은, 어떤 차이점을 보셨나요?
정동영 의원) 김정일 위원장은 수동적인 거에요. 1차 정상회담, 2차 정상회담 다 남쪽이 제안하고 남쪽이 설득하고 그래서 수동적으로 임한 거에요. 그런데 이번엔 반대죠.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한 건 김정은이에요. 북-미 정상회담을 제안한 사람도 김정은이에요. 중국에 가겠다고 한 것도 김정은이에요. 김정은의 시간표에 따라 남북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북-중 정상회담, 북-러 정상회담… 이렇게 가고 있는 거라고 봅니다. 아버지 때와 달리 지금은 자신감을 갖고 있다. 그 자신감은 핵 무력 완성에서 나오는 거에요. 신년사에서 이렇게 말해요. '우리는 마침내 핵을 가졌다. 이제는 미국이 전쟁을 할 수 없다. 우리는 이제 핵 무력을 위한 연구개발 과정을 접는다. 이제부터 핵무기 생산과 배치에 들어가겠다'고 말했어요. 그 핵무기 완성 선언과 핵무기 대량생산 들어가겠다는 그 사이에 협상을 열고 있는 거죠”
기자) 만약에 이 협상이 실패하고, 남북정상회담이나 미-북 정상회담이 한국 정부가 뜻하는 대로 되지 않을 경우, 그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동영 의원)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간절히 원해요. 이 회담의 성공을요. 근데 비핵화의 주체는 김정은이잖아요. 트럼프 대통령도 성과를 원할 겁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지요.
기자) 이 질문을 드린 이유는 아까 말씀하셨지만 핵무기의 실제 대량생산까지 가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거잖아요.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요.
정동영 의원) 그러니까 절박하기 때문에 어쨌든 지금 집중해야 할 것은 '협상이 결렬됐을 때 뭘 할까'에 대한 것도 필요하겠지만, 집중해야 하는 것은… 북한이 비핵화하겠다고 나왔는데 비핵화 하면 될 것 아닙니까? 달라는 게 뭐에요? 군사적 위협을 해소해 달라는 거에요. 지금 경제적 지원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에요. 체제안전을 보장해 달라는 거에요. 이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자는 거에요. 그걸 안 하고 핵무기 대량생산으로 가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 결국은 열쇠가 남쪽에 있고, 미국에 있는 거에요. 정말로 북한의 핵무기를 철거하는 것이 진정한 목표라면 군사적 위협 해소를 해줘야죠. 체제안전 보장해줘야죠. 그렇게 해서 북한이 베트남의 길을 가게 되면 동북아가 안전해지잖아요. 그렇죠?
기자) 일각에서는 미국이 핵 협상에 실패할 경우에 그 다음 남은 카드는 군사적 옵션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정동영 의원) 그런데 강경파들의 그 같은 주장이 북한의 핵 능력을 키웠어요. 2005년 9월19일 김정일 위원장이 전략적 결단을 내렸어요.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어요. 그리고 미국과 북한이 국교를 수립하기로 했어요. 체제안전 보장이죠. 그리고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그게 깨지고, 실패한 이유는 결국 북한 붕괴론 때문이에요. 북한 곧 붕괴한다. 그래서 제재와 압박 일변도로 갔어요.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대화가 진행 중에는 멈췄어요. 대화가 끊기고 제재와 압박이 시작되면 그 시간을 이용해서 질주했어요. 그래서 완성까지 왔단 말이에요. 그러면 돌아봐야죠. 뭐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악화시켰는가?
기자) 저희가 요즘에 취재를 하다 보니까 납북자, 탈북자, 인권단체들이 소외감을 많이 느끼는 것 같습니다.
정동영 의원) 섞으면 안 돼요. 그러니까 북 핵 문제가 있고, 북한 문제가 있어요. 인권 문제는 북한 문제에요. 지금 우리에게는 북 핵 문제가 떠올랐잖아요. 북 핵 문제 해결 기회에요. 북 핵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자연히 북한 문제 해결의 기회가 되는 거지요. 근데 북 핵 문제와 북한 문제를 섞어 버리면 이건 북 핵 문제하는 데 암초가 되는 거지요. 북한을 동굴에서 끄집어내서 햇빛이 비치는 광장, 국제사회 구성원으로 참여시키는 것. 베트남처럼 중국처럼 북한이 참여하면 그 속에서 북한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 제 해법입니다.
기자) 그럼 북 핵 문제가 해결되면 북한도 '민주화' 가능할까요?
정동영 의원) 근데 지금 민주화라는 잣대를 가지고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이냐. 중국이 민주화된 나라는 아니잖아요. 북한은 중국 모델을 따라가고 싶어해요. 베트남 모델을 따라가고 싶어하는 거지요. 우리로서는 베트남이나 중국처럼 북한이 변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기자) 그러나 한국이나 미국의 관점으로 봤을 때는 중국식 민주화, 혹은 베트남의 민주화는 조금 부족하다는 인식이나 시각은 있잖아요?
정동영 의원) 근데 지금은 우리가 평화가 근본적으로 흔들리잖아요. 그런데 북한이 개방을 하고 중국과 베트남의 길을 가게 되면 그건 한반도의 정세가 안정이 되는 걸 의미하고, 또 동북아 정세가 안정되는 걸 의미하니까. 우리로서는 목표의 성공이죠.
기자) 김정은 3대 세습체제가 공고화된다는 우려가 인권단체들 사이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정동영 의원) 기본적으로 남과 북은 이미 1991년 기본합의를 통해 서로 공격하지 않는다, 불가침. 화해 합의를 했어요. 거기에 보면 서로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 그리고 주권을 존중하고, 체제를 존중하고, 평화롭게 공존한다고 합의를 했어요. 이것은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에서 동독과 서독이 서로 경계선을 존중하고, 주권을 존중하고, 서로 공격하지 않고,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상주대표부를 서로 교환하고, 두 국가 두 체제로 살기로 결심하고 17년 뒤 통일로 갔어요. 우리도 마찬가지로… 지금 적대적이잖아요, 남북이? 그런데 서로 동서독 처럼 서로 존중하면서 평화공존의 길을 가는 것이 그게 가장 빠른 평화통일의 길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정동영 의원으로부터 미-북 관계와 정상회담 전망을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서울에서 함지하 특파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