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문재인 정부가 북한 최전방 군인들에게 보내던 확성기 방송을 중단한 조치에 대해 우려와 기대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한 전문가는 자유롭게 개방된 한국과 세계 최악의 반인륜적인 독재국가를 상호주의로 묶을 수 없다며 확성기 방송 중단이 중·장기적으로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정부가 밝힌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이유는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와 평화로운 남북 정상회담 분위기 조성입니다.
최현수 한국 국방부 대변인입니다.
[녹취: 최현수 대변인] “이번 조치가 남북 간 상호 비방과 선전 활동을 중단하고 ‘평화,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나가는 성과로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이번 조치로 남북 군사분계선 일대 40곳에서 전방의 북한 군인들에게 외부 소식과 한국 가요를 보내던 확성기 방송이 모두 멈췄습니다.
한국의 조치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회 2차 회의에서 남북이 서로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을 때 이미 예견됐다는 지적입니다.
[녹취: 문재인 대통령]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서로 피해 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 정부가 북한과 협의 없이 먼저 대북 확성기 방송을 멈춘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의 견해는 엇갈렸습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마이클 오핸론 선임연구원은 ‘VOA’에 “잃을 것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좋은 움직임”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지난해 5월까지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스웨덴 대표를 지낸 마츠 앵그먼 전 스웨덴 공군 소장도 앞서 VOA에 신뢰구축 차원에서 남북이 모두 확성기 방송을 중단할 필요가 있다고 제의했었습니다.
[녹취: 앵그먼 전 소장] “I also propose that you may stop this loudspeakers operation from both side as confidence…”
북한 주민들의 의식을 깨우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남북 군사분계선 지역은 늘 긴장이 고조돼 있고 우발적 사고로 상황이 악화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조치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미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은 23일 VOA에 단기적으로 잃을 게 별로 없는 게 맞지만, 중·장기적으로 얼마나 잃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베넷 선임연구원] “Well certainly, in the short term, very little is lost, but question is how much is lost in the medium to longer term……”
북한의 발표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이런 상응 조치를 할 필요를 느꼈을 수 있지만, 김정은이 지금까지 한 행동은 6차 핵실험으로 이미 큰 타격을 받아 용도가 불분명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약속뿐이란 겁니다.
베넷 박사는 그러면서 확성기 방송 중단 조치는 한국의 대중가요를 즐기는 북한의 젊은 군인들 입장에서 보면 그리 좋지 않은 소식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베넷 박사] “I think it’s not very good. I think the soldiers enjoy K-pop. Kim jong-un likes K-pop.
김정은 국무위원장 자신은 한국 가요를 좋아하면서 주민들이 들으면 체포하고 자신과 고위층이 누리는 권리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조치가 북한 정권의 지속적인 인권 침해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일 한국 가수들의 평양 공연을 1천 500명과 함께 지켜봤지만, 북한 주민들은 한국 국민들처럼 방송을 시청할 수 없었습니다.
미 육군 대령 출신인 데이비드 맥스웰 한미연구소(ICAS) 선임연구원은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가 북한 정권의 정보 통제 문제를 강하게 지적하고 있다며, 확성기 방송 중단은 파장이 크지 않겠지만, 다른 유형의 대북 정보 유입 활동은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맥스웰 선임연구원] “Again, United Nation’s Commission of Inquiry noted that one if North Korea’s human rights violations…”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는 최종 보고서에서 북한 주민들이 외국 방송을 시청하거나 청취하면 처벌을 받는 등 철저한 통제와 검열 속에 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최근 유엔의 비정부기구 협의 지위를 공식 획득한 북한인권위원회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23일 ‘VOA’에 북한 군인들은 한국의 대중가요를 들으면 안 되냐고 반문합니다.
[녹취: 스칼라튜 총장] "아니 K팝 공연을 간부들 앞에서 하고 다 지지하고 한국 언론들도 아주 긍정적으로 보도하고 그러는데요. 일반 주민들, 특히 북한 군인들을 위한 K팝 방송은 왜 안 됩니까? 그렇지 않아요?”
한국의 대북 확성기 방송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북한 요원들에게 독살당한 소식 등 일반 뉴스뿐 아니라 한국 가요들을 자주 방송해 왔습니다.
[녹취: 방미의 ‘날 보러와요’ 외로울 땐 나를 보러 오세요 울적할 때 나를 보러 오세요…”
몇 년 전 휴전선을 통해 한국에 망명한 북한 군인 정대한 씨는 VOA에 처벌 때문에 동료들과 생각을 나눌 기회가 거의 없었지만, 북한 군인들이 방송을 듣고 세상을 달리 보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녹취: 정대한 씨] “저는 대북방송이 굉장히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처음 나온 군인들에게는 공포스럽기도 하겠죠. 좀 무서울 거에요. 하지만 그런 부분은 상당히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장마당 세대’로 불리는 북한의 신세대 병사들은 한국 문화에 매우 익숙해 있기 때문에 확성기 방송을 통해 음악을 들으며 한국사회를 더 동경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대북 확성기 방송 영향 때문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한국 정부가 지난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뒤 방송을 재개한 뒤 휴전선을 통해 한국으로 망명하는 북한 병사들도 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북한 병사 4명이 망명해 2000년 이후 최대를 기록했었습니다.
500W급 대형 스피커 48개로 구성된 확성기 40대는 평균 10km 거리, 밤에는 그 이상에서 들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 정권은 늘 확성기 방송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며 폭격과 전쟁 위협까지 했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방송] “모든 대북 심리전 수단들을 초토화해버리기 위한 정의의 군사 행동이 전면적으로 개시될 것이다”
지난 2015년 북한의 황병서·김양건과 8·25 합의를 주도했던 홍용표 전 통일부 장관은 회담에서 “북한의 관심사가 오로지 대북확성기 중단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었습니다.
제임스 클래퍼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재임 시절 행사 연설에서 미국이 훌륭한 무기인 정보를 활용하지 않고 있는 게 답답하다며 대북 확성기 방송을 지적했었습니다.
[녹취: 클래퍼 국장] "what does bother me a bit is we don’t capitalize on our great weapon which is information….”
비무장지대를 따라 대북확성기 방송을 하거나 민간단체들이 전단을 북한에 떨어뜨리면 북한 정권은 완전히 미쳐버린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대북 정보는 북한의 핵무기에 대응한 한국의 중요한 ‘비대칭 무기’라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주민들의 눈과 귀를 공포정치로 틀어막아 독재 정권을 3대째 유지하는 세계 최악의 폐쇄 검열 국가 주민들에게 객관적인 진실을 알리는 것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중요한 강점이란 겁니다.
지난 2015년 남북이 8·25 합의를 통해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자 이런 조치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억지할 수 없다고 지적했던 미 터프츠 대학의 이성윤 교수는 23일 VOA에 같은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성윤 교수] “Some will say this is a small, reasonable concession for the greater good of inter-Korean reconciliation…”
일부는 대북확성기 방송 중단이 작은 조치로, 더 위대한 남북 화해와 비핵화를 위한 합리적 양보라고 말하겠지만, 실제로는 한국 정부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 교수는 작은 양보로 북한 정권이 스스로 의미 있는 양보를 할 것이란 그릇된 믿음 안에서 문재인 정부가 스스로 입을 막고 문제를 더 키우며 비도덕적으로 상황을 위험하게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상호 비방과 선전 활동 중단”이란 추정은 터무니없는 접근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성윤 교수] “The presumption of ‘mutual criticism and propaganda against each other’ is absurd. One is a function democracy…”
한쪽은 민주주의와 열린 사회, 다른 한쪽은 세계 최악의 반인륜적인 전체주의 체제이기 때문에 서로 도덕적인 상호 연관성이 없다는 겁니다.
이 교수는 그런데도 한국 정부가 이미 확성기 방송을 접었다며, 이런 반복적인 상황이 계속된다면 북한 정권의 치명적 위협만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반복되는 악순환을 깨려면 미국과 한국 정부는 김정은 정권이 아파하는 궁중 금고와 독재 우상화에 타격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