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풍계리 핵 실험장 폐기에 앞서 전문가들이 들어가 갱도를 사찰한 뒤 핵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얻어야 한다고 미국의 대량살상무기 폐기 전문가가 밝혔습니다. 35년 동안 미국 로스 알라모스 국립연구소에 재직하며 여러 나라의 핵무기와 생물학무기 해체 과정에 참여했던 셰릴 로퍼 씨는 22일 VOA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북한이 비핵화에 진지하다면 핵무기 과학자와 제조 시설에 대한 접근을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영남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북한 풍계리 핵 실험장 폐기가 곧 이뤄질 전망인데 국제원자력기구(IAEA)나 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는 이번 절차에서 배제됐습니다. 이에 대한 우려는 없으십니까?
로퍼) 만약 북한이 투명성에 관심이 있었다면 CTBTO를 초청하는 게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기구는 핵 실험장 폐기 문제 등을 조사하는 데 매우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핵 실험장의 갱도를 마음대로 처리하기 전에 전문가들이 조사를 하게 했으면 좋았다고 봅니다.
기자) 과거 에스토니아와 카자흐스탄에서 핵무기 등 무기 해체 작업에 참여하셨습니다. 만약 이번에 풍계리에 직접 가셨다면 무엇을 확인하셨을 것 같습니까?
로퍼) 우선 갱도를 육안으로 살펴보고 싶습니다. 북한은 이 핵 실험장의 (폐기) 작업을 밟아왔고 관심이 집중될 수 있는 배선이나 다른 장비들을 대다수 빼냈을 겁니다. 저는 지질학자는 아니지만 지질학자가 직접 들어가 갱도 안에 있는 돌을 조사하면 매우 좋을 것 같습니다. 실험장이 위치한 산에 대한 정보를 조금 알 수 있을 겁니다. 또한 샘플을 채취해 (과도한 핵 에너지를 갖는 원자인) 방사선 핵종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고 싶습니다.
기자) 갱도의 돌이나 방사선 핵종을 확인하는 게 왜 중요합니까?
로퍼) 갱도의 돌을 통해 알 수 있는 정보는 핵 실험장이 위치한 산에 다시 되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피해가 생겼는지 여부입니다. 또한 갱도의 돌을 통해 과거 핵실험 이후 수집한 지진 관련 정보들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방사선 핵종은 과거 핵실험 과정에서 생기는 것인데 이를 통해 실험에 사용된 핵무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조금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확인하기 위한 최상의 조건인 방사성 핵종은 수명이 짧기 때문에 지금쯤 모두 사라졌을 겁니다.
기자) 만약 이런 부분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기 전에 핵 실험장이 폐기된다면 추후 검증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뜻입니까?
로퍼) 북한이 갱도를 어떻게 닫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북한이 갱도의 입구 부분만을 폭파하고 갱도의 10m~20m만을 무너지게 하는 것이라면 나중에 다시 갱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갱도로 다시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은 북한 역시 다시 갱도에 들어가 핵실험을 위해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자) 핵실험장의 완전한 폐기를 위해서는 부분 파괴가 아닌 콘크리트를 사용해 덮어버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데요.
로퍼) 갱도를 다시 사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내부를 콘크리트는 아니더라도 돌이나 다른 것들로 완전히 막아버리는 방법뿐입니다. 하지만 갱도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북한은 갱도를 다른 실험장이나 다른 산에 만들 수 있습니다.
기자) 핵 실험장 폐기 과정에서 방사능 오염 위험은 없습니까?
로퍼)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북한은 과거 핵실험에서 유출을 막는 데 매우 뛰어났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매우 짜증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주 조금의 핵 물질이라도 유출이 됐더라면 북한의 무기 프로그램들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었을 겁니다. 갱도의 입구만 파괴하는 것이라면 폭발 규모는 매우 작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곳에서 진행됐던 핵실험 규모와 비교해보면 말이죠.
기자) 풍계리 핵 실험장을 다시 사용하거나 새로운 갱도를 만드는 것은 매우 쉽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과거 영변 냉각탑 폭파 때와 마찬가지로 보여주기 위한 행사에 그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로퍼) 네 그렇습니다. 풍계리 핵 실험장 폐기는 ‘쇼’ 성격이 큰 것 같습니다. 기자들이 현장에 가 있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물론 폐기 과정을 촬영하겠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갱도 조사를 미리 할 수 있었다고 해도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 대한 많은 것을 알게 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은 더 알 수 있었겠지만 말이죠. 북한이 실제 핵무기를 포기할 것인지가 핵심인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북한이 정말 비핵화에 진지하다면 저희가 확인해야 하는 정보는 실제로 핵무기를 설계하고 만든 과학자들과 핵 시설들에 대한 겁니다.
기자) 북한이 진정으로 비핵화에 나선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검증은 얼마나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로퍼) 우선 정치적인 측면에선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하는 게 매우 어려울 겁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란에서 진행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북한은 실제 핵무기가 있고 이란은 핵무기가 없었기 때문에 북한이 조금 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희는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 개수도 알지 못합니다.
기자) 일부 전문가들은 국제사회가 실제로 핵무기를 가진 국가의 비핵화를 검증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종종 북한과 비교가 되지만 남아공은 핵무기를 직접 폐기한 뒤에 검증을 받았다는 차이가 있어서인데요.
로퍼) 네 맞습니다. 남아공이 북한과 가장 비슷한 사례이겠지만 말하신 대로 남아공은 핵무기를 직접 폐기했죠. 저희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는 데 이 점이 문제입니다. 더 나아가 국제 사찰단과 핵무기에 대한 문제가 있는데요. IAEA는 핵무기 자체에 대해 알아서는 안 되는 기구입니다. 이는 핵무기에 대한 정보를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면 안 되기 때문인데요. IAEA 사람들은 똑똑하고 핵에 대한 많은 것을 알겠지만 실제 핵무기 자체에 대한 문제는 다루지 못하게 돼 있습니다. 1991년 이라크 전쟁 당시 유엔 특별 조사단이 이라크에 들어가 핵무기 프로그램들의 증거를 찾으려 했습니다. 이들은 여러 핵 관련 연구소에서 일하던 사람들로 핵무기 설계 도면 등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었습니다. 만약 북한이 진정으로 비핵화를 원하는 상황이 온다면 이런 팀을 구성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북한의 비핵화를 검증하는 것은 IAEA의 역량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기자) 만약 비핵화에 대한 협의가 이뤄진다면 현장에서 이 과정을 진행하는데 필요한 절차를 소개해주시죠.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고 시간은 얼마나 걸리게 됩니까?
로퍼) 만약 합의가 이뤄진다면 사찰단이 현장에 들어가 북한의 다양한 시설들에 접근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원심분리기 시설이나 원자로, 재처리 시설, 그리고 무기고에도 접근해야 될 텐데요. 만약 ‘동결’이라는 합의를 한다면 사찰단이 무기고에는 접근하지 못하게 될 겁니다.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합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핵 관련 시설들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원심분리기 등에 센서를 붙이는 작업을 하며 또 어떤 추가 장비들이 필요한지 확인하는 데는 빠르면 1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완전한 비핵화까지 검증하기 위해서는 수 년이 걸릴 텐데 아주 빠르게 한다면 2년 정도가 걸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로스 알라모스 국립연구소에서 핵 폐기 전문가로 활동한 셰릴 로퍼 씨로부터 전문가들이 배제된 풍계리 핵 실험장 폐기의 문제점과 추후 검증 과정 등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대담에 김영남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