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직 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은 미국이 바라는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소극적인 태도가 이번 사태를 불러왔다고 분석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비핵화'에 좀 더 초점을 맞춘 상태에서 북한을 설득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서울에서 함지하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김숙 전 유엔주재 대사는 미국과 북한이 생각하는 비핵화에 대한 개념 차이를 좁혀야 미-북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김숙 전 대사] “아무래도 그 동안 미-북 간에 준비 회담에서, 이면에서 서로 비핵화에 대한 개념의 차이가 컸지 않았는가. 그래서 회담을 개최하면서 결렬될 경우에 받을 위험부담료를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서 취소를 하지 않았는가 하는 배경이 짐작이 되는데요...”
김 전 대사는 25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표면상으로는 정상회담의 취소가 북한 측의 적대감과 분노 때문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회담 준비 과정에서 드러난 북한과의 비핵화에 대한 인식 차이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미국 내에는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즉각적으로 회담을 수락했다는 우려가 나왔고, 또 이런 상황에서 회담에 임하는 것보다는 미루는 게 낫겠다는 보수적인 의견도 있었을 것이라고 김 전 대사는 분석했습니다.
김 전 대사는 회담의 동력을 잃게 되면 지난해 말보다 더 엄중한 긴장 상황이 조성된다는 의미에서 회담이 다시 열리는 게 원칙적으로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비핵화에 대한 인식 차이가 큰 상황에서 열리는 회담에 대해선 회의적이었습니다.
[녹취: 김숙 전 대사] “비핵화에 대해서 미국이나 한국이 확고부동한 CVID를 타협해 가면서까지 회담을 개최하는 건 역시 문제가 있다고 보여지고요.”
오준 전 유엔대사도 북한이 구체적으로 비핵화에 대한 어떤 약속을 할 수 있는지가 정상회담 재개 여부의 관건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오준 전 대사] “사실은 6월12일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을 본다면 거기에 김정은 위원장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가서 서로 무슨 얘기를 할지 모른다하는 그런 상황에서 정상회담이 열릴 순 없거든요.”
오 전 대사는 이런 맥락에서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확실한 언질을 주지 않았고, 이로 인해 회담이 연기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때문에 비핵화에 대한 어느 정도의 입장 표명이 추후 미-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역시 이번 정상회담은 비핵화라는 목표 달성 가능성이 낮았기 때문에 무산된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녹취: 천영우 이사장] “준비가 덜된 실패한 정상회담보다는 안 하는 게 낫습니다. 정상회담은 성공 가능성이 있을 때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훨씬 좋다고 봅니다.”
천 이사장은 북한이 회담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부리는 일종의 '몽니'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과잉대응한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비핵화에서 성과를 거두기가 희박한 상황에서 정상회담을 여는 것도 위험한 일이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전직 당국자들은 한국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도 '비핵화'라는 목표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김숙 전 대사는 한국이 '중재자'가 아닌 미국과 한국의 공동된 입장에서 북한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숙 전 대사] “한국으로서도 양측이 그동안 해온 역할도 있어서 외면할 수 없겠습니다만은 그러나 중간에서 아주 중립으로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걸맞지 않고 우리가 북한을 설득을 해서 비핵화의 옳은 길로 나오도록 해야 한다.”
김 전 대사는 한국 정부가 현 시점에서 남북관계 개선은 약간 뒤로 접어둘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비핵화 목표를 미국과 확실히 공유하면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지 않도록 하고, 정상회담이 본궤도에 오를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천 이사장도 “북한이 확실한 비핵화 의지를 갖도록 한국 정부가 설득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비핵화에 대한 의구심이 안 생기도록 북한이 분명한 입장을 취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오 전 대사 역시 북한의 비핵화를 한국이 설득하는 역할에 좀 더 치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오준 전 대사]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확실한 약속을, 그런 조건이 충족돼야만 정상회담이 열리고, 제재도 해제되고, 남측과의 대화나 협력도 다시 재개될 수 있다는 북한에 확신을 줘야 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과정을 통해 우발적 군사 충돌이나 군사적 대립과 같은 상황으로 전개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도 한국의 역할이 될 수 있다고 오 전 대사는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비핵화'를 할 경우 밝은 미래가 보장되고, 한국으로서도 최대한 협력을 할 것이라는 확신을 줘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 한국이 지나치게 개입하는 건 옳지 않은 시점이 왔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남성욱 교수] “한국 정부는 이 상황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말아야죠. 한국 정부는 그동안 중매자로서 회담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지만, 그 뒤에 북-미 간에 과도하게 중매자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양측의 의사를 과장해서 전달하는 측면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워싱턴의 불만이었죠.”
남 교수는 미국과 북한 간 연락채널이 만들어진 상황에서 양측의 의지에 따라 비핵화 협상이 이뤄지게 될 것이라며, 과도한 개입은 지난 22일 미-한 정상회담 때 목격된 것처럼 미국과 한국 사이에 미묘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당분간 한국은 절제할 필요가 있다고 남 교수는 조언했습니다.
반면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한국의 중재자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녹취: 김용현 교수] “한국 정부가 열기를 좀 식히는 차원에서 약간의 냉각기를 두고, 이후에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길잡이 역할, 조정자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고...”
그러면서 이런 과정에서 한국은 북한과 충분한 대화를 하고, 미-북 대화를 중재하는 역할을 보다 신중하고, 차분하게 기울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이 대화 재개의 여지를 뒀기 때문에, 천천히 문제를 풀어가면 미-북 정상회담이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