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부와 국제사회가 해외 북한 노동자들의 열악한 인권 실태에 우려를 밝히고 있지만,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들의 상황에 개선 조짐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러시아에 있는 한 북한 노동자는 31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간부들의 착취가 너무 심하다며 일한 만큼 임금을 제대로 받는 게 노동자들의 희망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러시아에서 일해온 북한 노동자가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들의 열악한 실태에 대한 미국 정부의 우려를 사실로 확인했습니다.
북한에서 러시아의 한 도시에 파견돼 최근까지 건설 노동자로 일해 온 김 모 씨는 31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노동 환경이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고 간부들의 착취와 비리도 계속돼 간부와 정부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이 아주 많다고 밝혔습니다.
김 씨는 북한 기업이 러시아 업체와 계약한 곳에서 일하는 이른바 ‘대방생’의 경우 임금을 받지 못한 채 장시간의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북한 노동자가 개인적으로 외부에 나가 일한 뒤 정기 납입금만 당국에 바치는 ‘청부생’이 되길 원하지만, 간부들이 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대방생은 간부들이 함께 있기 때문에 이런 저런 구실로 돈을 착복하기 쉽지만, 청부생은 돈을 챙길 공간이 적다는 겁니다.
김 씨는 비자 연장을 통해 5~10년 이상 러시아에 머무는 노동자도 적지 않다며 경험을 쌓은 이들은 개인적인 청부업을 통해 한 달에 보통 8만 루블(1천 280달러)을 번다고 말했습니다.
이 가운데 북한 당국이 책정한 500 루블(800 달러)을 납입하면 300 루블 정도는 본인이 가질 수 있지만, 청부생이 되려면 오랜 시간과 뇌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대방생은 건설 계약 기간을 맞추기 위해 오전 8시부터 자정을 넘어 장시간 일하는 경우가 많고 생활비로 매달 1천 루블(16달러)밖에 받지 못하기 때문에 불만이 아주 많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자신의 대방에 있던 동료들 대부분은 간부들은 물론 북한 정부에도 불만이 많았다는 겁니다.
앞서 알렉산드로 마체고라 북한주재 러시아 대사는 지난 2월 러시아 매체들과 가진 회견에서 러시아 정부가 해마다 최대 1만 5천 명의 북한인들에게 비자를 발급했으며 북한 노동자가 가장 많을 때는 3만 7천 명에 달했다고 말했었습니다.
미국 정부도 최근 이례적으로 북한의 해외 파견 노동자들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소개해 관심을 끌었습니다.
국무부와 재무부, 국토안보부는 지난 23일 발표한 대북 제재 주의보에서 42개 나라 10여 개 업종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을 “강제 노역의 피해자”라고 소개하며 이들이 겪는 인권 침해를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주의보는 북한 업체가 노동자들의 임금 지급을 보류하고 부당하게 삭감, 늦게 지급하고 현물로도 대신 지급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일부는 현금으로 받은 임금을 귀국 후 북한 정부에 일시불로 납입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아울러 노동자 임금 총액의 약 30%까지 북한 정부가 선금으로 가져가고 노동자들은 은행 계좌에 접근할 권한조차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은 모두 통제되며 이들의 서류와 비자, 취업 허가서 등은 고용 업체가 보관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북한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근로 환경을 조목조목 나열했습니다. 노동자들이 안전하지 않고 비위생적인 곳에 살면서도 이를 위해 지나친 요금을 지불하고 집단적으로 투숙하며 다른 나라 노동자들과도 격리돼 생활한다는 겁니다.
게다가 노동자들은 휴식도 거의 없이 의무적으로 자아 비판이 주를 이루는 생활 총화에 참석해야 한다고 주의보는 지적했습니다.
마이크 폼페오 국무부 장관도 지난달 29일 ‘2018 연례 인신매매 실태 보고서’를 발표하며 해외 파견 노동자 등 북한의 강제 노역 상황은 “비극적”이라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녹취: 폼페오 장관] "We see the tragic example of forced labor in North Korea as well. Untold number of North Korean citizens are subjected to forced labor oversea by the own government and many cases with tacit approval of host governments.”
막대한 수의 북한 공민이 북한 정부에 의해 해외 강제노동 대상이 되고 있으며 이런 해외 강제 노동이 많은 경우 주재국 정부의 암묵적인 승인과 함께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러시아 파견 노동자 출신으로 난민 지위를 받아 미국에 입국한 한바울 씨는 31일 VOA에 파견 노동자들의 삶은 “짐승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한바울 씨] “어휴 (한숨) 거기 가면 아주 짐승이지 짐승! 나도 가끔 뉴스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아파트 벽돌 쌓는 것을 보면 아이고 나도 저런 데 살았었는데. 그 생각하면 막 저절로 소름이 돋아요.”
한 씨는 러시아에 있는 김 씨의 생활이 어떤지 보지 않아도 이해가 간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노동자들은 청부생으로 일해야 비로소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회사가 계약한 대방 일을 무리해서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녹취: 한바울 씨] “미장을 그 사람들이 러시아 아파트 어마어마하게 크거든요. 이십몇 층짜리를 1층부터 올라가는 것을 두세 명이 이십몇 층까지 다 해요. 짐승처럼 일하죠. 혼합물을 압축기로 쏴서 올려주는데 혼합물에 풍덩 풍덩 빠져서 막 떠서 벽에 발라서 해요. 일을 하는 것을 보시지 못해 그렇지 기가 막혀요. 그래도 그 계약분을 빨리 끝내야 제 돈 벌러 나가거든요. 집에 가져갈 돈이죠. TV도 사고 달러도 사고. 그렇게 힘들어도 사실 조선 땅에서는 아무리 헐떡거려도 그렇게 못 버니까.”
미 중서부에 정착한 뒤에도 마루를 까는 건설 업종에 일하는 한 씨는 “부부가 장판 120 야드 정도를 열심히 깔면 하루 700달러를 벌 수 있다”며, “러시아의 노동 환경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좋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노동자 김 씨는 “다는 아니더라도 (일한 만큼) 돈을 지급해 주면 정말 좋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노동시간이 줄고 일하는 환경도 바뀌면 좋겠지만, 김정은 정권이 조국에 있는 한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알렉산드로 마체고라 북한주재 러시아 대사는 지난 7월 러시아의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유엔안보리 대북 결의에 따라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 수가 절반으로 줄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큰 변화가 없으면 유엔 결의대로 2019년 11월 29일까지 북한 노동자들이 모두 떠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사흘 뒤 푸틴 대통령이 북한 노동자들의 러시아 내 노동 활동 기간을 2019년 12월 22일까지 연장하도록 러시아 노동부에 지시했다고 ‘타스’ 통신이 알렉산드르 코즐로프 러시아 극동개발부 장관의 말을 인용해 보도해 혼란을 부추기기도 했습니다.
러시아는 지금도 국내 북한 노동자 규모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엔안보리 대북 결의 2375호는 북한 해외 노동자에 대한 신규 노동허가를 전면 금지하고 2019년 말까지 모두 귀국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유엔 주재 미국 대표부는 앞서 북한 정권이 해외 노동자 수출을 통해 최대 5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대북제재 주의보’에서 북한 정부가 러시아의 농업과 건설, 벌목, 집수리 분야에 집중적으로 노동자를 파견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러시아 파견 북한 노동자 김 씨와의 인터뷰 전문
기자) 어떻게 생활하고 계십니까?
김 씨) “올해 0 월까지 일하다가 나왔습니다. 한국으로 갈지 미국으로 갈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미국으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기자) 미국 정부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북한 해외 노동자들의 임금도 제대로 못 받는 채 사실상 착취를 당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곳 상황은 어떻습니까?
김 씨) “그런 게 모두 사실이고 변한 게 없습니다.”
기자) 임금은 얼마나 받았나요?
김 씨) “임금이란 게 없어요. 우리는 두 가지, 대방생과 청부생이 있는데, 대방생은 노임이 아예 없고 청부생은 자기가 한 달에 5만 루블(800달러)을 바치고 나머지 떨어지는 게 있으면 자기가 갖습니다. 10년 정도 경험이 있으면 한 달에 8만 루블(1280 달러)을 벌 수 있어요. 여기서 5만 루블을 내면 3만 루블은 챙길 수 있는데 어렵습니다.”
기자) 그럼 모두 청부생이 되길 원하겠네요
김 씨) “그렇습니다. 하지만, 대방생들이 훨씬 많아요. 간부들이 잘 놔주지 않기 때문에. 그래야 자기들이 다 가져갈 수 있거든요.”
기자) 청부생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김 씨) “대방에서 많이 일해야 하고 솜씨도 좋아야 하고. 그래서 비자를 연장하고 또 연장해 청부생을 계속하려고 합니다. 여권 기일이 4~5년 되는데, 연장하는 사람이 많아요. 10년 이상. 뇌물도 좀 고여야 하고.”
기자) 일하시는 환경은 어떤가요?
김 씨) “대방생은 자유란 게 없어요. (가고 싶은 곳에) 못 다닙니다. 생활비는 한 달에 1천 루블(16달러) 정도 줘요. 말도 안 되지만, 그것이라도 있어야… 우리는 아침 8시부터 밤 12시 길게는 새벽 2시까지도 일했어요.”
기자) 북한 회사와 정부에서 파견된 간부들에게 불만이 많겠습니다.
김 씨) “불만이 아주 많지요. 우리 대방에 30명 정도 있었는데 돈을 안 주니까 간부들에 불만이 많고 나아가 정부에 불만이 많지요. 간부들은 다 썩어빠졌습니다. 부모 처자가 있으니 조국이지 그 땅은 너무 썩어서. 그놈의 정권 좋다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하루빨리 무너지기 바라죠. 김정은이 정권이 조국에 있는 한 변화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기자) 러시아의 북한 노동자들이 당장 가장 바라는 게 뭘까요?
김 씨) “다는 아니더라도 돈을 지급해 주면 정말 좋지요. 노동시간도 줄고 일하는 것도 개선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