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오토 웜비어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는 소송이 최근 8개월 만에 끝났습니다. 웜비어의 억류에서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정황을 보여주는 다양한 기록이 제출되고 판결에 반영됐는데요. 북한 측 주장과 상반된 내용이 상당수였습니다. 재판 과정을 취재한 함지하 기자와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진행자) 소송이 진행되면서 새로운 사실들이 많이 드러났죠?
기자) 그렇습니다. 이번 소송에는 웜비어 측의 전체적인 사건 개요를 담은 ‘소장’을 비롯해 의료진과 가족들이 재판부에 제출한 수백 페이지 분량의 진술서 그리고 최종 판결의 근거가 된 판사의 의견서까지 공개됐습니다. 또 지난 19일 웜비어의 가족과 한반도 전문가 등 6명이 ‘증거 청문’에 출석해 이번 사건과 관련한 내용들을 직접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기존에 공개되지 않았던 새로운 내용들이 드러난 겁니다.
진행자) 새로운 내용 중에는 아무래도 북한 측이 밝힌 내용과 상반되는 게 많았던 것 같은데요?
기자) 진위를 다퉈야 하는 법적 분쟁이었던 만큼 기존 북한의 주장에 대한 사실 여부를 의심해 볼 수 있는 내용들이 대거 나왔습니다. 특히 가장 주목을 받은 부분은 북한에서 나온 웜비어의 증언이 과연 사실일까 하는 것이었는데요. 웜비어는 억류 약 한 달 후인 2016년1월 북한 당국이 연 기자회견에 참석해 자신의 잘못을 ‘고백’했는데, 여기서 나온 발언 중에 사실이 아닌 것이 많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지난 19일 개최된 ‘증거청문’에서도 웜비어의 부모와 이들을 대변하기 위해 참석한 한반도 전문가들은 이 부분을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진행자) 웜비어는 미 중앙정보국(CIA)과 연계된 대학 동아리에서 활동했다거나, 자동차가 필요해 선전물을 뜯었다고 당시 기자회견에서 밝혀 주목을 받았는데요?
기자) 웜비어의 부친은 이런 내용들이 모두 거짓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서 언급된 대학 동아리에는 가입한 적이 없고, 또 웜비어의 행동을 부추겼다는 교회 역시 이런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는 겁니다. 또 차가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웜비어는 이미 차를 갖고 있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웜비어가 기자회견 중에 특정 친구의 이름을 거론했는데, 그 친구는 문제가 생기면 자신의 이름을 팔라고 웜비어에게 당부했었다는 사실을 이후 고백했다고 합니다. 아울러 웜비어가 기자회견에서 사용한 표현들도 매우 어색했다는 내용이 지적됐는데요. ‘미국 정부’를 ‘미국 행정부(U.S. administration)’이라고 지칭하거나, 북한을 ‘DPRK’ 대신 ‘DPR Korea’로 부르고, 짐 가방 속에 챙긴 소지품 중 ‘가장 조용한 부츠’와 같은 이상한 단어를 사용했다는 겁니다.
진행자) 전문가들은 어떤 입장이었나요?
기자) 19일 증거청문에 출석한 이성윤 미 터프츠대학 교수도 당시 증언에서 몇 가지 이상한 점을 지적했는데요. 무엇보다 웜비어가 동생들의 대학 등록금을 내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는 장남이 동생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한국과 북한 식 문화에서나 나올 법한 표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가족들은 웜비어가 동생들의 학비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이성윤 교수는 과거 전례 등을 볼 때 북한이 허위 자백을 강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진행자) 웜비어의 증언이 사실이 아니라면 지금까지 북한이 밝힌 웜비어의 혐의가 진짜일까 하는 의심도 드는데요?
기자) 그렇습니다. 북한은 웜비어가 선전물을 훔치려 한 혐의로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했었는데요. 증언 자체가 허구였다면, 선전물을 훔쳤다는 북한의 주장 역시 당연히 의심을 해 볼만 합니다. 물론 당시 북한 측은 웜비어가 선전물을 떼는 장면이 담긴 CCTV를 공개하기도 했지만, 이는 다시 찍었거나 조작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습니다. 이미 웜비어의 증언이 조작됐다는 사실이 이런 추론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웜비어가 사망했기 때문에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드러난 거짓 정보가 많은 상황에서 북한 측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기에 무리가 따르는 것도 사실입니다.
진행자)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선전물을 훔쳤다거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진이 실린 노동신문으로 신발을 쌌다는 등 주로 웜비어의 잘못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일각에선 웜비어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내는 것도 사실입니다. 왜 그런 무모한 행동을 했느냐는 건데요. 심지어 미국의 한 전직 외교관은 지난해 VOA와의 인터뷰에서 웜비어가 “매우 바보 같은 짓을 했다”며 “북한의 (석방) 결정은 웜비어가 가족과 함께 죽을 수 있게 배려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그러나 이런 오해가 생기는 과정에서 웜비어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진 않았었죠?
기자) 그렇습니다. 웜비어의 부친 프레드 씨는 2016년 당시 성명을 내고 아들이 진심으로 사죄한 만큼 북한 당국이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주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언론 인터뷰를 하거나 특별히 사실관계를 밝히는 노력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웜비어의 가족들은 법원에 출석해 이런 자신들의 행동을 후회했습니다. 북한을 자극하지 말라는 미 정부 당국자들의 조언을 따랐기 때문이라는 건데요. 당시 국무부는 웜비어의 억류 직후 언론 인터뷰 등을 하지 말 것을 권고했고요. 이후 웜비어의 석방이 결정된 상황 속에서도 같은 주문을 했다고 웜비어 측이 밝혔습니다.
진행자) 또 한 가지 주목되는 건 웜비어의 고문이 실제 있었느냐 하는 부분일 텐데요. 법원이 이를 사실상 인정했다고 봐야 하죠?
기자) 판사가 ‘판결문’과 함께 공개한 의견서를 보면 대체적으로 고문을 주장한 웜비어 측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판결을 담당한 베럴 하월 판사는 웜비어의 주치의들이 제출한 진술서를 인용하면서 ‘주치의가 내린 결론은 북한이 고의적으로 웜비어의 죽음을 초래했다는 데 있어 필수적인 증거 이상’이라고 밝혔습니다. 웜비어의 주치의의 진술서에도 북한이 사실과 다른 내용을 밝혀왔다는 사실을 일부 확인할 수 있는데요. 이를 테면 북한은 웜비어가 식중독의 일종인 ‘보툴리누스균’에 감염됐었다고 밝혔지만, 주치의는 정밀 검사를 해 본 결과 그런 흔적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대신 뇌 혈액 공급이 5~20분간 중단된 것이 의식불명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명시해 웜비어가 고문을 받았다는 정황에 힘을 실었습니다.
진행자) 또 북한이 펜치와 전기충격을 이용해 고문을 가했다는 주장도 받아들였죠?
기자) 그렇습니다. 웜비어의 발에 상처가 생기고, 아랫니 두 개의 위치가 크게 바뀌었다는 주치의들의 소견과 북한의 고문 방식을 자세히 설명한 로버트 콜린스 북한인권위원회 선임고문의 진술서가 그런 증거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게 판사의 설명입니다.
진행자) 웜비어 측에 내려진 배상금은 약 5억 달러의 배상금도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당초 웜비어 측은 11억 달러를 요구했었는데요?
기자) 아무래도 금액이 크다 보니 언론 등의 집중 조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소송에서 전문가 자격으로 증언한 이성윤 교수는 배상금이 높게 책정된 건 그만큼 북한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변호인도 최초 11억 달러를 요청하면서 “계속되는 (북한의) 극악무도한 행위가 더 많은 처벌로 이어질 것이라는 메시지를 북한에 보내기 위해 (기존 판결 때보다) 더 많은 금액이 책정돼야 한다”고 재판부에 밝혔었습니다.
진행자) 천문학적인 배상액을 요구한 게 돈이 목적이 아니라 뭔가 상징성이 있다는 설명이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웜비어의 모친인 신디 씨는 지난 19일 법원에서 ‘왜 소송을 제기했느냐’는 질문에 “악마에 대항해 맞서 싸우기 위해서”라며 자신을 ‘투사’라고 소개했습니다. 북한에 책임을 묻기 위해 이번 소송을 제기했다는 겁니다. 또 프레드 씨도 앞서 공개된 진술서에서 자신이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고, 자녀들의 대학 학자금을 낼 수 있는 충분한 자금이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미국 법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천문학적인 배상금액을 부과하면서 같은 행위를 반복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주 목적입니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지금까지 함지하 기자와 함께 웜비어의 소송에 대해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