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4차 중국 방문으로 중국의 존재감이 더욱 주목받고 북-중 간 전략적 협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한국의 전문가들이 전망했습니다. 중국의 과도한 개입이 미-북 협상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습니다. 서울에서 김영권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지난 7일 중국을 전격 방문한 김정은 위원장이 9일 귀국길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9일 오전 베이징 경제기술개발구의 주요 제약 생산기지인 동인당 공장을 방문하는 모습이 여러 매체에 포착됐습니다
하지만 중국과 북한 정부는 앞서 김 위원장의 방중 사실을 발표한 뒤 이날 오후까지 정상회담과 만찬을 비롯해 모든 움직임에 대해 침묵하고 있습니다.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센터장은 이런 상황을 ‘북-중 참모 회의’에 비유했습니다.
[녹취: 이성현 센터장] “막상 베이징에 도착하고 나서 북한도 중국도 말을 굉장히 아끼고 있어요. 마치 작전회의를 하는 것처럼. 북-중이 첫 참모회의를 한 셈이 된 겁니다.”
이 표현은 과거 김일성 주석과 펑더화이 중국 인민군 사령관이 미국에 대응해 공조를 잘하자며 강조했던 냉전시대의 표현인데,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3차 방중 때 새삼 ‘한 참모부’란 강조한 뒤 이번 회담을 통해 실행에 옮겼다는 겁니다.
이 센터장은 김 위원장이 미국을 상대로 제재 완화 등을 시도하다 여의치 않자 중국을 활용하는 전략을 다시 구사하는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녹취: 이성현 센터장] “북한이 미국을 혼자 상대하면서 빨리 핵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 한계를 느끼면서 이제는 중국의 참여를 통해서 북-미 협상을 견인하려는. 그래서 올해는 평화협정을 두고서 중국의 중재 역할, 중국의 존재감이 굉장히 부각되는 한 해가 될 것 같고…”
시진핑 주석도 중국의 협조 없이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미국에 보내며 존재감을 부각하는 기회로 이를 활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또 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2차 미-북 정상회담에 대한 최종 조율과 북-중 수교 70주년을 맞아 전략적 관계 강화, 제재 해제 방안, 비핵화 협상과 평화협정을 병행하는 ‘쌍궤병행’ 방안을 논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박종철 경상대 통일평화연구센터 소장은 김 위원장의 4차 방중을 북한과 중국 간의 “잘 조율된 연극”에 비유했습니다.
서로의 필요와 중국의 개입 시기를 교감하면서 향후 제재 해제 방식까지도 긴밀히 조율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녹취: 박종철 소장] “중국이 북-미 정상회담을 촉진하고 협력의 틀 안에서 자기의 이익을 챙기느냐 혹은 미국을 견제하느냐 서로 다른 관점 같습니다. 미국을 견제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촉진하고 협력하면서 이익을 취한다는 것이 중국의 입장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박 소장은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한반도 문제에 중국이 변수가 될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어법을 달리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미-북 간 비핵화 청사진이 짜이면 중국이 적극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박 소장은 김 위원장의 이번 중국 방문이 두 가지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종철 소장] “저는 굉장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두 가지. 북-미 대화를 촉진하고, 이번 (방중) 목적에는 경제발전을 위한 진지한 중국식 개혁개방을 배우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한국 정보당국이 김 위원장의 방중을 바로 국회에 자세히 보고하는 등 이번 행보가 미국·한국과 소통하면서 이뤄지는 것으로 보여 고무적이란 겁니다.
조명균 한국 통일부 장관은 9일 국회에 출석해 김정은 위원장의 중국 방문에 대해 한국과 “적절한 경로로 사전 교감이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북-중 관계가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실제로도 크게 가까워졌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입니다.
[녹취: 김흥규 소장] “중국도 북한의 핵무장에 대해서는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일관되게 북한의 지정학적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비핵화 문제는 분리해서 다뤄가고 있고 미국에도 그렇게 공헌했고.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북-중 관계도 외향적으로 보는 것 보다는 훨씬 순탄하지 않을 겁니다. 김정은의 중국에 대한 불만도 상당히 있을 것이고요.”
김 소장은 또 단기적으로는 김 위원장의 4차 방중이 긍정적이지만, 중기적으로는 여전히 우려할 게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녹취: 김흥규 소장] “현재와 미래의 핵은 포기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반면 과거의 핵은 보유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갖고 있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우리의 안보와 국방, 한-미-일 간의 안보협력이 우려가 되는 것입니다.”
김 소장은 이번 4차 방중 등 김정은 위원장이 외교 행보의 속도를 높이는 배경에는 올해 신년사에서 강조한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지 때문으로 풀이했습니다. 정상국가로서 국제무대에 데뷔하고, 경제발전을 이뤄 민생을 재고하겠다는 의지가 4차 방중으로 이어졌다는 겁니다.
[녹취: 김흥규 소장] “북한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상당한 수준의 경제적 어려움,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진전이 되지 않는 좌절감, 북-미 간에 김 위원장이 중요한 빅딜을 시도하기 위한 노력 중 하나로 북-중 정상회담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한 전직 관리는 ‘VOA’에 김 위원장의 4차 방중이 비핵화 협상 진전의 돌파구가 되길 바란다면서도 중국의 과도한 개입으로 과거처럼 미-북 협상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