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텔레비전 드라마 ‘SKY캐슬’이 북한 주민들에게 자본주의의 병폐란 측면에서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탈북 교육 전문가들이 지적했습니다. 북한도 교육열이 비슷해 충격이 거의 없을 것이란 주장도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영권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원산 출신으로 한국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김영희 씨는 최근 TV 드라마 ‘SKY캐슬’을 시청하면서 불편한 게 많았다고 말합니다.
[녹취: 김영희 박사] “자녀의 인생을 부모가 케어한다는 느낌? 자녀는 자녀의 인생이 있는데 왜 부모가 나서서 모든 것을 다 해주려고 하는지 그런 부분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죠.”
부모가 자녀에게 자립심과 배려의 마음을 가르치기보다 너무 로봇처럼 만드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는 겁니다.
이번 주말 마지막 회를 남겨 둔 드라마 ‘SKY캐슬’은 한국에서 비지상파 방송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녹취: ‘SKY캐슬’ 홍보 영상] “학점으로 서울의대 합격했어요. 내신 관리는 어떻게 했는지, 소논문은 뭘 썼는지, 봉사 활동은…”
이 드라마는 한국의 대표적인 부유층 지역인 강남의 최상류층 가정 사이에서 벌어지는 과열 대학입시 문화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모, 입시를 관리·지도하는 코디에게 많은 돈을 지급하고 친구들을 밟고 올라가려는 일부 학생들의 모습은 과장이 섞였지만, 경쟁이 치열한 한국 입시문화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SKY캐슬’은 한국어로 직역하면 하늘성. 한국에서 명문대로 꼽히는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의 약자를 따 SKY라고도 하기 때문에 의역하면 최고의 위치에 서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한국 매체들은 과장이 많지만, 한국 입시 지옥의 현실을 제대로 그려 국민적 공감을 받고 있고 출연자들의 뛰어난 연기력과 추리를 가미한 게 인기의 비결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학생부 종합전형’ 제도로 내신 성적뿐 아니라 각종 독서와 동아리, 봉사 활동, 수상 실적, 소논문 등 여러 이력이 대학입학에 필요하기 때문에 비슷한 고민을 하는 학부모들이 드라마에 더욱 공감하고 있다는 겁니다.
북한 교원 출신인 엄현숙 북한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는 한국에서 자녀를 키우는 탈북민 엄마 입장에서도 이런 교육환경은 큰 걱정이라고 말합니다.
[녹취: 엄현숙 교수] “저도 제 아이가 있기 때문에 이 아이를 이 다음에 공부시켜 어떻게 하지 내심 걱정이 되죠. 금방 태어난 아기를 보고도 일찌감치 걱정을 하는 거죠. 사는 지역도 동네가 좋냐 아니냐. 사교육 기관이 얼마나 있냐 없냐를 보면서 아 얘가 나중에 초등학교 갈 때쯤에는 동네를 옮겨야겠네 이런 생각을 환경이 그러니까 주목을 하게 됩니다.”
엄 교수는 “학생들이 학업과 경쟁에 집중하느라 주변환경에 관심이 적어지다 보니 나중에 통일에 대해서도 이기적 입장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엄현숙 교수] “더 나은 대학에 가서 더 열심히 경쟁해서 더 치열하게 공부를 해야 하는 친구들 입장에서는 주변을 볼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겁니다. 그게 고등학교 때부터 지속적으로 연결돼 오히려 자기에게 편한 방식이 돼버린 것 같아요. 그런 친구에게 생각지도 않던 관심 밖의 통일이니 북한 주민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무관심하게 되고 오히려 그게 나의 일상에 자극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경제적으로 반응하지 않을까…”
실제로 최근 한국 국회가 민간단체에 의뢰해 대학생 1천 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통일의 필요성으로 북한 주민보다 한국의 경제성장과 전쟁 위협 감소를 응답한 비율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이웃의 북한 주민이 잘 살기 위해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5.9%에 그친 겁니다.
북한 출신의 교육 전문가이자 대안학교 교사로 활동 중인 이심일 씨는 사회와 국가의 공익에 기여하기보다 개인의 출세와 이익을 위한 공부, 재력이 성적까지 견인하는 문화가 세계적 추세이지만, 한국은 좀 더 심각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심일 교사] “교육이 사회계층 이동의 사다리, 통로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역할을 못 하지 않냐. 왜냐하면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자녀의 교육 수준이 확 올라가는 것은 확인된 부분이고요. 그렇다면 가정 경제력이 교육 수준 격차를 만들고 그 격차는 사회적 격차를 계속 만들고 이어져 가게 하는 거죠.”
인간의 가치는 학교 성적이나 사회적 지위와 별개이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이런 능력과 지위가 곧 자기 자신의 가치라는 인식이 팽배하다는 겁니다.
북한에서 ‘콤퓨터 막대기’로 불리는 휴대용 저장 장치 USB에 한국 드라마 등 외부정보를 담아 북한에 보내는 활동을 하는 정광일 ‘노 체인’ 대표는 ‘SKY캐슬’이 오히려 북한 정권의 선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녹취: 정광일 대표] “과거 빈익빈 부익부 차이를 다룬 드라마를 보내니까 거부감을 엄청 느끼더라고요. 아니 남조선은 저렇게 병들고 썩고 가진 자만이 살 수 있구나. 북한 정권이 선전하는 게 그거잖아요. 자본주의는 부익부 빈익빈이라고. 그게 표현되잖아요. 그 드라마를 보면.”
정 대표는 어려운 이웃과 사랑을 나누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따뜻한 이야기도 한국에 많은데, 점점 인간의 비열함을 극대화하는 `막장 드라마'가 많아져 북한 주민들에게도 잘못된 신호를 줄까 염려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정광일 대표] “드라마를 보내는 목적은 드라마 배경에 깔려있는 남한 주민들의 사생활! 외식을 한다든가 여행을 간다든가. 북한 사람들은 처음에 이해를 못하더라고. 아니 서울에 있다 갑자기 강원도에 가? 북한 같으면 상상도 못 해요. 통행증도 기차도 없고. 이런 자유민주주의의 이동의 자유, 거주의 자유를 보여주자는 거지 재산 때문에 극단으로 가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이런 거 보여주자는 게 아니잖아요.”
한국 드라마가 북한 주민들에게 가장 큰 착각을 주는 것 중 하나는 아파트 등 한국인들의 생활환경이란 지적도 있습니다.
다시 엄현숙 교수입니다.
[녹취: 엄현숙 교수] “주말에 나오는 드라마나 주중 매인 드라마를 여러 편 보면 집안이 얼마나 큰지 운동장 같아요. 막 뛰어다니고 그런 걸 북한 사람들이 보았다면, 그 때는 그냥 재미로 보겠죠 아마. 그러나 한국에 와서 현실적으로 임대아파트와 비교하면 상실감이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어요.”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한국 아파트에 대한 환상과 기대심리가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은 임대아파트 등 남한의 경쟁 문화에 부딪히다 보면 낙심하는 탈북민들도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남북한 모두 교육열이 비슷하기 때문에 드라마 ‘SKY 캐슬’의 부정적 파장이 적을 것이란 지적도 있습니다.
이화여대 북한학과의 김석향 교수는 북한에서 사교육과 대학 입학에 대한 뇌물이 만연돼 있기 때문에 드라마에 오히려 공감하는 부분도 많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석향 교수] “스카이 캐슬이 북한에 가면 이 사람들에게 저기는 썩어빠진 자본주의가 아니라 아 우리식으로 하면 돼지 세 마리 가져가야 하는구나. 뭐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물건을 줄 때 뭐를 주고 아파트 한 채 주고. 아 저게 10만 달러짜리 아파트를 (뇌물로) 주는가? 이렇게 자기 상황에 맞춰 생각할 것 같아요.”
많은 북한 주민이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교육에 대한 관심이 떨어졌지만, 이후 배운 사람이 그래도 잘 산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지금은 교육열이 한국 못지 않다는 겁니다.
김 교수는 북한에 성분의 한계로 주요 대학의 핵심 학과는 여전히 일반 주민에게 제약이 있지만, 그 밖의 대학 입학과 여러 특혜는 돈으로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심일 교사는 한국의 과열 입시문화가 통일 후 그대로 북한에 들어가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의 장점인 자유민주주의와 가난한 자를 배려하는 복지문화는 책임과 의무를 동반할 때 통일의 힘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남북한 모두에 강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심일 교사]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입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면서 복지국가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가장 수입이 적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혜택을 주려는 제도적 장치가 함께 마련돼 확대 발전되어 가고 있다는 장점들. 북한은 모든 것을 무상으로 해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러지 못한 형편이 비해 한국이 더 잘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경제적 격차는 현상이고 실제 본질은 자유인데 자유를 잘 이해하고 자유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바르게 인식한다면 (서로에게) 좋겠죠.”
서울에서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