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미사일 발사 국면 속에서도 유엔과 한국의 대북 지원 논의가 계속되면서 분배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외부 지원이 북한 정부의 책임을 덜어주고 가용 자원을 무기 개발에 전용하도록 돕는 결과를 낳는다는 문제 의식 때문인데요. 미 전직 관리들은 인도적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현장 감시 등 대북 지원 원칙이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마크 카세이어 제네바 주재 미국 대표부 임시 대사는 지난 9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열린 북한에 관한 보편적 정례검토(UPR)에서 북한 정부에 대북 인도적 지원의 투명성 보장을 촉구했습니다.
[녹취: 카세이어 임시대표] “Allow humanitarian assistance providers operating in North Korea unrestricted and independent movement throughout the country, as well as direct and unimpeded access to all populations in need.”
북한에서 활동하는 외국 인도주의 지원단체들이 아무런 제한 없이 독립적으로 활동하도록 허용하고 취약한 모든 북한 인구에 직접적으로 아무런 방해없이 접근하도록 해야 한다고 북한 정부에 권고한 겁니다.
카세이어 임시대표의 발언은 유엔 인도적 기구들이 북한 인구의 40%가 식량 위기에 직면했다며 지원을 호소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관심을 끌었습니다.
대북 지원에 반대한 게 아니라 지원 활동의 투명성 보장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미국 의회조사국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지난 1995년~2008년까지 북한에 모두 13억 달러 이상의 인도적 지원을 했으며 이 가운데 54%가 식량 지원이었습니다.
미국은 이후에도 2011년과 2017년에 북한 홍수 피해 지원 자금으로 190만 달러를 유니세프 등을 통해 지원했었습니다.
하지만 대북 지원 때마다 식량 지원이 수해 피해자나 가장 가난한 취약 계층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 국제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로버타 코헨 전 국무부 인권담당 부차관보는 12일 ‘워싱턴포스트’ 신문 기고에서 북한에 대한 미국의 대규모 인도적 지원 재개는 적어도 두 가지 조건이 부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정부가 상당한 자원을 식량과 보건이 필요한 인구에 투입해 정부의 책임을 외국의 지원으로 대체하지 말아야 하고 인도적 지원품 운송에 대한 번거로운 규제들을 풀어야 한다는 겁니다.
코헨 전 부차관보는 유엔 기구들이 20년 이상 북한에서 인도적 지원 활동을 하고 있지만, 관계자들은 여러 어려움을 인정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취약 계층에 제한 없이 완전히 접근하기 힘들고 당국의 방해 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으며 독립적인 데이터 수집 활동과 지원이 항상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전달되는지도 확신할 수 없다는 겁니다.
게다가 이들이 제공하는 원조를 효율적으로 감시할 수 없다는 어려움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VOA에 미국은 법적으로 해외 인도적 지원을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실질적인 인도적 필요와 평가, 투명성 보장 등에 따라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킹 전 특사] “Is there any need, can we assess the need and determine how and what is needed, what is required. the second thing is do we have a way of ensuring the assistance…”
킹 전 특사는 북한 정부가 많은 자원을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개발과 시험 등에 허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하자고 말하는 게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이해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선택권은 고통 당하는 북한 주민이 아니라 북한 정부에 있기 때문에 상황을 철저히 평가하면서 지원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킹 전 특사] “We should not be making decision about humanitarian assistance based on political consideration and whether we like their policy or whether we are in a good relationship with them…”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고려나 상대의 정책 선호 혹은 관계 개선 여부에 따라 결정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유엔의 대북 식량 평가만을 놓고 보면 지원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이런 가운데 엘리트 출신 탈북민들은 북한 정권이 대북 식량 지원을 순수 인도적 차원이 아니라 치밀한 계산에 따라 전략적 ‘전리품’으로 활용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는 자신의 책과 최근 언론 기고(조선일보)에서 한 해에 수십만 명씩 굶어 죽어 갔던 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에 “김정일은 북한이 가진 재원으로 핵과 미사일을 만들고 주민들에게 부족한 식량은 외부 세계에 호소해서 끌어들이라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자신이 외교관으로 근무하던 덴마크와 스웨덴 정부 등 서방세계는 북한 정권이 수억 달러를 들여 금수산태양궁전을 건설하고 잠수함 침투와 대포동 미사일 발사 등 도발에 항의하면서도 북한 주민들이 불쌍하다며 인도적 지원을 늘렸다는 겁니다.
지난달 북한자유주간을 맞아 워싱턴을 방문했던 엘리트 출신 탈북민들도 VOA에 북한 정부는 국제사회의 지원을 핵무력 강국에 대한 대가와 김정은 위원장의 전리품 선전, 지원은 취약 계층이 아닌 대북 제재로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국가 주요 기관으로 갈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북한 정부는 지난 9일 유엔 인권이사회의 보편적 정례검토에서 인도적 기구들에 제한 없는 접근을 허용하는 등 투명성을 보장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를 지낸 장일훈 북한 외무성 선임연구원입니다.
녹취: 장일훈 선임연구원] “In accordance with this principle, we provide aid agencies working in our country with unrestricted access and they also recognized it. “
북한 정부는 ‘현장 접근이 없으면 지원도 없다’는 원칙에 따라 국내 모든 기구가 제한없이 활동하도록 편의를 제공하고 있고 기구들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는 겁니다.
장 연구원은 또 기구들이 특정 지역에 접근이 어렵다면 이곳에 원조할 필요도 없다며 국제사회의 지원이 아이들과 여성, 장애인 등 취약 계층에 먼저 제공되도록 보장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의 제임스 벨그레이브 아태 지역사무소 대변인은 지난 8일 VOA에 국제 표준 기준에 따라 북한의 식량 상황을 평가했다고 말했지만, 지원의 투명성 여부와 당국의 규제 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은 과거 VOA에 WFP 등 유엔 기구들도 분배 감시에 있어 높은 수위의 방해를 받고 있으며 현장 방문이 거부되거나 지연, 취소되는 비율이 훨씬 높다고 말했었습니다.
앞서 호주 등 여러 정부 외교부 당국자는 VOA에 북한 정부가 인도주의 사업에 대한 독립적인 분배 감시와 평가 요청을 반복적으로 거부했다고 밝혔었습니다.
스웨덴 외무부 산하 관계자는 특히 지원 분배 감시는 1년에 몇 차례에 불과하다며 분배 감시가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국제개발처(USAID)도 지난 2009년 북한 전역에서 실시하기로 했던 영양 실태 조사를 북한 당국이 허용하지 않자 WFP를 통한 대북 식량 지원을 중단한 뒤 지금까지 재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