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 상주하는 유엔 기구들의 직원을 축소하겠다는 북한의 결정은 제재에 대한 불만과 함께 기구들의 활동을 통제하려는 의도라고, 제롬 소바쥬 전 유엔개발계획(UNDP) 평양사무소장이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태풍 등으로 재난이 발생하고 식량난이 가중되면 북한 정부에 오히려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소바쥬 전 소장을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북한 정부가 평양에 상주하는 유엔 기구들의 직원 수를 줄일 것을 유엔에 통보했습니다. 의도를 어떻게 보십니까?
소바쥬 전 소장) 북한의 요구는 새삼스러운 게 아닙니다. 국제사회의 대북 인도적 지원이 시작된 이래 북한 정부는 항상 유엔과 국제기구 직원들의 규모를 제한하려 시도했습니다. 직원 수가 많아지고 활동 반경이 넓어지면 통제가 어려워지기 때문이죠. 또 제재에 대한 강한 불만과 유엔 기구들이 제시하는 조건에 대해서도 불만이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자) 어떤 조건들을 의미하는 건가요?
소바쥬 전 소장) 인도적 지원은 매우 구체적입니다. 지원 대상을 철저히 취약한 주민들로 제한하죠. 하지만 북한 정부는 지원이 평양 당국에 더 집중되길 원합니다. 유엔은 정부의 그런 통치 역량 강화를 도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북한 당국의 불만이 많은 겁니다. 특히 유엔개발계획(UNDP)은 대체로 인도적 지원보다 장기적인 개발을 지원하기 때문에 유엔이 아주 까다로운 규정을 적용합니다. 그래서 북한 정부가 필요 없다며 불만을 표출하는 겁니다.
기자)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유엔 직원 수를 줄이라고 요구한 걸까요?
소바쥬 전 소장) 저도 구체적인 이유를 확신할 수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유엔 기구들을 통제하려는 전통적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북한에 상주하면서 깨달은 게 있습니다. 북한 정권은 항상 주민들의 민생과 복지 보다 정권의 안보를 중심에 내세운다는 겁니다. 그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것은 핵무기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 핵무기 때문에 받는 제재를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보고, 유엔 기구들의 활동 확대도 안보와 결부시켜 생각합니다.
기자) 일각에서는 제재에 대한 불만으로도 풀이합니다. 아울러 유엔 기구들이 지방을 방문해 대북 제재 효과를 평가할 가능성을 북한 당국이 차단하려는 의도도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소바쥬 전 소장) 북한 정부는 분명히 제재가 북한 인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엔 직원 축소 이유를, 적대세력이 유엔 원조를 정치화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 겁니다. 안타까운 것은 대북 인도적 지원이 항상 변동이 심한 정치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겁니다. 북한과 국제사회의 관계가 좋으면 지원이 순조롭다가도 관계가 악화되면 모든 상황이 빡빡해지고 문이 닫힙니다. 문제는 이런 결정으로 북한 주민들만 더 고통받는 겁니다.
기자) 설상가상으로 태풍 ‘링링’의 위협을 앞두고 북한 주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엔 인도적 기구들에 직원 축소를 통보했습니다. 북한 정부가 국제사회의 바람과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소바쥬 전 소장) 그렇습니다. 태풍이 북한에 큰 타격을 주지 않길 바라지만, 반대의 상황이 발생하면 식량난을 주시해야 할 겁니다. 곡식 수확기이기 때문에 시기가 아주 좋지 않습니다. 큰물 피해가 발생하면 많은 곡식이 물에 잠기고 곡물 생산에 큰 타격을 줍니다. 가뜩이나 봄 가뭄으로 작물이 타격을 받았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기자) 왜 그렇게 보십니까?
소바쥬 전 소장) 김정은은 정권 출범 초기에 다시는 인민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경제발전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죠. 하지만 경제는 발전하지 않았고 만성적인 식량난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김정은 정권은 주민들에게 왜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는지 설명해야 하는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제재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식량과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기자) 북한의 재난관리 시스템이 매우 열악해 피해를 더 악화시킨다는 평가가 유엔과 국제기구에서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소바쥬 전 소장) 재난 위험관리 시스템은 재난 전과 재난, 후속 조치 등 3단계로 나눠집니다. 미국이나 한국은 태풍(허리케인)이 다가오면 조기경보 시스템을 통해 미리 대피소로 주민을 이동시키며 만반의 준비를 합니다. 하지만 북한은 체제 특성상 이런 조기경보 시스템이 제대로 없습니다. 또 태풍이 상륙하면 미국은 연방재난관리청(FEMA) 등 연방정부 여러 부처와 지방정부가 위기 상황을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대응하지만, 북한은 그런 공조 체계가 거의 없습니다. 모든 부처와 도·시·군 마을이 작은 섬처럼 제각기 움직이다가 군대가 나서야 조금 조율이 되는 정도입니다.
기자) 주민들이 정부의 신속한 대응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의미군요.
소바쥬 전 소장) 네, 또 다른 문제는 위기가 발생하면 위험 지역에서 빨리 대피해야 하는데, 북한은 주민이 신속히 대피할 통보 체계와 수단, 장소가 거의 없습니다. 미국은 허리케인이 온다고 하면 차에 비상품을 싣고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지만, 북한은 이동의 자유마저 통제하기 때문에 주민이 집과 마을을 떠나는 게 그리 간단한 사안이 아닙니다. 게다가 지역마다 비상 식량과 물, 약품, 장비 등을 비축해야 하는데 북한은 그런 곳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난이 닥치면 훨씬 더 피해가 큰 겁니다.
기자) 그럼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소바쥬 전 소장) 북한에서 지역사회 스스로 생존을 위해 역량을 강화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사안입니다. 모든 게 상부의 지시와 허가를 받아 움직이고 통제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지역이 자체적으로 그런 역량을 강화하려 하면 수뇌부에 다른 메시지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북한 정부가 먼저 국제사회의 일원이 돼 유엔과 국제적십자사, 미 국립해양대기청(NOAA) 등으로부터 위성 자료 등 조기경보와 재난관리 시스템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북한이 모든 것을 정권의 안보와 직결시키고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가 비핵화뿐 아니라 인도주의와 인권 등을 한 바구니에 담아 북한과 협상해야 인도적 사안도 진전될 것입니다.
북한의 유엔 인도주의 기구 직원 축소 배경과 재난 대처 상황에 관해 제롬 소바쥬 전 유엔개발계획(UNDP) 평양사무소장의 견해를 보내드렸습니다. 인터뷰에 김영권 기자였습니다.